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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메리는 형님이 되고[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2]

새해가 밝은 지 좀 됐다.

   
 ⓒ김혜율
아이들이 올해 여섯 살, 네 살이 되고, 내가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든 지도 그 정도 되었다는 얘기다. (아직은 삼십대 중반이라 우겨볼까도 싶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쁠 것 같지도 않으니 그만두기로 하자)

놀라운 것은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함께 아이들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데, 벌써 메리 나이가 여섯 살이나 되고 욜라가 네 살이라니 좀 수상쩍기까지 하다. 얼굴에서 점점 콜라겐이 빠져나가서 점점 엄숙한 중년의 얼굴이 되어가는 것 밖에는 큰 변화가 없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놀라운 속도로 한 해 두 해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요즘 메리는 여섯 살 ‘형님’이 되었다고 매사에 행동거지를 ‘형님’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는데, 덕분에 나는 이때를 놓칠세라 아이에게 ‘형님 십계명’같은 것을 제시하는 현명함을 발휘하였다. 물론 채찍과 더불어 당근을 풍성히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그전엔 ‘B사감’마냥 깐깐하게 굴었던 칭찬스티커 붙여 주는 데에도 얼마나 후해졌는지 칭찬나무에 칭찬열매를 하루에 여섯 개, 일곱 개씩 주렁주렁 달아 주며 메리를 춤추게 하고 있다. 이제 아래로 남동생이 두 명이나(하나는 확실히 꼴통, 나머지 하나는 어떨지 아직 모르지만) 딸릴 메리에게 내가 주는 격려의 선물이라고도 하겠다.

두 돌도 되기 전에 첫째가 된 이래 영원히 첫째로서 살아야 하는 메리 어깨의 짐을 무겁게 하고 싶지 않다. 두 눈을 비비고 메리만 쳐다보면 아직도 그 작은 등짝과 오종종하게 짧은 종아리와 관자놀이께의 솜털같이 나부끼는 앳된 잔머리털이 아기 같아서 눈이 아리는데....

큰머리는 놔 둔 채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여러모로 치고 빠지는 데에 탁월한 솜씨를 보이는 욜라와 달리 전혀 그런 구석이 없는 메리가 어울려 노는 걸 한번 구경해 보자. 둘이서 거실 끝에서 끝까지 왕복 달리기 시합을 할 때면 메리는 일단 욜라보다 빠르니까 날쌔게 앞서 나간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 반환점에 손을 정확히 짚은 후 출발지까지 돌아오는데 요령이라고는 없다. 반면 욜라는 중간에서 살짝 멈춰 엉거주춤 기웃기웃하다가 제 누나가 반환점을 돌아 유턴을 하면 와그르르 웃으며(일부러 자기 술수를 들키지 않으려는 위장 같음) 얼른 몸을 돌려서 결승선을 향해 뛰어 간다. 그러다 중간에 메리가 자빠지거나 서로 부딪히는 몸싸움에서 이기면 욜라가 결승 테이프를 먼저 끊고 들어온다. 메리는 이런 전모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고지식하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니....

   
▲ 새해맞이 홈파티.ⓒ김혜율
욜라는 새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네 살 형님이고 뭐고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엄마아빠 말이라고는 전혀 듣지 않는다. 청개구리 엄마가 개굴개굴 울라고 하니 굴개굴개 울더라고 딱 그짝이다.

욜라 외출 준비로 기저귀 새로 갈고 바지 입히고 잠바 입히고 양말까지 신기는 데에 정상적인 루트로는 삼십 분? 아니 한 시간도 어림없다. 하지만 요즘 내가 쓰는 ‘청개구리 엄마 방법론’에 따르면 십 분이면 충분하다.

“욜라야, 저리가! 엄마한테 절대 오지마!”

그럼 욜라가 얼른 내게 달려온다. 그때 기저귀 갈고.

“욜라야, 너 바지 안 입을 거지? 바지 입지 말고 기저귀만 하고 밖에 나가자. 알았지?”

