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14]

누가 나에게 집에서 애들과 종일 부대끼는 것과 밖에서 애 둘을 커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힘든지 묻는다면?

내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풍경이 그려질 것이다. 나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한 줄의 계단을 처음부터 끝까지 올라간 뒤, 꺾어진 또 한 줄의 계단을 이어서 오른다. 그 계단의 끝에서 새로운 오르막 계단을 이어서 올라가면, 비로소 네 줄의 계단 중 마지막 계단 층계를 오르게 된다. 그 계단의 마지막은 서로 이어져 폐쇄적인 사각형 안에 갇힌 네 줄 계단의 종착점, 제일 높은 곳이어야 마땅한 꼭대기. 그러나 곧 내가 맨 처음 밞았던 첫 계단이 바로 한 층계 위에서 넌 지금까지 제일 첫 계단의 바로 아래 층계까지 올라온 것이라고 일깨우는 낮잠 속 악몽처럼 덤벼드는 뫼비우스의 띠를 만나고 만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서 이렇다.

“사실 둘 다 힘들어. 집에 있는 게 a라는 고단함이라면 밖에 나가는 건 b라는 고단함이고, 음… a와 b는 무엇이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매력이 전혀 다른 룸살롱 마담과 같다고 할까. 한 군데만 가면 다른 한군데가 그리워지는? 순박한 동네 마담이 너무 지루해 넌더리가 난다며 대형룸살롱 마담이랑 어울려 봤자 돈 왕창 뜯기고 다시 돌아오고 말지만 또 슬며시 그 꽃뱀의 똬리에 목이 옥죄어도 좋다 하며 나갈 궁리만 하는 것과 같은, 뭐 그런 난봉꾼의 치명적인 생활 패턴과도 같은 걸 내가 반복하고 있는 거야....”

그런 연유로 며칠 간 집이라는 링 안에서 매일매일 애들과 서로 펀치 날리다 녹다운 되었으니 이제 링을 바꿔서 뛰어 보고자 동네 도서관에 갔다. 동네라 해도 차를 타고 15분은 하염없이 가야하는 우리 동네 인프라! 그래도 마침 토요일이다. 직장에 출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토요일 오전의 설렘은 여전하다.

남편이 욜라의 바지춤을 잡고 있는 사이 난 재빠르게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와 프랑스 육아계의 대모라 불리는 저자가 쓴 <소리지르지 않고, 때리지 않고 말 잘 듣게 하는 100가지 방법> 같은 책과 무슨 생각에선지 장편 판타지 소설 <서유기> 1권을 골랐다. 아마도 원숭이와 돼지와 또 정체불명의 사오정이 삼장법사와 함께 펼치는 모험과 환상에 현실을 잠시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도서관바닥에 누워 뒹구는 중인 욜라 ⓒ김혜율
그리고 남편과 바통 터치하여 어린이 도서 코너로 애들을 몰고 갔다. 메리가 욜라만 할 때는 나름 공공장소 예절에 대해 감 잡고 어린이 책방에서 있으라고 할 때까지 있었건만 ‘욜라는 결코 그런 아이가 아니다.’ 볕 좋은 토요일, 도서관 나들이에서 겪었던 수모와 치욕 중 극히 일부를 고발하고자 한다. 나중에 욜라가 커서 사춘기 때 무게 잡고 잘난 척 할 때 제시할 어린 시절 증거 자료로 남기기 위해서다.

메리가 오줌 누고 싶다고 해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물론 욜라 보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들 말귀도 못 알아듣고 어디로 튈지 몰라서 화장실 한 칸에 셋이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욜라가 뒤질 쓰레기통이 변기 구석 멀리 있고 통로마저 좁아 난 안심하고 메리가 읽어 달라는 화장실 문짝에 붙은 글귀를 읽어 주고 있었다. ‘길가에 꽃이 향기로 말을 건네듯 우리 사람들도 그처럼 말 없이 향기로운 인품으로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어떨까’ 하는 내용의 시 한 구절을 시 낭송 모드로 들어가 낭랑하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메리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도서관에서 펼쳐지는 육아 전쟁

