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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반 세근 반 출산(직전) 일기[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4]

학교 다닐 때 방학이면 주구장창 놀기만 하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한 달 치 일기를 썼고, 시험준비도 언제나 초단기 벼락치기로 일관하였다. 이틀 만에 몰아 쓴 일기가 일기장 부문 전교 최우수상을 받고, 일분 일초를 쪼개 쓰며 머리회전을 풀가동 시켜 이루어 낸 성적 또한 남부러울 정도를 잃지 않았기에 망측하게도 나는 부지런함과 준비정신을 버린 대신 초고도 집중력을 얻게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왔다. 하지만 애통하게도 손모가지를 자르기 전에는 그 습성을 버릴 수 없는 여느 도박중독자처럼 나는 무엇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발등에 불이 떨어져 그 뜨거움에 살이 좀 데여 봐야 하는 몹쓸 정신머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셋째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을 해서야 글을 쓰고 있으니 그동안 띄엄띄엄 올라오는 칼럼글로 짜증이 복받친 분들이 혹여 계시다면 하해와 같은 아량을 발휘해 주길 부탁드리고 싶다. 마음씨 좋으신 담당 편집기자님은 출산 전 인사(저 애 잘 낳고 돌아올게요! 안뇽~)를 드리는 심정으로 이번 글을 쓴 다음에는 약 한 달여간의 칼럼 출산휴가를 주신다고 했다. 지금 생각 같아선 셋째를 낳고서도 칼럼을 미리 쫘악 써 놔야지 하는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으니 제 발등에 떨어뜨려 줄 불씨를 가지셨다면 톡톡 떨어뜨려 주시는 것도 괜찮겠다.

지금도 아래층에선 출산의 고통에 찬 고함 소리와 새 생명이 태어나는 환희의 순간들이 연출되고 있고, 여기 삼층 병실엔 얼마 전 아기를 낳은 산모들이 큰일을 치루고 난 뒤의 다소 숙연하고 장엄하면서도 홀가분한 얼굴들을 하고 몸 회복에 들어가고 있는 이곳, 산부인과 병실에 진통도 오지 않은 멀쩡한(?) 내가 왜 와 있는가? 사정은 아래와 같다.

   
 ⓒ김혜율
내일 유치원 형님반에 올라가는 메리와 그 꼬붕이자 개망나니인 욜라와 함께 시어머니가 우리동네 시골집에 가 계시고, 남편은 오늘 내일 장거리 출타로 함께 있을 수 없기에 유사시엔 119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와야 하나 하던 차, 아침에 의사선생님이 진찰을 해 보시더니 뱃속 아기가 매우 많이 내려와 있어 구급차를 타는 것조차도 불안하니 입원을 결정해 주신 것이다. 물론 나도 달리는 구급차속 119 대원들 앞에서 애를 낳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담당 의사인 ‘산부인과의 신의 손’께서 흰 가운을 입고 들어와 출산의 고통과 생명 탄생의 순간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애를 낳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에 ‘사전 입원’말고는 달리 좋은 대안이 없기도 하였다.

허나 오늘은 남편이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늦은 저녁 무렵이 아니면 혼자 애를 낳아야 하는 입장이다. 내일 같은 경우도 하루 종일 나 혼자이기 때문에 분만의 시간 내내 무척 외롭고 힘들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도 이미 애를 둘이나 낳은 몸이니 씩씩하게 혼자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셋째는 진통 걸리면 출산까지 진행이 빠르다니까 첫째나 둘째 때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들 하니. 하지만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 것처럼 아이도 낳아 본 여자가 더 두려운 법.

