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16]
“별일 없지? 애들은 잘 놀고?”
“별일 없지? 애들은 잘 놀고?” 하는 지인의 전화안부에 굳이 별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애들 험담을 하기도 귀찮아 늘 대답은 그럭저럭이다.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으며 애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고.
실로 몇 달을 거슬러 돌이켜 보더라도 따분하리만치 별일 없이 지내온 것도 같다.
하루하루를 들여다 보자면 신파 드라마로, 전 세계에 방영된다면.... 전 세계인이 내 일상을 볼 수만 있다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음을 자신하는 처절하고도 고달픈 육아 현장이 예 있더라도, 엄마의 인내심의 깊이가 어딘지 수시로 시험하는 아이들로 인해 내가 신인가, 아니면 신이어야만 하는가, 아 신이라고 해도 이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장담하는 내면의 온갖 번민이 하루에 열두 번을 일어나더라도, 지나고 보면 다 그런 거지. 푸시킨 아저씨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읊지 않았나 말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은 오고야 말리니/마음은 미래를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지나가나 지나간 것은 훗날 그리움이 되리니.
요 2주간도 별일 없는 일상에 파묻히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
1.메리와 ‘겨울왕국’ 놀이를 하루에 세 시간씩 한다.(나는 엘사, 메리는 안나, 욜라는 때에 따라 꼬마 아바마마가 되었다가 겨울괴물이 된다. 셋 다 그 만화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토리는 늘 제 멋대로인데 정말 이젠 그 놀이 신물이 난다. 메리 입에서 “겨울왕국 놀이 하자”라는 말이 나오면 딴청을 피우거나 얼굴이 어두워지고 심장은 쿠쿵 하고 경기 일으킬 정도.)
2.메리와 욜라의 난투극을 평균 10분에 한 번꼴로 평정(?) 한다.(사실 전혀 평정 안 되고 메리는 때리고 싶은 만큼 때리고, 욜라는 맞을 만큼 맞고 때로 허점을 노려 반격을 가하고, 둘이 그러다 욜라가 KO당하기 전에 내가 핏대를 세우고 떼어 놓는다.)
3.메리와 욜라가 흘리는 콧물과 눈물과 똥과 오줌, 찐득한 손과 입가와 이마와 엉덩짝의 먼지 등을 닦아 주고 털어 주며 넘어지고 자빠지고 부딪히고 해서 울 때마다 가서 일으켜 주고 달래 주는걸 하루 평균 백 서른 번.
4. 메리와 욜라가 던지고 이동시키는 살림살이와 각종 허섭스레기와 잡동사니, 멀쩡한 서랍 속의 옷가지와 쏟아붓듯 빼내 오는 책들을 실시간으로, 못해도 한 시간에 한 번 정리해 주는데 꼭 3회치 그냥 내버려 두고 아구 골치야 내사 모르겠다 하고 드러누워 있을 때 이웃의 방문이 있다.
5. 하루에 한 번 이상 소풍을 나간다. 논길을 돌아다니고 할머니들 집을 방문하고 저녁밥 할 때가 다 되었는데도 안 간다고, 저녁밥 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간다고, 항상 어둑할 때 멧돼지의 습격이 있을 거라는 위협을 가해야 어기적 들어올똥말똥. 나 참 이제 와서 씻기고 저녁밥 차리기라니.
이제 그만하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인가. 밤에 자는 애들 얼굴 쓸어 주기와 이불 끌어당겨 주기가 새벽녘 오줌 마려워 변소 가는 길까지 이어진다는 것 말해 무엇 하랴. 그렇다. 이런 식으로 일상은 서글프다면 서글프게 흘러가고 묻히고 지나가다가 어느 순간 떠올리면 짠! 하고 기분이 좋다면 좋을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
결국 추억이 한 장의 사진이나 짧은 기록이라면, 아이들은 건강할 때는 쥐도 새도 모르게 훌쩍 훌쩍 크고 있다가, 가끔 지독히도 아프면서 엄마의 마음에 추억을 남긴다.
별일이 생겼다

이동침대에 실려 내시경실로 떠나던 날, 이미 주삿바늘과 의사, 간호사 복장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욜라는 병원이 떠나가라 울고 또 울었다. 소아병동에서 제법 먼 거리여서 가는 길에 수많은 인파가 욜라의 울음소리를 듣고 걱정해 주었고, 침대를 밀고 앞길을 트는 아빠로 보이는 남자와 침대 끄트머리를 잡고 따라가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를 향해 연민을 품었다. ‘아니 저 어린 아가는 어디가 아파서.... 그래 어디로 실려 가나’ 하고 쳐다 봐서 나는 별 쓸데없이 적당히 근심스런 표정을 지어야 하나 난감했는데, 옆에서 침대를 미는 간호사 두 명이 ‘못 말리는 아가군’하는 투로 웃는 터에 나도 곧 근심을 털어 버렸다.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우리를 다 키웠겠죠....
그 부인은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우리를 다 키웠겠죠....”
띵.... 그 말에 그냥 눈물이 펑 하고 터졌다. 갑자기 내가 부모님이 된 것 같았고, 내가 이렇게 자란 뒤엔(큰 병원 신세를 진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언제나 부모님의 가슴 졸임과 눈물이 함께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 감동스러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흐르는 눈물은 손으로 닦아냈지만 아아.... 흐르는 콧물은 어찌할 것인가. 옆에 있던 남편이 욜라 엉덩이 닦는 수건을 내밀기에 정신 차리고 그건 넣어 둬 하고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그러고 돌아가 보니 욜라가 아빠 품에 안겨 울음이 잦아들고 있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바로 골로 간다는 마취 주사를 듬뿍 맞고도 그날 밤 열 시 넘어 잠들 때까지 멀쩡한 정신력으로 버틴 욜라야! 밤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위로 아래로 열심히 굴러다니며 자느라 계속 칭칭 감기는 너의 링거줄을 밤새 푼다고 엄마는 잠을 전혀 못 잤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제 피똥 그만 싸고 황금똥 많이많이 싸자꾸나. 비록 네가 이렇게 엄마아빠를 놀래켜 주고 가슴 졸이게 할지라도 그 때문에 삶이 서글프더라도 엄마는 노여워하지 않으마. 분명히 퇴원의 기쁜 날은 오고야 말고, 싱거웠던 병원밥도 담백한 그리움이 되리니.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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