며칠 전 결혼 제7 주년을 맞았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라더니, 어쩌다 보니 애가 셋에, 어쩌다 보니 중견부부가 다 되었다. 라디오 사연을 듣다 보면 나오는 ‘결혼 8년 차 주부'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 너무 낯설다. 이런저런 각종 눈물겹고 웃음 터지는 주부사연을 보내서 기 장원으로 뽑혀 냉장고라도 타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만 할 시점인 것 같다. 물론 그런
L 선생님께선생님 안녕하세요? 메리 엄마입니다.아직 한낮 더위는 쉬이 물러가질 않고 계절의 뒤안길에서 미적대고 있네요. 그래도 쨍하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드는 영락없는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한 기온에 그동안 발로 차기만 했던 이불을 끌어당겨 덮느라 바쁜 때이지요. 메리도 저번 한여름에는 까맣게 타는 건지 익는 건지 모르겠더니 아마도 제 딴엔 보
작년 어느 날이었지. 나는 거의 십여 년 만에 낮잠이란 걸 자기 위해 분주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잠이 오면 그냥 누워 자면 되지 무슨 준비? 하고 의아해하시는 독자분들이 계실지 몰라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나는 본래 남편을 비롯한 누가 누워서 자는 꼴을 못 본다. 또한 남편과 같은 어느 누군가가 “낮잠 좀 자.” 그러면 당장에 “아니 안 자!” 대답하고,
지난밤 바람에 뒤뜰 고춧대가 절반은 꺾여버렸다. 튼튼한 지지대를 세웠어야 했는데 이제야 후회다. 가을까지 고이 키워 빻아서 고춧가루를 내서 김장 담그는 어머니들께 좀 드리려고 했더니만 어렵게 됐다.비가 온 뒤 없던 벌레도 생기고 해서 그냥 파랗게 매달린 게 어디냐, 똑똑 따 된장찌개에나 넣어 먹어야겠다. 그래도 다른 작물들에 비하면 고추는 풍작이다. 대파
나도 폭력 꽤나 쓰는 여자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이다. 담벼락 간 소음에 취약한 시골집 구조상 아마 옆집 할머니는 알고 계실 거다. 저번에 내가 ‘저희 집이 참 많이 시끄럽지요? 죄송해서 어떡해요’하고 물었더니 ‘으응?....’하시며 뒷말은 생략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까지 내저으셨지만 몹시 당황한 기색으로 내 시선을 피하셨다. 동공이 불안하게
지금까지 평범한 우리네 이웃으로 살아오던 내가 요즘 부쩍 주목받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메리와 욜라, 그리고 셋째 로메로(이하 애칭 로)를 다 같이 데리고 어디 나가기라도 하면 마치 ‘인간극장’을 찍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시골 소읍내에서도 아이 셋을 함께 거느리고 다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사실 미혼의 젊은이들은 내가 애 하나는 오른쪽
메리와 욜라, 그리고 막내와 함께 하는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벌어지는 오늘날, 조리원은 무슨 고릿적 이야기냐. 그래서 당초 7회분은 족히 잡았던 ‘본격 조리원 일기’는 이쯤에서 대충 막을 내리기로 한다. 조리원의 폭신한 매트리스가 내 엉치뼈와 척추뼈를 과도하게 긴장시키는 바람에 퇴실을 서둘고 만 것처럼.알고 보니 나는 이불 스무 장을 깔고 누워도 맨 아래에
조리원 넷째날한두 시간 토막잠이라도 깊은 잠은 치유 효과가 있나보다. 점점 순조로워지고 있는 모유 수유와 더불어 차분한 심리를 되찾은 어슴푸레한 새벽녘, 거실 한편에 놓인 소파에 파묻혀 널부러져 있었다. 17호 산모가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는 마침 할 말이 있다는 양 다가와 내 앞에 섰다.“언니, 언니! 혹시 이거 드셨어요?”조리원에서 여러 번 나눠 준 간
조리원 둘째날아이를 낳은 지 4일째. 잠 한 숨 못자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잠을 청하고 누워 눈은 감았다고 해도 애국가4 절을 줄줄 욀 정도로 정신이 총총하다. 당연스레 지난밤은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신생아실 콜 대기조로 불침번을 서며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밤새 방과 신생아실을 왔다갔다 했더니....
