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6]

며칠 전 결혼 제7 주년을 맞았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라더니, 어쩌다 보니 애가 셋에, 어쩌다 보니 중견부부가 다 되었다. 라디오 사연을 듣다 보면 나오는 ‘결혼 8년 차 주부'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 너무 낯설다. 이런저런 각종 눈물겹고 웃음 터지는 주부사연을 보내서 기 장원으로 뽑혀 냉장고라도 타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만 할 시점인 것 같다. 물론 그런 사연은 없고 여기는 오지라서 라디오 채널이 EBS채널 밖에 안 잡히는 고로 살림은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지만.

나는 요즘 부쩍 ‘그 옛날의 나는 어디에 있나’를 생각하며 지낸다. 그 옛날이라 함은 파릇파릇한 이십대 시절을 거슬러, 돌도 씹어 삼켜 소화시킬 만큼의 왕성한 십대 시절도 지나쳐, 쎄쎄쎄를 하고 놀던 어린이 시절을 말한다.

그 당시 내가 교실에 놓인 풍금을 치면 한 반 모든 남자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풍금을 치는 나를 둘러싸고 구경을 하였다. 내 앞에서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던 생긴 게 알밤같이 귀엽고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던 한 남자아이가 생각난다. 그 애는 볼이 발갛게 되어 눈을 반짝 빛내며 내게 “야아, 너 손가락이 어떻게 그렇게 빨라? 또 쳐 봐, 응?” 하였다. 그 때 교실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6번 알레그로! 그 남자아이를 포함해 그 당시 함께였던 남자아이들은 아직도 그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나를 생각할까?

일명 초등학교 ‘국민 첫사랑’이었던 나를!! 이런 엄청난 과거를 남편한테 줄줄 털어놓아도 남편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너무나 평온해 보였고 살짝 졸린 것도 같았다. 나는 더 강도를 높여서 여자아이들이 서 있고 남자아이들이 맘에 드는 여자아이 뒤에 가서 짝꿍이 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랑의 작대기 몰표 사건을 말했고, 맘에 안 드는 남자애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노여워서 편지를 그 자리서 좍좍 찢어 버린 대목에선 목이 쉬어라 켁켁 대며 열변을 토했다. “이거 다 진짜야~ 왠지 안 믿는 거 같은데? 어후.... 정말. 아니, 내가 말이야, 옛날에 인기가 얼마나 좋았냐 하면...” 그러자 여전히 운전하는 뒷모습인 남편이 갑자기 허둥지둥하며

“믿어, 믿지~ 근데 혜율이, 그거 지금 세 번째 이야기하는 거야, 하 하 하! 나 다 들은 이야기야. 예전에 다~” 라고 한다.

이런 젠장, 국민 첫사랑한테 너무나 무엄하다.

“그래, 그래. 내가 예전에도 했어. 근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야. 진짜 당신 아주 대단한 여자랑 같이 살고 있는 거라구! 응? 나를 첫사랑으로 삼고 있는 무수한 남자아이들은 내가 대체 누구랑 결혼했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일 거라고!”

남편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도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나무의 생명뿐’이던가. 나는 아마도 그 누군가에게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읊조리는 사랑의 추억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쳇,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 그 예전 말이 그리 많지 않던 첫 사랑 소녀는 오늘날 자기 얘기로 목 쉰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태우고 분위기 좋은 카페? 아니, 바로 맞은편에 큰 놀이터가 있는 빵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와 남편은 빵집 앞 노천 테라스에 앉아 빵(아침 겸 점심인 브런치로 기획한 메뉴)을 먹으며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메리와 욜라를 지켜보며 한때의 여유를 만끽할 것이다. 그 빵집은 시식이 풍성해서 빵을 고르면서 빵 한 개는 족히 먹을 수도 있는데다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 놀며 에너지를 많이 방전한 아이들이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길 기대할 수도 있는 여러모로 실속 있는 코스다. 우리는 빵집 앞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메론빵과 양파크림치즈가 들어간 베이글을 먹었다. 아이들 것으로는 딸기맛 쉬폰케익을 골랐다.

