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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 일기-1[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5]

필자가 셋째를 출산하여 한 달여 쉬었던 '욜라 즐거운 육아일기'가 오늘부터 격주로 수요일에 다시 연재됩니다. 김혜율 님의 세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

막내는 효자

막내는.... 진짜 정말 셋째가 막내입니다. 에이 그러다 넷째 또 낳는 것 아니냐는 말씀은 제발 말아 주세요. 지금 애 셋 떠안고 경황이 없어요. 아무튼 막내는 다행히 효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빠가 자리한 가운데 태어나 주었으니까요. 뱃속에서 곧 박차고 나올 것처럼 굴던 셋째는 병원에 입원해서는 꿀맛같던 병원밥이 지겨워질 무렵에서야 태어나 주었는데, 결론적으론 엄청난 순산이었습니다.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던 가족과 지인들이 하나같이 무슨 애를 그리 순풍 잘 낳았냐고 마치 가볍게 운동장 한 바퀴 뛰고 온 것처럼 제 산고의 고통을 이해하는 듯하더군요.

아...너무 억울해요. 정말 그 고통은 이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애 둘을 낳았기 때문에 그 아픔이란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감 잡고 있다고 여겼는데, 막상 진통 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세상에나 그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그래 바로 이거였어. 진통 시간은 짧았지만 극도의 고통이 나 자신을 집어삼키는 듯했습니다. 거의 형벌이었습니다. 반실신 인사불성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죽는 건 아닐거야.... 하고 버티며 고통의 끝에 다가올 ‘탄생’의 순간을 기다린 것이지요.

사람도 알 낳아서 품으면 안 되나

   
▲ 갓 태어난 필자의 셋째.ⓒ김혜율
견딜만했던 진통 초반에 살짝 겁을 집어먹고 분만실에 들어온 수간호사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저...혹시 별로 안 아프고 애 낳을 수도 있나요? 그런 산모는 없나요?”했더니 잠깐 농담인 줄 아셨다가 진지한 내 표정을 보고는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아플 만큼 아파야 애가 나오더라구요” 라는 친절한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아이를 낳고서 며칠 동안 저는 그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그냥 나도 새처럼 알 낳고 싶다. 알 낳아서 품어 주면 제가 알아서 알을 깨고 나오면 오죽 좋냐. 왜 사람은.... 왜 여자는.... 왜 엄마는 이렇게 아파야만 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9층 높이의 조리원 창문가에 서서 나와는 상관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아래 세상을 멀리 조망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미리 어느 정도 고통의 맛 보기랄까요 혼이 쏙 빠질 만큼 아픔을 겪게 하는 거죠. 아기 낳는 것에 버금가는 젖몸살의 고통이라든가 앙상한 신생아와 마주했을 때 드는 감당하기 버거운 부담감 같은 것이나, 밤잠 설치며 모유 수유 성공을 위한 사투를 벌일 때 버틸 초인적인 정신력, 인내력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조리원 일기

밤이면 밤마다 도시 야경의 아롱거리는 불빛을 보며 조리원에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짧았던 일주일간의 조리원 생활이었지만 돌아보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벌써 가물가물 거리긴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기억을 더듬어 ‘본격 조리원 일기’를 써 볼까 합니다.

산후조리원! 그곳은 또 다른 세상입니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면서 ‘엄마’라는 신분을 받아들이는 비슷비슷하면서도 유일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며 흘러가며 스쳐가는 공간. 그곳 신생아실은 오늘도 하얀 강보에 돌돌 말린 빠알간 얼굴의 갓난쟁이들이 일렬로 죽 누워서 엄마 뱃속에서의 꿈을 이어 꾸고 있겠지요.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산모들이 아가 살찌울 거라고, 내 아가 건강하라고, 부끄럼도 모른 채 앞섶을 풀어헤치고 그 어린 것 작은 입에 젖 물리느라 밤낮으로 실랑이를 하고 있을 것이고, 그러다 힘들어서 딱 포기하고만 싶은데.... 난 엄마니까 그래도 좀 더.... 하며 맘대로 안 되는 현실에 그저 소리 죽여 울기도 하겠고요.

조리원에서 만나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그래도 낳을 때 고통은 그때뿐이야. 차라리 그게 나아. 지금 ‘이것’에 비하면”

첫째 날

병원에서 퇴원하고 바로 옆 건물 산후조리원에 들어왔다. 이곳은 총 16명 정원의 가족적 분위기의 조리원으로 특히나 밥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내 방은 115호. 조리원 직원들은 나를 이름대신 ‘15호 산모님’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2주를 지내기로 했는데 어쩐지 자신이 없다. 조리원 예약을 하기 전에 시설을 직접 둘러보지 않은 게 잘못이었나. 방 한쪽 벽면을 차지한 꽃무늬 벽지가 촌스럽고 맘에 안 들어 기분이 급격히 우울해졌다. 침대 위에 놓인 수유 쿠션과 전화기 옆 탁자에 놓인 멋대가리 없는 유축기가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대신해 주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고층인데다 창문이 커서 햇볕이 잘 들어오고 시야가 탁 트여 있는 점이 큰 위안이 된다. 바로 맞은 편 백화점 건물의 투명 엘리베이터가 끊임없이 사람들을 위아래로 실어 나르는 것이 보인다.

