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8]

메리와 욜라, 그리고 막내와 함께 하는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벌어지는 오늘날, 조리원은 무슨 고릿적 이야기냐. 그래서 당초 7회분은 족히 잡았던 ‘본격 조리원 일기’는 이쯤에서 대충 막을 내리기로 한다. 조리원의 폭신한 매트리스가 내 엉치뼈와 척추뼈를 과도하게 긴장시키는 바람에 퇴실을 서둘고 만 것처럼.

알고 보니 나는 이불 스무 장을 깔고 누워도 맨 아래에 한 알의 완두콩알이 배겨서 잠을 자지 못하는 진짜 공주였다는 말인데.... 하지만 이야기 속 완두콩 공주는 예민함과 섬세함으로 공주임이 증명되어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현실의 나는 짐을 싸들고 친정으로 부랴부랴 내려가게 된다. 애 셋 낳고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그보다 높은 계층인 슈퍼맘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 체중 감소의 원인

그 와중에 메리와 욜라를 돌보고 계시는 시어머니의 몸무게가 2주 만에 7킬로그램이나 빠지셨다는 비보가 들려 왔다. 처음 메리와 욜라를 돌본 지 일주일 만에 5킬로그램이 빠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럴 리가.... 아마도 체중계 눈금을 잘 못 읽으신 게지’ 하고 말았는데, 오차범위 플러스마이너스 2킬로그램으로 잡는다고 해도 그 정도의 지속적인 몸무게 감소는 걱정스러운 일이다. 짚이는 것은 딱 하나뿐. 바로 ‘육아로 인한 체력소모’가 원인임에 틀림없다. 으윽, 어머니! 당신마저!

우리 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분기별로 10자 장롱, 5단 서랍장, 8단 서랍장, 5인용 가죽소파 따위의 육중한 가구를 이동배치 하는 게 취미시고, 손님이 들끓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을 거뜬히 운영하시면서도 틈만 나면 각종 요리연구와 민간요법 실험으로 쉬는 법이 없던 왕성한 체력의 소유자시다. 그리고 평소에 늘 다이어트를 의식하며 소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계시지만, 한번 찐 살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신 분이다. 찾아가 뵈올 때마다 애들 다 키웠다며 나보고 집에서 노냐고 하신 우리 어머니. 욜라를 보고 이젠 말귀 알아들으니 말로 해서 가르치면 애 키우는 거 뭐 힘드냐 하시던 우리 어머니께서 메리와 욜라와 함께한 2주차에 ‘애 보느니 일하는 게 훨씬 낫다’고 고백하셨다.

“휴.... 아니, 욜라, 말을 왜 일케 안 듣냐? 어휴.... 진짜 얘, 내 말 한 마디도 안 들어.”
“너 말대로 밥 먹이는 데 딱 한 시간이네. 밥 빼곤 다 잘 먹는다.”
“요리연구? 그런 거 할 시간 없어. 텔레비전 못 봐서 심심하긴.... 종일 애들 따라다닌다고 바빠서 심심할 새가 어딨어~”
“유치원? 보냈지~ 아침에 비가 좀 오긴 했는데 우산 씌워서 정류장까지 데려다줬지, 뭐 어쩌겠냐....”

이렇게 어머니는 하루하루 속을 태우시듯 몸속 지방도 같이 태우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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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어노는 메리와 욜라.ⓒ김혜율

메리 욜라와 만날 준비는 철처히

흠, 어쨌든 하루바삐 몸조리를 해서 복귀하지 않으면 우리 어머니 뼈만 남으시겠구나, 나로서는 친정에서 몸조리에 박차를 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특급 조리원에 있을 때보다 더 호사스럽고 편한 생활에 젖어들면서도 저 멀리 메리와 욜라와 시어머니와 그리고 남편의 근황이 들려올 때면 더욱 이를 악물고 몸사리기에 매진하였다. 물 컵 하나라도 씻고 싶은 유혹을 참아 내었고 얄팍한 지갑 하나 드는 것도 관절에 무리 간다고 동생한테 떠넘겼다. 올해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집에서 방황하고 있던 막냇동생이 이런 나를 두고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어이없어 할 때마다 그 지갑을 열어 만 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칠천 원짜리 심부름을 시키며 나머지 삼천 원은 너 가져라 해서 ‘얏호! 완전 꿀알바~’하면서 뛰어나가게 만들어 그때그때의 불만을 잠재운 것이다. 얼마나 몸조리에 최선을 다했는지 저녁이 되면 에너지가 남아돌아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폐단이 있었지만 어쨌든 평화롭고 배부른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철저히 메리와 욜라를 만날 날을 준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몸조리고 뭐고 그냥 ‘자기희생’이라는 단어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엄마노릇하기에 바쁘다.

