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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육아[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1]

지난밤 바람에 뒤뜰 고춧대가 절반은 꺾여버렸다. 튼튼한 지지대를 세웠어야 했는데 이제야 후회다. 가을까지 고이 키워 빻아서 고춧가루를 내서 김장 담그는 어머니들께 좀 드리려고 했더니만 어렵게 됐다.

비가 온 뒤 없던 벌레도 생기고 해서 그냥 파랗게 매달린 게 어디냐, 똑똑 따 된장찌개에나 넣어 먹어야겠다. 그래도 다른 작물들에 비하면 고추는 풍작이다. 대파 같은 경우는 쪽파 정도 자라고 더 이상 안 큰다. 다른 집 대파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서 엄청난 대왕파가 되었던데, 우리 집만 기아 24시다.

요새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대파가 포인트인 볶음면 요리를 내왔는데 이상하게 풍미가 없었던 것도 저 쪽파 때문이었을 거다. 메리 욜라 똥도 제법 묻고 해서 중파 정도는 자라 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땅심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그래도 대파는 또 양반이다. 윗집 할머니 밭에 심어 놓은 옥수수는 아주 끔찍하게 되었다.

나는 작년 이후 농사에 완전 손을 떼고 발길 한번 안 해서 풍문으로만 들었는데 옥수수가 어드메뇨 풀밭이 예 있소, 뱀이라도 나올 것 같은 정글이 되었다고 한다. 초반에는 김매러 애들 데리고 밭에 왔다갔다하던 남편이 바빠서 한두 달 발길을 끊은 사이 아예 손 쓸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우리 옥수수밭 바로 옆에 윗집 할머니의 정갈한 옥수수밭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니 그 극명한 대비를 생각하면 남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 쑥갓꽃.(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올해가 시골살이 밭농사 두 해째가 아니던가. 작년엔 뭣도 몰라 닥치는 대로 모종을 심었었지. 기본적으로 쌈채소 십여 종에 호박, 아삭이고추, 청양고추, 풋고추, 완두콩, 오이, 가지, 토마토, 브로콜리, 깨, 파, 배추, 옥수수 등등. 그중에 우리가 뭔가 먹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토마토랑 고추뿐이었다. 눈감고도 키운다는 상추는 이상하게 질겨서 못 먹었고 오이랑 완두콩은 애초에 말라 죽어 버렸고 브로콜리는 어디에 심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깻잎은 한 장 먹어보았다가 맛이 없어서 질겁을 한 이래 결국 관상용이 되었고 수확시기를 놓친 쑥갓은 자라고 자라더니 노오란 쑥갓꽃을 피워 가을 마당을 어여쁘게 장식해 주었다.

그리고 호박.... 호박은 정말 무섭게 넝쿨이 져서 가까이 가기도 싫었다. 구석에 심어서 위로 타고 오르게 해야 되는데 그걸 그냥 평평한 바닥에 몇 주나 심었으니 넝쿨이 갈데없이 온 마당에 퍼지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왕성했다. 히치콕이라면 분명히 호박 넝쿨이 사람들을 덮치고 죽이는 호러영화 “호박밭의 저주”를 만들 영감을 얻을 법한 광경이었다.

호박 넝쿨에 발이 걸려 자빠지곤 하던 어느 날 넝쿨째 마구 굴러다니던 호박을 몽땅 따서 큰 자루 속에 넣어 꽁꽁 묶어 놓았다. 놀러오는 지인들에게 넘겨 버릴 작정이었는데 며칠 지나 풀어 보니 그 아까운 호박은 이미 썩어서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암튼 나는 작년 한 해 조그만 텃밭 일구기만으로도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공부가 필요하고 엄청나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올해는 겸손하게 마당 한구석에 토마토와 고추 한두 그루만 심겠노라 했는데, 내가 친정에서 산후조리에 한창일 때 시골집에 오신 시부모님이 황폐한 황무지 같았던 뒤뜰을 밤낮으로 일구어서 비옥한 밭으로 만드시고 고추 수십 주를 비롯해 몇 가지 작물들은 더 심어 놓으셨다. 농사에 열정이 아직 있는 남편은 더 보태어 윗집 할머니 밭에 옥수수도 심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메리 욜라와 로, 세 아이 키우기만도 벅차서 텃밭이 어찌되든 말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옥수수밭엔 한 번도 올라가보지도 않았거니와 우리 집 뒤 텃밭에도 발걸음을 거의 안 했다.

앵두 따 먹으러 간다는 욜라 데려다 주러 같이 한두 번 가 본 게 고작이다. 모든 것을 남편 손에 맡겼다. 그러나 매진해도 어려운 걸 바쁜 사람이 시간 내서 몇 번 손길 주는 것만으로는 좋은 소출을 거두기엔 어림도 없었다. 고추는 쓰러지고 대파는 쪽파에 머물고 옥수수는 그 지경이 된 것이다.

시인도 성직자도 때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몸과 땅 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시간을 쓴 만큼, 땀을 흘린 만큼, 소중히 생각하고 마음을 쓴 만큼 몸은 아프거나 건강해졌고 땅은 우리의 수레에 딱 그만큼의 열매만을 담아 주었다.

쓰러진 고추나무에서 따온 싱싱한 고추를 요리조리 살펴보다 신기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키우고 있는 세 아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렇지. 우리 아이들이 바로 나의 ‘몸’이며, 엄마라는 ‘땅’에서 자라고 있는 열매들이 아닌가. 가정이라는 밭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나는 좋은 땅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부지런하고 지혜로우며 사랑이 넘치는 농부가 되어 줄 수 있을까.

   
▲ 김혜율 필자의 삼남매. (왼쪽부터) 메리, 욜라, 로.(사진 제공 = 김혜율)

그리고 다 자란 열매가 많은 이들의 생명이 되고 어느 밭의 거름이 되어서 떠나는 날이 올 때 나는 후회하지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으며 웃으며 그들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나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나를 키워 낸 엄마처럼 그 엄마의 엄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남겨진 밭의 거름이 되어 스러져 지층에 켜켜이 쌓여 가겠지. 그리하여 다시 태어나는 생명의 뿌리에 스며들어 무엇인가를 키워내고 꽃 피우고 열매 맺히게 할 수 있다면.

그러고 보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조금은 외롭고 슬픈 일이지만 기막히게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나의 지친 어깨와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 위에. 살다보니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어 있는 내 친구들에게. ‘잘 하고 있다, 괜찮다, 좋다’고 전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훌륭한 무엇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 나무의 절대적인 땅이 되어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고도 말이 없는 것. 그저 마음 쓰고 염려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 죽어서 꼭 북두칠성의 별이 안 되어도 그것은 그것대로 반짝이는 일일 것이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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