욜라 낳기 전에 분만실에 누워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간호사님이 “산모님 왜 우세요?(한 번 낳아 봐서 잘 알면서)” 하길래 “낳아봐서 얼마나 아픈지 알잖아요. 그니까 더 무섭단 말이에요.”하고 징징 짰더니 그것도 나름 일리 있다는 표정으로 “왠일인지 오늘 둘째 낳으시는 산모님들이 하나같이 다 무섭다고 우네요.” 하며 측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이번엔 셋째 출산 산모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울지 말아야 할 텐데... 과연 어떨지... 꽤나 굳건한 마음을 먹고 임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바로 메리와 욜라를 곁에서 떨어뜨려 둔 채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2주간의 조리원 생활에서 일어나는 그 그리움과 걱정스러움과 안쓰러움을 참고 견디는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다. 둘째 낳고 조리원에서 지내는 내내 첫째 아이가 마음에 걸려 몸조리고 뭐고 지금 당장 집에 가야지 하는 생각을 수십 골백 번도 더 했다는 친구의 말처럼 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지금부터 굳게 마음을 다잡겠노라 하고 있다. 일단 내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지 앞으로 세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런 뜻에서 출산짐 가방에서 얼굴에 붙이는 팩 하나를 꺼내 들어 본다. 내 얼굴의 집중 수분공급과 주름관리, 화이트닝을 담당할 마스크팩이다. 이따가 태아 심장소리 체크하러 들어오는 간호사님이 질겁을 할지도 모르니 신중하게 붙이고 떼어 낼 수 있도록! 그리고나서는 우리 시어머니가 보면 안 되니까 신경 써서 챙겨 온 가계부를 꼼꼼하게 정리해 볼 작정이다. 부자 되려고 쓰기 시작한 2015년 가계부 쓰기가 많이 밀려 있다. 얼마 전 욜라가 폐렴과 중이염으로 며칠간 입원했을 때 스트레스 풀 겸 저녁이면 잠깐 바람 쐴 겸 나가서 가까운 백화점에 들러 물건을 너무 많이 사 버렸다. 젠장. 그래놓고 막상 셋째 유모차니 카시트니 아기침대도 아직 준비해 놓지 못했는데... 얼른 가정 경제를 다시 점검해서 현명하고 절제력 있는 소비 생활을 이어가야 겠다.

   
 ⓒ김혜율
어쨌든 평범한 산부인과의 일반 병실이 특급호텔의 스위트룸과도 같이 호사스럽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조금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병실 밥을 먹을 수 있고, 집에서처럼 호흡곤란을 감수하며 일일이 허리 굽혀 줍고, 쓸고 닦지 않아도 청소 여사님이 들어오셔서 청소도 해 주실 것이다. 우리 집에 없는 텔레비전도 있고, 아직 애를 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로 나를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천혜와 같은 환경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글을 쓰며 알로아호에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긴다고 할 수 없겠지! 내 비록 지금 만삭인 임산부로 각종 불편함과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성찰의 시간, 자유의 시간이라 여기고 감사히... 감사히 보내어야지.

그동안 우리 메리와 욜라가 할머니 성질 안 건드리게 말 적당히 안 듣고, 싸우긴 하되 너무 피터지게는 싸우지는 말기를 바란다. 엄마의 부재를 통해 엄마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두 아이, 나중에 재회할 때 내 앞에서 부쩍 깊어진 눈망울로

“어머니 그동안 옥체 편안하셨는지요? 동생 생산에 고생 많으셨지요? 이제 저희들 알아서 장성할 터이니 심려 놓으시고 아우 돌보는데 매진하소서.”

하며 내 등을 토닥거려 줄까나? 그래 꿈이 크다. 그저 잘 먹고 잘 놀고 씩씩해져서 만나자꾸나!

그리고 셋째야, 뱃속에서부터 엄마 말(이제는 그만 태어나다오. 토요일에 태어나면 정말 좋겠구나. 아니면 일요일도 괜찮단다. 했던거) 안 듣는게 어째 불안하긴 하다만(제2의 욜라 탄생?ㅡㅡ;) 이제 엄마 방광 그만 찍어 누르고 속 시원히 나와 주렴! 아빠가 지켜볼 때 나오면 바로 효도했다고 할게. 아가, 그럼 부디 건강하고 예쁜 얼굴로 만나자!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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