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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라 샌드위치[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0]

나도 폭력 꽤나 쓰는 여자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이다. 담벼락 간 소음에 취약한 시골집 구조상 아마 옆집 할머니는 알고 계실 거다. 저번에 내가 ‘저희 집이 참 많이 시끄럽지요? 죄송해서 어떡해요’하고 물었더니 ‘으응?....’하시며 뒷말은 생략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까지 내저으셨지만 몹시 당황한 기색으로 내 시선을 피하셨다.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침마다 고함치는 내 소리며, 애들 우는 소리, 그 모든 걸 생생하게 듣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나도 어린아이였을 때는 가끔 동생이나 친구들과 몸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철이 든 다음부터는 크게 소리 지를 일도, 누구를 때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엄마로 살면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를 지르고 뭔가 딱히 폭력이라 부를 순 없지만 뉘앙스가 굉장히 거칠게 아이들을 대할 때가 많은 것이다. 물론 우리 집엔 대나무를 손질해 만든 정식 회초리도 준비되어 있지만 아직은 주로 상징적인 용도로만 쓰이고 있다.

   
▲ 로(왼쪽)와 욜라. ⓒ김혜율
그런데 내가 고함을 지르건,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리건 그 상대는 팔할이 욜라인데, 메리가 굳이 잘 해서 그런 건 아니다. 메리는 매사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호불호가 확실하며 자기가 아무리 잘못한 일이라도 웬만해선 그 기세를 꺾지 않는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작정하고 맞서 싸워 보았자 득보다 실이 많았기에 나는 여간해선 잠자는 메리의 코털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반면 욜라는 말도 못하는 말썽꾸러기이긴 해도 나보다 독하진 않다. 내가 화가 나서 이성을 잃고 덤비면 바로 불쌍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리기 때문에 나는 항상 그런 승리를 노리는 것이다. 강자에겐 약하게 약자에겐 강하게 구는 비겁한 내 모습!

사흘 전에도 나는 항거능력이 없는 욜라를 그런 식으로 몰아부쳤다. 이를 겨우 닦이고 입을 물로 헹궈 주려는데 자기는 치약 거품을 ‘절대’ 안 뱉겠단다. 스무 번쯤 타일러 보아도 더욱 꼭꼭 입을 닫고 요지부동이다. 보아하니 오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 싶어 욜라가 제풀에 반항을 포기하길 바라며 막간을 이용해 파리나 잡기로 했다.

올핸 작년과 달리 파리 모기가 뜸한데 비해 하루살이 날벌레가 하루라도 사는지 어쩌는지 며칠째 집안 곳곳에서 우수수 집단폐사하고 있고, 개미 앞다리만한 집게지만 나름 째깍째짝 집게 자랑인 집게벌레가 자주 출몰하고 있다. 나는 보통 벌레들을 살생하지 않고 살려 내보내지만 파리만큼은 잡아야 성이 차는 무시무시한 파리킬러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파리를 참 잘 잡는다. 아무리 애매한 곳에 앉은 파리라도 쳤다하면 명중이다. 공기총으로 풍선을 터뜨려 인형을 타는 게임을 하면 보나마나 제일 큰 왕인형이 내차지다. 그런 일이 계속되면 그 가게는 망하고 말 터, 나 같은 손님은 출입을 삼가야하는 것이 도리다. 그런 연유로 사격게임장에 발 끊은 지도 십년이 넘어가건만 결국 타고난 재능은 숨겨지지 않으며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는 법이라는 것을 오늘날 파리잡이에서 깨닫고 있다.

이렇게 내가 파리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파리만도 못한 주목을 끌어 자존심 상한 욜라가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굳이’ 치약거품을 꾸루룩 컥컥 들이 마셔가며 ‘엄마, 어때? 이제 달려올거지?’ 하는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러고는 턱과 옷에 치약거품에 침까지 줄줄 흘리며 마구 울고불고 야단이 났다.

하하하 이 녀석, 엄마의 이성 스위치를 내리고 야성의 스위치를 올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구나. 영국군의 총구 앞에서도 물레를 돌리던 비폭력 무저항의 간디가 벌떡 일어나 물레가락 집어 던지듯 나는 파리채를 냅다 집어 던지며 그 도전 받아 주기로 했다. 이미 머리 뚜껑이 열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심한 욕을 하며 욜라에게 달려갔다.

“야아! 너, 치약 먹고 죽고 싶어?”라든가, “이게 진짜 미쳤나, 아우씨, 아주 지랄을”라며 욜라의 등짝을 팡팡 때렸다. 꽥꽥 우는 욜라를 보니 어쩐지 더 화가 나 이번엔, “뱉어! 뱉어! 가글을 하란 말이야! 어서!” 하며 물이 코로 들어가든 말든 컵에 든 물을 강제로 입에 퍼부었다.