이런 나를 남편이 가엾이 여겨 엉치 쪽 통증이라도 잡아 보자며 또 한 명의 용하다는 침술 명의가 있다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맥을 짚고 침을 놓는 현재 87살의 의원 옹과 그의 반백의 아들이 약을 반 세기째 짓고 있는 오래된 한약방이었다. 한약방이 있는 거리가 한약 달이는 냄새로 자욱했다.

약방 문을 열고 엉거주춤 들어가니 정말로 곧 돌아가실 것 같은 외모의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등장하신다. 할아버지는 앉자마자 다짜고짜 “이름!” 하신다.

“네?”
“아 글쎄, 이름 뭐냐니깐?”

내 이름을 떠듬떠듬 말하고 나서도 의원 옹께서 심기 불편하시지 않도록 나이며, 주소를 묻는 대로 또박또박 큰 소리로 외치듯 말씀 드리고, 이제야 어디가 아픈지, 여기 왜 왔는지 말하려고 하는데,

“소온~!” 하신다.
“네, 네? 소,손이요?”
“아 글쎄, 손 줘 보라고!”

역정을 버럭 내신다. 아 명의들이란~

얼른 손목을 내밀었다.
진단 결과, 산후 조리를 잘못했으며 몸에 찬 기운이 돌고 혈액순환이 안 되고 있단다. 아 놔~ 내가 그렇게나 발버둥친 산후조리의 허망한 결론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사실 오늘 침 맞으러 온 건데...한약 먹을게요, 먹어 볼게요~ 그거 먹으면 좋아지는 거죠? 저 그리고 침도 놔 주세요.”
“누워!”
“네. 누워.... 음.... 어디에, 어디에 누울까요?”

나는 어찌나 쫄았는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저기!”
“앗 저기. 아,  네.”

명의 옹께서 가리킨 곳은 그냥 방구석이었다. 베개도 없이 머리 두라고 방석 같은 게 하나 있는 맨 방바닥이었다. 아 심하게 고전적이야~.

진찰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세 발짝이면 되는 거리를 심하게 후들거리시며 점차 점차 다가오시는 명의 옹. 나도 나지만 명의 옹께서도 관절을 돌보셔야 할 것 같았다. 여하튼 보통 한의원에서 쓰는 잔챙이 침 말고 대침으로 몇 방 맞고 누웠다 어기적 일어나는데 명의 옹께서 눈을 빛내며 물으신다.

“어때?”

나는 솔직하고 싶어진다.

“음. 잘 모르겠어요.”

나의 도발적인 발언에도 명의 옹께선 조금도 흔들림 없이 잔잔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르긴 뭘 몰라! 좋아졌어! 자, 가봐!”

그래, 정말 그날 하루는 좋았던 것도 같다.

막냇동생의 깨달음

ⓒ김혜율
하지만 침을 매일 맞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마다 애들을 시부모님께 맡기기도 성가시고 ,약을 먹어도 딱히 혈액순환이 잘 되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추후 치료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 구슬프다! 나도 보모 쓰고 싶다! 살림 도와주시는 이모님 모시고 싶다!

유사시에 불러 써먹으려고 했던 나의 막냇동생도 갑자기 정신을 가다듬어 공부를 하는 통에 나는 어디 기댈 데 없이 오늘도 홀로 육아 중이다.

내가 집으로 복귀할 때 조카들 보고 싶다고 따라 올라와 한 일주일간 있다가 가면서 동생이 한 말이 귀에 어른거린다.

“언니야, 공부하는 게 참 힘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애들 보는 것보다는 엄청 쉽다는 걸 깨달았어. 막 공부가 쉬워지려고 해.”

큰 깨달음 얻은 동생에게 파이팅 보내고 싶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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