예상은 빗나가고 10분 정도 여유 뒤. 거의 두 시간 여.... 남편과 나는 돌아가며 놀이터에 가서 계속 자빠지는 욜라 일으켜 주고, 무릎에 묻은 흙 털어 주고, 그네를 밀어 주느라 바빴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저녁을 먹으러 하나 둘 빠져나가는 때 우리도 그 자릴 벗어날 수 있었다. 기념일 선물이라고 우겨서 백화점에 가서 남편 청바지를 하나 샀고, 저녁으로는 구운 대파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 우동을 한 그릇씩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선 낮에 널어둔 빨래에 밤이슬이 내려 축축해진 걸 처마 밑으로 옮겨 놓고 얼른 잠자리에 들었을 뿐 이다. 그래도 작년엔 둘 다 깜박하고 넘어갔는데 올해는 선전한 편이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2년 전.... ‘결혼기념일 5주년’ 그날의 일기를 오버랩해 보며 앞으로 다가올 결혼 10주년엔 정말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해 본다.

2013년 10월 4일

매일밤이면.... 우리는 각자 한 명씩 맡아 귀염이들 잠 재우기 미션을 수행한다. 잠이 없는 애들.

메리는 두 돌 전 이미 낮잠 안자는 인생을 선택하였고 욜라도 매일 밤 옛날 마요네즈 CF 속 샐러리처럼 싱싱하기만 하다. 둘 다 재우면 열시 반 이상인데 보통은 그때 한 명 더 골로 간다.

어제는 그래도 결혼5 주년 전날이어서 뭔가 스페셜한 야식이라도 함께하려 미션완료 후 설렘을 안고 상대진영을 살펴보러 나왔더니 어랍쇼.

남편은 다양한 리듬감과 깊이 있는 음색으로 코를 골며 이미 램수면이 상당진행 된 듯했다.

가관인 것은 이불은 펴지도 않고 베게 삼아 베고 있고, 메리 옆에서 자는 곰돌이 친구의 손바닥 만한 이불을 끌어다 훔쳐 덮고 자면서도 마구 추워한다.

그래, 내일 내가 집을 나가야겠다. 메리 낳고 가출을 한 번도 안 했네. 집 나가기 딱 좋은 날씨가 아니냐. 작년 어느 겨울날 밤, 남편과 싸우고 홧김에 내복 바람으로 돈도 없이 집을 나갔었지. 하얀 눈송이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지.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눈을 감상하면서 남편이 나와 주길 기다리다가 그냥 얼어 죽어 버릴까 생각했다.

그런데 난 지금 잔잔한 꽃무늬 내복바지를 입고 있어. 아아, 이런 차림으로 얼어 죽으면 신문에 나올 거고, 그럼 우리 부모님이 슬퍼하실 텐데.... 일단 집에 들어가자! 나는 집 나가기 전 잔에 따라놓은 술이 채 식기도 전에 집에 돌아갔다. 머리에 쌓인 눈이 녹아서 눈물이 돼 뚝뚝 흐르는 내 젖은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남편이 수건으로 탁탁 털어 말려 주었다.

또 언젠가는 역시 남편과 다투고 바로 집을 나가려다가 아차차 이번엔 챙길 건 챙겨 보자. 시간을 너무 끌면 그냥 시장에 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바지를 갈아입고 지갑을 찾는 사이 계속 씩씩대는 소리를 내 주었다. 그리고 문을 쾅 닫고 머리에 스팀을 팍팍 뿜으며 밖을 나서는데, 청명한 밤공기와 더불어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치지지지직..... 그대로 화가 식었다. 쫓아 나온 남편에게 아직은 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 됐다. 나를 잡는 손을 마구 뿌리치면서 쵸리쵸리 내리는 안개비를 조금 더 맞으려니 심지어 상쾌함이 밀려왔다.

가을이 이렇게 좋은 계절이었던가. 가을엔 바람의 방향이 여름과 다르게 우리 집 부엌 쪽창에서 불어온다. 계란 후라이를 하면서 절규를 한다. 바람이 좋아서. 비도 눈도 추위도 없어서 집나가기 좋은 계절. 자.... 이렇게 결심하고 남편 괘씸히 여기며 오늘 밤은 밤새 책이라도 읽자고 방석 깔고 앉았는데, 읽다보니 다른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까잇거 이까잇거 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가볍고. 슬픔과 분노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려 했는데 또 실패다. 잠이 온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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