그럼 욜라가 막 성을 내며 바지 입을 거라고 고함친다. 이때 바로 입히기 보다는 “에이~ 안돼! 바지 입지 마!”하면 한결 빠르게 바지를 입힐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욜라가 앉았으면 할 때는 “앉지 말고 좀 서 있어봐!” 애원해서 앉게 만들고, 울고 있을 땐 “그래 그렇게 울음 그치지 말고 계속 울어~” 해 주면 울음도 그친다.

‘오죽하면 청개구리 엄마가 유언으로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길 바라면서 비 오면 다 떠내려가는 개울가에다 무덤을 쓰라고 일렀을까....’ 청개구리 엄마와 공동육아하는 심정으로 새해의 하루하루를 수놓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엔 드디어 직장에 어려운 걸음을 했다. 부른 배를 풀어 헤치고 예정 되어 있던 복직이 어려울 것임과 동시에 앞으로 휴직이 더 진행될 것이라는 상황을 전하고 온 것이다. 아이 셋을 낳는다고 하니 다들 깜짝 놀라면서도 나보고 애국자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초등학교 졸업식에 우등상, 학교장상, 교감상, 교육감상 이런 거 못 받고 개근상만 받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오버해서 젤 값진 상은 개근상이라고 추켜세워 주는 것이 못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과 엇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하나나 둘을 낳고서는 말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하여 나는 새해에도 쭉~아이를 키우게 되었기에 그 동안의 묵은 육아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초심을 다시 찾으리라 마음먹는다.

   
▲ 성가정 만들기에 참여 중인 메리와 욜라. 촛불 끌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김혜율
첫째로 미간을 펴자!(화를 내지 않더라도 굳은 표정 노! 눈에 힘 빼자! 이마 근육 풀자!)그래, 이건 붓글씨 해서체로 적어서 군데군데 걸어 놔야 하는 거다.

둘째로 역지사지 육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의 심경을 항상 헤아리도록 노력하자! 일곱 살 이전까지 내가 기억하는 좋았던 기억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외갓집 창호지 문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그림자. 어른 등에 업혀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흔들흔들 흔들리며 지나갔던 세상. 검고 축축한 흙바닥에 투두둑 떨어져 있던 빨간 동백꽃송이들, 하얀 감 꽃들. 잠에 빠져들 때 들리던 두런두런 이러코 저러코 하다가 점점 아득히 멀어지는 어른들 이야기 소리. 그리고 동상이 걸릴 만큼 손이 곱아도 하나도 춥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겨울과 땀이 줄줄 머리를 타고 흘러도 전혀 찝찝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여름날들! 말끔한 식탁 위에 엄마가 나 먹으라고 씻어 놓은 토마토를 베어 물때마다 계속 손목을 타고 팔꿈치까지 뚝뚝 흘러내리던 그 즙같은 짭쪼름 하면서도 싱거운 나날들이 아니었나! 나도 그 정도까지만 하자고. 나중에 메리와 욜라가 커서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마음껏 울고 떼쓰던 기억 속에 그런 잔잔한 달콤함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런데 걸핏하면 나도 모르게 탄식처럼 튀어나오는 새해 신종 유행어는 어쩌나....

“내가 뭐 할라고 애를 셋이나 낳는다고.... 으흐흑”(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을 때 자책하거나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
“아 앞으로 이 짓을 처음부터 또 해야 하다니.... 으으흑”(메리와 욜라를 어느 정도 사람답게 키워 놓은 것 같은 안심이 들 때, 불현 듯 셋째의 존재로 엄습하는 도돌이표 육아 공포에 살을 떨며)
“그나마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할거야.... 지금이 천국이었네 할지도 모르지 뭐.... 으흐흑”(점점 내 몸 가누기에 힘겨워 지쳐하며 셋째를 기다릴? 때)

그래도 마무리는 새해답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시간들도 금방 지나가겠지....”

그 말이 맞는 거죠? 인생 선배님들? 2015년.... 왠지 기대해도 되나요?

   
 ⓒ김혜율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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