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4]

 L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메리 엄마입니다.

아직 한낮 더위는 쉬이 물러가질 않고 계절의 뒤안길에서 미적대고 있네요. 그래도 쨍하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드는 영락없는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한 기온에 그동안 발로 차기만 했던 이불을 끌어당겨 덮느라 바쁜 때이지요.

▲ 꽃과 함께 메리. ⓒ김혜율
메리도 저번 한여름에는 까맣게 타는 건지 익는 건지 모르겠더니 아마도 제 딴엔 보다 단단하고 알찬 열매로 영글었겠지요. 제가 셋째 출산을 앞두고 선생님께 처음 인사 드리고도 계절이 여럿 바뀌었고, 게으르고 태평한 전 이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선생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항상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아래로 하극상 동생이 한 명도 모자라서 하나 더 생기는 메리 어깨의 무게를 항상 염려해 주시고 살펴봐 주신 점, 산후조리다 아빠 출장이다 뭐다 해서 엄마아빠랑 떨어져서 할머니 손에 유치원을 다닐 땐 그 사정까지 다 헤아려 아이를 다독여 주시고 마음으로 품어 주신 점, 말로 다할 수 없이 고맙기만 합니다.

선생님도 알고 계시지요. 메리가 언제나 잘 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요. 집에서도 그렇습니다. 두어 발 앞으로 나갔다가도 한 발 뒷걸음질 치며 천천히 아주 (속터지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작년보다는 정서가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표현도 줄었고 의기소침하고 시무룩한 태도에서 기쁘고 설레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줍니다.

선생님, 오늘은 유치원에 다녀온 메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오늘 단짝 친구 윤빈이가 유치원에 오질 않아서 심심했었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심심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요^^

“윤빈이가 안 오면 다른 친구와 놀지?”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과는 전혀 놀지 못했다는 대답을 해요. “왜 놀지 않았어?” 하고 물으니 남자친구들 노는 데 가면 여자니까 같이 못논다고 여자들한테 가라고 그러고 여자친구들한테 가면 친구들이 자기와 놀지 않는다고요. 전 또 “아니 왜 그럴까?” 하고 물어볼 수밖에요.

메리 말로는 친구 중 한 명이 자기더러 ‘넌 쫄바지를 입었는데 우린 쫄바지 입은 애랑 안 논다’고 했고 모여 있는 다른 여자아이들도 그렇게 자기와 놀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자기랑 그래도 좀 친한 민지마저 그렇게 말했고 착한 친구 아영이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들과 같이 있었기에 자기는 놀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고 시무룩하게 말합니다.

여섯 살 사회생활이 참 녹록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워하고 심심해했을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저도 가슴이 조금 아팠습니다. 무엇보다 메리가 친구들을 편견 없이 한 명 한 명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선생님, 메리가 평소에 행동이 느리고 친구관계에 많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요? 엄마인 저도 그런 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제가 메리에게 “넌 원래 그런 아이야”라고 하지 못하는 것은 메리를 데리고 개방적인 공간(놀이터, 공원, 가족들 모임)에 가면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대화하고 뛰며 노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 좀 더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감 있게 다가가면 유치원에서도 참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 하는 아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이쿠’ 하더라도 내일은 좋아지리라는 것도 믿고 있습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오늘은 친구와 잘 못 놀고 싸웠다 하더라도 그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이 웃고 또 어떤 계기가 되면 소원한 친구와도 친해지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의 우정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께 한 가지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고 주목하는 자리에서 메리를 한번 크게 칭찬해 주세요. 선생님이 많이 사랑하는 친구라는 느낌으로요. 아이들 심리가 그렇잖아요. 좀 만만해 보이고 약해 보여 자기들은 심각하지 않은 장난으로 놀리거나 배척하다가도 자신들의 우상인 어른, 선생님이 인정하는 친구라면 달리 보이고 다시 보아 주고 인정해 주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선생님이 해 주시는 오늘의 지원사격에 메리의 미래는 분명 밝게 달라질 것 같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선생님.... 전 아무래도 이번 여름 너무 대놓고 메리를 햇볕에 태워 버린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안 그래도 닥종이 인형 같던 얼굴이 새까매지니까 더욱더 시골 아이 같고 그렇지요? 뒤늦은 반성을 합니다. 예쁘고 호감 가는 모습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을 테지요. 우선 메리 머리를 곱게 빗어 주어야겠다 싶은데 선생님처럼 야무지게 묶기는 참 힘들어요. 여자아이 머리묶기 강좌가 있다면 꼭 듣고 싶습니다. 아니면 유치원 파하고 아이 친구들을 모아 함께 방방이라도 타러 가는 건 어떨까요? 뒤엉켜 팡팡 뛰며 놀고 나면 한층 더 친밀한 친구사이가 될 것 같은데요.

그밖에 제가 메리를 격려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엄마로서 항상 애쓰겠습니다. 그 기다림과 노력의 여정에 L 선생님이 함께 해 주셔서 든든합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 가득 담아
2015. 9.11 김혜율 드림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