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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다둥이 엄마다[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17]

얼마 전에 다둥이 혜택 어쩌구 하면서 국가가, 이 사회가 입 발린 소리로 다자녀 출산을 유도하는 것에 내가 넘어갈 양이면, 그 어리석음을 맘껏 비웃으며 차라리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했던가.... 내 눈에 흙을 뿌리겠다 했던가. 결론은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피곤한 엄마다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그 자신의 생명력을 무섭도록 꽃피우고 열매에 단물을 집어넣느라 바빴던 늦여름. 매미소리 마저 늘어지는 여름의 끝자락에 나는 내 몸에 심장 두 개가 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실로 뜻하지 않았던 바였고, 평소에도 “이제 됐다, 고마해라. 마이 키웠다 아이가”라고 하는 것만 같은 지인들의 무언의 음성이, 아니 그 무엇보다 내 자신 내면의 목소리가 동굴 메아리로 확대되어 오던 때의 일로 나는 곧바로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대혼란이었다.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형대 장작에 불지핌 당할 것을 각오하고 늘어놓자면 나는 사랑스런 아이들의 눈망울과 웃음소리 그 귀여운 볼두덩이 같은 것으로 그날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고 다시 힘이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다. 그저 매 피곤할 뿐이었다. 메리가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자나요~’할 때도 응응 하고 그 귀여운 모습에 껄껄 웃어도 모든 고단함이 상쇄되진 않았다. 나는 아이들의 행복 이전에 엄마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먼저 찾는 것이 서로에게 진실되다는 생각으로 육아에 임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엄마였고, 솔직히 ‘애 둘, 누구의 도움도 없이 1년 휴직도 눈칫밥인 직장에 간 크게 3년 넘게 휴직을 이어가며 온갖 불이익 다 감수하면서 지금껏 키워 왔고, 욜라는 두 돌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지지고 볶고 있으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내 인생을, 내 굽은 척추를, 내 미간을 다시 펴 보리라 고대하고 있었다.

짱구도 말을 잘 듣는데...

   
▲ 메리와 욜라.ⓒ김혜율
하지만 이게 무어냐. 왜 신은 내게 십자가 두 개도 모자라서 하나를 더 ‘앵기시겠다’는 것인가. 그나마 애들이 평범하고 순하다면 좋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 메리와 욜라는 정말 내 인격을 밑바닥부터 들어내 흔들어 버리고 이 엄마를 내내 성장케하고 초연하게 만드는 초강대급 앙팡(enfant) 들이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화 ‘짱구는 못말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짱구가 말썽쟁이일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게 착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아이를 보고 왜 짱구 엄마는 화를 낼까? 줄곧 의아해하면서 만화를 보았다. 짱구뿐 아니다. 만화나 드라마 말고도 주변의 꽤 엄마 속을 뒤집어 놓는다 하는 아이들을 탐색 해봐도 아이들이 엄마 말을 나름 잘 듣는다는 결론뿐이었다. 저번 욜라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도 어쩜 그리 다들 네, 네 하면서 엄마 말을 잘 듣는지! 신세계를 보는 것 같은 경이로움과 감탄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뭐 이런 상황들이 무슨 변명이 될지 모르지만. 하여튼 난 셋째 아이까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대처할 능력도 모자란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꼬박 한 달 동안을 고민했다. 아! 난 가톨릭 신자이고,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낙태를 금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그렇다. 지옥불에 떨어질 각오까지 하였다. 받아들일 것인가. 없었던 일로 할 것인가. 안 그래도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죽어서도 천당 못가고 지옥에 가는 건 너무 억울하고 어이가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애 셋 낳고 바로 죽는 것 보다 현세의 행복을 택하겠다 하면서 자못 비장하게 하루에 골백번을 이쪽으로 결심했다가 저쪽으로 흔들리는 걸 반복하였다. 남편은 이미 셋째 아이가 누울 방을 어떻게 리모델링을 해야 하나 까지 생각이 흘렀지만 최종 결정은 내게 맡겼고, 나는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 육아 칼럼까지 쓰는 주제에 이럴 수 있나 하고 자책하면서도, 나만 입 닫으면 아무도 몰라, 평생 속죄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의미도 잘 모르는 평생 속죄를 입에 올렸다.

우리 엄마는 나이 사십에 막내를 낳으셨다. 그렇게 딸만 넷을 키우신 우리 엄마는 지금도 고3인 막내 밥 차려 줄 때가 되면 밖을 나와서도 쩔쩔 매신다. 당신 친구들이 애 다 키워서 훨훨 새처럼 날려 보낸 지가 언젠데 우리 엄마는 이제껏 둥지에 먹이 물어다 주는걸 놓지 못하셨다. 애들이 애를 먹이건 안 먹이건 간에 자식 하나하나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지 나는 보아 왔고, 그런 엄마가 안쓰럽고, 특출나게 뛰어나 부모 호강시켜드리지 못하는 내 처지가 죄송스러웠다. 호강은 무슨.... 사실 내가 제일 걱정이라고 하셨다.

줄줄이 이어 나오는 고민

예전부터 엄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만 낳아서 야무지게 키우거라. 네 인생 즐기면서 애한테 매이지 말고 자기 일 하면서 살아라’고, 그때 ‘네, 그러겠어요. 엄마.’ 그랬는데.