신생아실에서 큰 소리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내 아기는 아니겠지? 우왕좌왕 서성이고 있는데 종이 울린다.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앞으로 이 종소리에 내 침샘이 자동반응 하겠지. 조리원에서는 하루 세 번의 식사와 세 번의 간식을 제공한다. 그러면 두세 시간마다 무언가를 먹는 것인데 아기를 낳고 나면 뱃속이 허해서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금방 고파지니 이 시스템은 절대 과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거실로 나가니 나와 같은 분홍색 물방물 무늬의 복장을 한 산모들이 부스스한 얼굴로 각자의 방에서 꾸물꾸물 나오고 있다.

옆방 ‘14호 산모님’은 이미 산부인과 병원 수유실에서 몇 번 마주쳐서 안면이 있는 산모다. 수술을 해서 아기를 낳았는지 배에 복대를 하고 있었는데 모유 수유에 대해 신생아실 간호사들에게 이것저것 묻는 것이 아마도 이번이 첫째 아기인가보다. 농구선수마냥 키가 큰데 눈은 토끼눈처럼 동그랗고 귀여운 인상이어서 호감이 간다. 아기 낳을 때 피를 많이 흘렸는지 얼굴이 노랗고 입술이 푸르스름해서 안쓰럽기도 하다.

식당에 차려진 호화스러운 음식에 급격히 생기가 돌았다. 첫날이라 전학생마냥 모든 것이 낯설어서 그저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먼저 조리원에 들어와 서로 친해진 산모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조리원에서의 인사는 보통의 사회에서와는 다르다. 이름, 직업, 소속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누구나 먼저 이렇게 물어본다.

“첫째에요?” 이번이 첫째 출산인지 묻는 것이다. 첫째 출산산모는 첫째다운 풋풋함으로, 둘째 출산산모는 좀 더 여유 있는 태도다.

나를 보고도 기존 멤버들이 물었다.

“첫째에요?”
“훗, 아니요~^^”
“그럼 둘째?”
“아뇨”

헉 그렇다면? 밥을 먹다 말고 모두들 수저를 떨어뜨릴 기세다.

“하하..셋째예요.”

여기저기서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워졌다.

그 다음 질문은 “자연분만이에요?”로 이어지는데, 서로의 각종 진통 경험담을 공유한 뒤에는 두 손을 맞잡고 부둥켜안고 싶어질 정도로 친해진다. 수술을 한 산모는 그 사람대로 또 할 말이 많다. 얼굴이 창백한 14호 산모는 진통을 하다 간호사에게 너무 아프니 그냥 수술시켜 달래서 수술을 하게 된 거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길 차라리 수술 뒤 후폭풍이 낫지 출산의 고통은 사람으로서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자기는 수술하고 후회는 없단다.

그래 그렇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여 주었다. 11호 산모는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나 유도분만을 시도했는데 아무리 해도 진통이 안 와서 이틀 꼬박 분만실 침대에서 다른 산모들 비명소리를 듣다가 결국 수술을 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나니 힘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함께 겪은 그들에게 동지애가 생기며, ‘나만 힘든 게 아니야’하는 위안을 받았다.

그 다음은 으레 “아들이에요, 딸이에요?”하는 아기 성별을 묻고 몇 킬로그램으로 낳았는지 물어본 다음 마지막으로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로 궁금한 신상파악을 마친다.

그러니까 나는 16명의 산모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최고 다산의 여왕이었으며, 본격 진통 세 시간여 만에 애를 순풍 낳은 출산의 신이었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셋째라니 믿기지 않는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산모들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태연하게 웃어 주었다. 셋째 맘인데도 젊어 보이는 것. 기분이 좋다. 미역국을 후루룩 비운 다음 조리사님께 ‘한 그릇 더’를 외쳤다. 14호 산모가 자극을 받았는지 깨작깨작 먹던 미역국을 들이 마시는 게 보였다.

방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조금 부은 얼굴이지만 나쁘지 않아 보인다. 힘이 난다. 내친 김에 웃옷 자락을 살며시 들쳐본다. 휴,... 배는 여전히 임신 7개월이네. 힘이 빠진다.

침대에 누워 봤다. 매트리스가 나한텐 과하게 푹신하다. 누웠다 일어나면 엉치 쪽이 쑤신다. 온 만신이 쑤신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낳고 난 뒤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잠을 자려고 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각성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이다. 한 시간이라도 달게 자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은 지 얼마나 됐을까 ‘띠링띠링 띠링띠링’, 신생아실에서 호출전화다.

“산모님, 아기가 깼어요, 젖 물려보시겠어요?”

아직은 초유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아기에게 무조건 자주 젖을 물리는 것이 모유수유 성공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여느 산모들처럼 웃옷 단추를 풀어 제낄 태세로 신생아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내달린다.

그렇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쟁이다.

모유수유와의 전쟁.

조리원 일기 be continued....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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