욜라는 이미 백기를 들고 눈물 콧물 범벅으로 괴로워했지만 나는 욜라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얼굴에 물을 세리 처바르며 씻으라고 다그쳤다. 바로 삼십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리수나무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미소 짓던 서산 마애삼존불상이 나였고, 사랑의 마더 데레사가 나였는데, 순식간에 나치시대의 물고문관이 돼 버린 것이다. 원래 선과 악은 공존하는 것이며, 그래서 ‘빛’의 세계만을 쫓는 사람들의 기형을 비웃던 “데미안”이 나보고 ‘거 보라’고 웃는다.

‘그래, 나도 알아. 나라고 다르겠어? 아니, 나도 그렇고 그렇다고.’ 아프게 인정했다.

사실 그전에 나는 이 닦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욜라를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이를 닦일까에 대해서 백방으로 연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학구적 성과물도 꽤 된다. ‘4세미만 아동의 이 닦이기 3단계-설득, 협박, 성공적 딜-의 변증법적 고찰’, ‘유아문학의 소재 및 주제로 등장하는 충치벌레 사례연구’, ‘딸기맛 치약에서 스피아민트맛 치약으로 나아가는 길’ 등등.

칫솔을 든 나를 30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하다 ‘이 닦자’고 백번쯤 말하고서야 내 무릎 위에 누운 욜라. 이 닦는 내내 칫솔을 물어뜯고 손과 발을 홰홰 저으며 온몸을 이리저리 호떡처럼 뒤집던 욜라. 급기야는 치약거품을 꿀꺽꿀꺽 들이 마신 욜라. 그렇다고 해도 어쨌거나 이번엔 내가 너무 심했다. 냉철한 이성과 더불어 끊임없는 정신수행이 병행되어야 별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이닦기 미션. 그것은 늘 어렵고 피하고 싶은 과제다. 욜라가 충격을 받았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바로 욜라한테 용서를 빌기로 했다.

“욜라! 엄마한테 좀 와 봐!”

그러나 욜라는 아직도 내가 물고문관으로 보이는지 아빠한테 안겨 울고 발버둥치며 나한텐 오지 않겠단다. 헐~ 이를 차라리 썩히고 말지, 애 마음을 썩혀 버렸네. 욜라한테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직도 플럼빌리지에 살고 계신지 모르겠는데 “화”라는 책을 쓴 틱녓하인(틱낫한) 스님이 신자두에 침 고이듯 떠올랐다. 십여 년 전 완독하고 ‘이제 내 인생에서 과연 “화’낼 일이 있을까’하고 누구에게 줘 버린 뒤 종종 ‘괜히 줬나.’ 후회하던 그 책이 요즘 들어 더 절실히 생각난다.

과연 틱녓하인 스님이라도 화 안내고 웃을 수 있었겠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내가 웃는 것처럼 그 당시도 분명 웃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싶다.

나는 욜라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써보았다. 먼저 욜라의 좋은 점을 적어 보는 거다. 욜라의 좋은 점을 보면서 화를 덜 낼 수 있을 것이다. 내 노트엔 “욜라의 좋은 점”

1.맛있는 거 잘 나눠 준다.
2.참 단순하다.
3.귀엽다.

그래서 결론은 ‘그래도 본성이 악한 아이는 아니다’로 끝맺고 있다.

그 다음엔 화가 나려고 할 땐, 차라리 책을 읽기로 했다. ‘두통엔 아스피린, 빡칠땐 육아서.’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을 즈음 마침 욜라와 메리가 쥐어뜯고 싸움이 났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어찌하나 두고 보다가 순간 “둘다 그만 해애애애애애~~~~!”라며 샤우팅을 할 뻔했다. 록 그룹 보컬 뺨칠 샤우팅에 50년도 훌쩍 넘은 오랜 가옥의 서까래도 놀라 흔들거릴 만큼. 그러나 나는 책을 읽었다. 아주 큰 소리로 읽었다. ‘챕터 2’ 배려 깊은 사랑을 하세요-‘부모의 배려깊은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형제끼리 싸우지 않습니다’를.

그밖에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존댓말도 해 보았다. ‘해요체’를 사용하면서는 아이를 함부로 대하며 화내기 쉽지 않으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욜라 메리의 장점도, 책 진정제 투여도, 존댓말도 전혀 통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냥 그렇게 자꾸 노력해 보는 거다.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하고 말하니 “응”하고 나를 안아주는 욜라.

그런 욜라의 마음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욜라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냥 이해하자. 욜라는 지금 샌드위치야. 위로는 메리가 아래로는 로가 있으니 가운데 끼여서 많이 슬프고 힘들거야.’

그리고 바로 로를 안고 젖을 주고 있는데, 달려와 젖 먹는 로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버리며 사레들리게 해 놓고서는 하하낄낄 도망가는 욜라를 보고도 ‘욜라 샌드위치’를 생각했다. 욜라 안의 양상추와 토마토슬라이스가 어찌나 싱싱한지 한 번 깨물어 줘야 겠다.

“욜라, 너~ 너, 잠깐 기다려! 이따 보자. 응?(눈부릅)”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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