둘째 소식만 하여도 엄마는 노골적으로 그리 비실비실한 몸으로 둘을 어찌 키우냐, 니가 힘들어서 어쩌냐. 걱정하시더니 나중엔 자포자기하여 내 용기가 가상하다고 반어법으로 아주 한탄을 하신 바 있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애 키우는 모습을 보시면서도 역시나 내 딸이 애 키우면서 아주 진이 다 빠지고 있구나 하시며 가슴 아파 하시는데, 셋째 이야길 들으시면 그날로 머리 싸매고 누우실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직장에는 뭐라고 하지? 애 하나 더 추가 할 테니 휴직 일 년 더 쓰겠다고 해야 하나? 대체 난 언제 직장에 복귀할 수 있는 거지? 직장 동료가 백일 갓 지난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복직해서 승진의 월계관을 썼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 모든 것이 정지된 나의 사회 활동, 아니 점점 퇴보하고 있는 나의 사회 활동을 생각 안 해 볼 수 없었다.

‘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 이렇게 세월을 무작정 보내다가 어떻게 되는 거지? 나중에 애들이 알아주기나 하려나? 아니 전혀.... 나는 그런 것을 바라면 안 돼. 제일 소중한 가치를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함께하는 것이라 해 놓고도 이런다. 내가 이렇게 우왕좌왕한다.... 나 참.’

이런 생각들로 자도 자는 것이 아니었고,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었고, 그 와중에 욜라는 뛰어와 내 배를 발로 걷어찼고, 수시로 깜짝 놀라 자빠지게 했고, 걸핏하면 땅바닥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았고, 메리와 이중주 화음으로 울어 젖혀 귀청이 떨어져 나가게 하였다.

그래 도저히 안 되겠어. 백프로 안되겠어. 하느님 미안. 나 미워하시고 실망하실 테죠.
고민을 너무 오래해서 시간이 꽤 흘렀다. 그래도 난 그것이 사태를 크게 좌우하는지 몰랐다. 때로 무지함은 예상했던 결과와 준비했던 과정, 모든 걸 뒤엎는다.

아이는 예상보다 많이 자라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그 심장소리를 듣고 말았다. 손가락과 발가락과 척추뼈와 두개골을 보았다. 조그맣지만 분명히 사람이었다. 앗,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서둘러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의사는 수술을 택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고 ‘이 아이는 태어날 운명입니다’ 라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왈칵 울음을 내뱉었다.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내게 티슈를 건네주는 그 의사는 다름 아닌 메리와 욜라까지 받아 낸 산부인과의 신의 손이라 불리는 의사. 그도 가톨릭 신자다.

   
▲ 흙장난을 하는 메리.ⓒ김혜율
메리를 임신했을 때 기형아 검사 결과에서 다운증후군 수치가 위험군으로 나와 양수검사를 권하던 병원의사에게 양수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어쩌냐 물었더니 가차 없이 ‘임신을 종결한다’고 대답하는 것에 질려 아는 수녀님 소개로 두 번째로 다니게 된 병원의 수석 원장이다.

그때 불안에 떠는 나를 안심시키며 출산의 그날까지 꼼꼼하게 초음파로 아이가 건강하고 깨끗하게 잘 크고 있다고 해 주었던 의사. 진통이 극에 달해 메리가 세상 밖으로 막 나오려고 할 때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나는 보았다. 하얀 가운을 펄럭이며 들어오는 의사의 온몸에 둘러쳐진 아우라를.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마음이 놓였다. 그런 신비현상은 욜라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사가 나한테 셋째를 또 운명처럼 안겨 주는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생명을 조율하는 신의 대리자가 아닌가.

그리고 그 후 만 하루 동안은 이상하게 속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하였다. 내 굽은 척추뼈도, 메리, 욜라의 고성 난동도, 우리 엄마 한숨과 걱정도, 머나먼 쏭바강 같은 직장도, 다 아무려면 어때 케세라세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낳을 수밖에 없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하느님이 이쪽 길로 나를 이끄신 것이 감사하였다. 기뻤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했다. 뱃속의 아기에게.

지금도 이렇게 털어놓고 있는 것이 나중에 셋째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걱정이지만. 나는 그래서 너를 낳기로 했으며 그 이후엔 흔들림 없이 너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엇보다 너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한다고 말해 줄 작정이다.

엄마한텐 얼마 전에 말했다. 갑자기 셋째를 떡 하니 안고 나타나는 사태가 오기 전에 쓰러지시더라도 미리 말해 두는 게 나으니까. 직장엔 아직이다. 분명히 인사과에선 매우 귀찮아하며 기막혀 할 것이 분명하다. 내 인사기록 카드에 보이지 않는 빨간 줄이 쳐질 것임도 명백하다.

어찌됐든. 나는 결국엔 초연해진다. 남들처럼 고민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워 보는 게 소원이었던 고민 없던 천하태평 소녀는 지금도 그런 인생을 줄곧 살고 있다. 고민은 남들이 충분히 해주고 있고, 나는 앞으로 어쩌면 바보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예전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났던 점쟁이 할망구의 ‘애가 넷이구만’ 이라는 예언이 차가운 가을바람 결에 스치는 밤이다. 아니 잠깐만! 넷? 넷이라고? 가혹한 할망구. 누굴 죽이려고.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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