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9]

지금까지 평범한 우리네 이웃으로 살아오던 내가 요즘 부쩍 주목받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메리와 욜라, 그리고 셋째 로메로(이하 애칭 로)를 다 같이 데리고 어디 나가기라도 하면 마치 ‘인간극장’을 찍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시골 소읍내에서도 아이 셋을 함께 거느리고 다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사실 미혼의 젊은이들은 내가 애 하나는 오른쪽 손에, 하나는 왼쪽 손에, 나머지 하나는 유모차에 태우고 발로 밀면서 텀블링을 하며 지나간다 해도 별 관심들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키우신 아줌마 이상 되는 분들의 심금을 본의 아니게 울린다는 것인데,

ⓒ김혜율
주로 “어머, 세엣?”하면서 눈을 부릅뜨며 나한테 어떤 해명? 같은 걸 요구한다. 뭐 그건 그런대로 괜찮다. 난 쏘쿨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데 딱히 뭐라 말을 걸지는 않으면서 네댓 명 이상이 이쪽을 보며 두런두런 자기들끼리 대화의 장을 여는 경우엔 어김없이 인간극장 배경음악이 ‘따라라라~ 랄라, 랄라~’하고 깔린다. 또 그럴 때면 꼭 욜라가 컨디션 난조로 장소불문하고 바닥에 앉던지 눕던지 하여 개고함을 치며 울어 젖히면서 극을 클라이맥스로 이끌고 간다.

욜라의 울음은 실로 굉음에 가까워 사방 약 40제곱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고막에 극심한 피로감을 줄 뿐 아니라 소화불량, 신경쇠약을 초래하므로 뭔가 시작되었다 싶으면 그 즉시 다둥이 재난 단계 2호, ‘개망나니’를 발동시키고 즉각 대응에 나서야 한다. 장면이 바뀌고. 제 아빠한테 끌려간 욜라가 진정되어 들어오면 이번엔 로가 유모차에서 꺼내 달라고 발버둥치며 삼단고음에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운다. 백일밖에 안 된 로의 울음은 또 그것대로 아파트 한 단지 정도의 공간을 순식간에 얼음 땡 긴장시키는 강렬함이 있다. 욜라의 울음을 듣고도 ‘애들이 그렇지 뭐~’하며 엄마미소를 잃지 않았던 강심장들도 이번엔 심박수가 올라가며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바로 다둥이 재난 단계 3호, ‘개밥바라기’를 발동시켜야 할 때다. 로와 함께 저 하늘의 샛별이 반짝 하듯이 그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그동안 타인을 배려하며 무엇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온 문화시민으로서의 품격을 더 이상 지키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려고는 하나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있기 마련이다. 남편이 새벽같이 집을 나선 날, 아침에 혼자서 메리, 욜라, 로를 데리고 유치원버스 정류장 까지 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외출 중 하나다.

그날도 메리와 욜라와 함께 로를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옆집 할머니집 담벼락을 따라 핀 갖가지 꽃들 사이로 벌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봄날 아침.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비처럼 팔랑대는 메리와 욜라에게 시선을 두고 그깟 세발자전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부드러운 핸들링의 유모차를 끌고 간다. 뺨에 닿는 공기는 신선하고 햇볕 샤워도 실컷 할 수 있으니 유치원 버스가 마을회관까지만 오는 것이 고마울 지경이다.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아. 마을길도 한산하여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이 한적함이 좋아, 하며 만족감에 젖어 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낑낑대는 소리. 몇 발짝 떨어진 뒤에서 욜라가 제 목에 건 소풍물통 줄이 꼬여서 마구 짜증을 내고 있다.