막내는 효자막내는.... 진짜 정말 셋째가 막내입니다. 에이 그러다 넷째 또 낳는 것 아니냐는 말씀은 제발 말아 주세요. 지금 애 셋 떠안고 경황이 없어요. 아무튼 막내는 다행히 효자로 태어났습니다.아빠가 자리한 가운데 태어나 주었으니까요. 뱃속에서 곧 박차고 나올 것처럼 굴던 셋째는 병원에 입원해서는 꿀맛같던 병원밥이 지겨워질 무렵에서야 태어나 주었는데,
학교 다닐 때 방학이면 주구장창 놀기만 하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한 달 치 일기를 썼고, 시험준비도 언제나 초단기 벼락치기로 일관하였다. 이틀 만에 몰아 쓴 일기가 일기장 부문 전교 최우수상을 받고, 일분 일초를 쪼개 쓰며 머리회전을 풀가동 시켜 이루어 낸 성적 또한 남부러울 정도를 잃지 않았기에 망측하게도 나는 부지런함과 준비정신을 버린 대신 초고도 집중력
새해가 밝은 지 좀 됐다. 아이들이 올해 여섯 살, 네 살이 되고, 내가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든 지도 그 정도 되었다는 얘기다. (아직은 삼십대 중반이라 우겨볼까도 싶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쁠 것 같지도 않으니 그만두기로 하자)놀라운 것은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함께 아이들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데, 벌써 메리 나이가 여섯 살이나 되고 욜라가 네
산타마을에 전화할 일이 생겼다."흠흠, 산타 할아버지, 어쩌죠? 크리스마스에 주신 선물... 고장났어요. 새 걸로 바꿔 주세요."해야 한다. 욜라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동 오토바이를 하나 샀는데 한 5분 간 굴러갔을까 곧바로 그 짧은 수명을 다했다. 하루 종일 배터리 충전을 해도, 꼼꼼히 조립상태를 점검해 봐도, 아무리 녹색 전진 버튼을 눌러 봐도 굴러가
금요일은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죠. 우리가 입술 사이로 ‘금.요.일’ ‘금. 요. 일’하고 불러만 보아도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느덧 ‘홀리데이’가 되는 것 같거든요.따위의, 개작시를(국어시간에 배운 ‘풀잎’이라는 영롱한 시가 원작임) 흥얼흥얼 읊는 나는 때로 시상이 떠오를 만치 금요일을 사랑했다.집에서 요일 구분 없이 육아와 살림이라는 매일 비슷한 일상을
메리와 욜라는 내가 낳은 아이들이지만 도저히 내 것이 아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과학적으로 내 유전자의 반을 가지고 있으니 안팎으로 나와 닮은 점이 많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도 두 아이는 나에게 언제나 낯선 친구로, 그것도 이제껏 만난 적이 없는 새로움 가득한 친구이다. 그 중에서도 욜라는 좀 많은 아량이 필요하다 못해 종종 ‘이해하려하지 말자, 그냥 미친*
거의 두 달 만의 자유시간인가. 오늘은 남편이 집에서 애들을 보고 나는 서울에 가서 친구를 만나 놀기로 작정한 날이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새벽잠을 걷어 내고서 부지런을 떤다. 아직 입고 갈 옷도 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메리를 유치원에 보통 때 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데려다 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내 알 바 아니란 식으
얼마 전에 다둥이 혜택 어쩌구 하면서 국가가, 이 사회가 입 발린 소리로 다자녀 출산을 유도하는 것에 내가 넘어갈 양이면, 그 어리석음을 맘껏 비웃으며 차라리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했던가.... 내 눈에 흙을 뿌리겠다 했던가. 결론은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나는 피곤한 엄마다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그 자신의 생명력을 무섭도록 꽃피우고 열매에
“별일 없지? 애들은 잘 놀고?”“별일 없지? 애들은 잘 놀고?” 하는 지인의 전화안부에 굳이 별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애들 험담을 하기도 귀찮아 늘 대답은 그럭저럭이다.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으며 애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고.실로 몇 달을 거슬러 돌이켜 보더라도 따분하리만치 별일 없이 지내온 것도 같다.하루하루를 들여다 보자면 신파 드라마로, 전 세
주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주말을 앞둔 저녁, 요즘 젊은이들이 ‘불금’이라 부르는 저녁에 나는 유난히 성스러워진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부디 주말을 잘 보내게 해 달라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신의 자비와 은총에 대해 묵상한다.사실 메리는 유치원에 느지막이 가서 오후 2시도 채 못 돼 집에 오는 형편이고, 욜라는 집에서 놀고 먹는 중이라 평일에도 충분히 아이들
누가 나에게 집에서 애들과 종일 부대끼는 것과 밖에서 애 둘을 커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힘든지 묻는다면?내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풍경이 그려질 것이다. 나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한 줄의 계단을 처음부터 끝까지 올라간 뒤, 꺾어진 또 한 줄의 계단을 이어서 오른다. 그 계단의 끝에서 새로운 오르막 계단을 이어서 올라가면, 비로소 네 줄의 계단 중 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