“아하~줄이 꼬여서 그래? 괜찮아~ 있어봐~ 엄마가 얼른 풀어 줄게~” 꼬인 물통 끈만이 아니라 너의 꼬인 마음까지 풀어 주지. 아침에 서두른 덕분에 시간은 무척이나 여유롭고 시골의 소박한 아침풍경은 나를 그렇게나 착한 엄마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유모차는 놔 둔 채 욜라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런데 곧이어 뭔가 심상찮은 느낌에 되돌아보니 아뿔싸! 브레이크를 걸어놓지 않은 유모차가 혼자서 돌돌돌 굴러가고 있었다. 마을길을 벗어나 비스듬히 한 길 아래 밭고랑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어...어어, 안 돼!“

밭고랑에 거꾸로 처박힌 유모차. 로의 울음소리가 곧이어 들려 왔다.

ⓒ김혜율
나는 내가 저지른 엄청난 일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무엇보다 로의 안위를 바라며 혼비백산하여 밭고랑으로 뛰어 내려가 유모차 밑에서 로를 끄집어냈다. 로는 울고 있었지만 아파서라기보다는 놀라서 우는 것 같았다. 유모차가 떨어진 밭고랑은 흙과 풀덤불 뿐이어서 다행히 다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로의 얼굴에 묻은 흙과 지푸라기 같은 것을 털어 주었다. 아무튼 대형사고임에는 틀림없었다.

‘다행이야, 이만하길 다행이야. 아아, 내가 미쳤지. 왜 유모차를 손에서 놓고.... 왜 브레이크도 안 걸고.’

그런데 분명 평지처럼 보이는 길이었는데 내리막이었다니.... 아니 우리 마을에 ‘도깨비 도로’가 있을 줄이야, 나 원 참.

그건 그렇고 여기서 탈출해야 하는데 길 위로 올라가는 코스가 너무 험하다. 길이 좁은데다 중간에 큰 돌이라든가 비닐하우스 잔해, 물웅덩이 같은 것을 지나야 하는데, 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뒤집어진 유모차를 일으켜 세워 길 위까지 가기엔 내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메리에게 옆집 할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외쳤더니 얼른 뛰어간다. 그런데 집에 할머니가 안 계시단다. 그럼 어쩌지? 여기서 못나가겠는데 하고 있으려니,

“엄마, 그럼 이장님 불러올게”하면서 멀리 이장님 댁을 향해 달음을 친다. 간절한 바람에도 이장님마저 집에 안 계시단다. 바로 요 앞 수빈이네 하고 진희네 집에서도 아무도 안 나오는걸 보니 모두 논밭에 일하러 나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용단을 내려야 한다! 잔뜩 긴장해 있는 메리와 욜라에게 강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나는 로를 안고 밭고랑에 산재한 온갖 해저드- 벙커, 물웅덩이, 흔들거리는 나무판자 따위를 건너 길 위로 올라왔다. 집에 가서 로를 눕혀 놓고 쏜살같이 현장으로 달려와 이번엔 구덩이에 빠진 유모차를 끌어낸다. 바퀴가 자꾸 어딘가에 걸려 말을 안 듣지만 차력사가 벽돌 쪼개듯 기합을 넣으며 힘을 내었다. 물웅덩이에 신발을 푹 적셔가며 기어코 길 위로 유모차를 올려 내었다!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의 패기 못지않다. 골프 우승컵 대신에 나는 메리와 욜라에게 박수를 받았지만.

▲ 까꿍이 로.ⓒ김혜율
끝이 아니다.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가서 다시 로를 태우고 길을 나선 것이다. 초, 중, 고, 대학은 빠져도 유치원은 되도록 빠지면 안 된다는 교육철학이 있기에.

유치원 가는 내내 메리는 뭔가 해냈다는 흥분감으로 들떠 있었고, 꼬인 물통의 소유자 욜라는 더 이상 행패를 부리지 않고 “(원래 아빠가 힘이 쎈데)엄마도 힘이 세!”라는 말을 자꾸 하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얼굴에 흙을 묻혀 본 로는 또다시 새록새록 유모차에서 잠이 들고.... 나는 아무도 보는 이 없던 세 아이와의 외출이건만 한 편의 인간극장을 찍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세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그저 평범할 것이라 희망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유모차를 잡은 핸들에 힘을 주었다.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도깨비도로를 특히 조심하면서.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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