변기에 빠졌나 싶어 돌아보니 욜라가 비데기의 비데 버튼을 눌러 쏘아대는 물줄기에 무방비상태의 메리의 엉덩이와 옷이 다 젖고 있었다. 물이 줄줄 흐르는 메리의 몰골을 수습하기에 바빴지만 정신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욜라의 계속되는 무차별적인 버튼 공격! 난 계속 총구처럼 튀어나오는 비데기 물줄기 호스를 계속 진정시키며 사람이 변기에 앉지도 않았는데 센서가 작동되는 이 위험천만한 구식 비데기에 욕을 하며 정지 버튼을 연속으로 눌렀다.

욜라는 나의 위협적인 목소리과 매서운 눈길을 완전 무시하고 정지버튼의 이중 기능인(버튼을 길게 한 번 더 누르면 작동되는 걸로 사료되는) ‘쾌변’기능을 마구 누르는데 여념이 없다. 나중엔 나한테 질세라 악을 쓰고 눌러 대는데, ‘이 녀석 승부 근성 있네’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누른 게 ‘정지’인지 ‘쾌변’인지 너무 헷갈렸지만 대충 호스가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얼른 나오는데 애들이 어기적거린다.

그때였다. 쾌변 물줄기가 정말 맹렬하게 나의 등판을 때렸다. 으아아악! 굵고도 힘찬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나를 쫓아왔고 나는 머리와 등 뒤로 물을 뚝뚝 흘리며 다급히 화장실 문을 닫았다. 옆 칸에서 나온 도서관 사서가 우리를 지나쳐 황망히 나가는 것을 보고 뭔가 조치가 취해지겠거니 하고 문을 잡고 버텼다. 그러나 화장실 문짝을 세차게 때리는 물소리와 바닥에 점점 번지는 흥건한 물난리에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그나저나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물대포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혹시 이 기능은 정지 버튼을 누르기 전엔 알아서 멈추지 않는 건가! 하는 어두운 예감이 들었다. 곧 사람들이 올 것 같아 잔뜩 겁먹은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쾌변’ 대란 속으로 다시 들어가 정지 버튼을 눌러 상황을 종료시켰다. 한편 도서관 사서는 그길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튄 것이다.

옷의 물을 대충 짜내고 옷이 마를 때까지 도서관 복도에서 등이 안 보이게 조심하면서 앉아 있는 중이었다. 욜라가 바닥에 누워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과자를 주고 가셔서 잠시 조용했는데, 이번엔 정수기 쪽으로 간다. 물을 먹겠다고 해서 주면 안 먹고 버리고, 버리면 또 물 달라고 하기를 한 열 번쯤 했더니 종이컵이 너덜너덜해져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울면서 쓰레기통을 쑤시며 자기 종이컵(?)을 찾아온다. ‘그래 이건 네 패턴이지. 어디 한번 해 봐라’ 하고 나도 강경하게 버티고 섰다. 낮게 으르렁대며 “그만” “하지마, 욜라” 이런 말을 계속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소용없다.

욜라가 이번엔 정수기 냉수 레버를 잡아당기며 제 옷을 다 적시며 깔깔댄다. 이쯤에서 옆에서 스마트폰 하고 있는 학생에게도 내가 자식 교육에 소홀하지 않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겸 욜라를 끌어냈다. 그런데 내 손아귀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온 몸을 내동댕이치며 반항하는 욜라를 초인적 힘으로 들어내 복도에 놓인 소파에 패대기쳤다.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소동이 있었고 욜라의 악쓰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지만 그래도 여긴 어린이 열람실 앞의 복도이기에 선을 심하게 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나름 복화술을 쓰듯 우는 욜라를 달래고 있는데 도서관 직원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서 뛰어나왔다.

“저기 어머니,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아이를 도서관 밖으로 데리고 나가세요. 지금 민원이 들어왔어요, 민원이.”

옆에 있던 메리가 냉큼 물었다. “민원이 뭐야?”
나는 기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민원? 우리 도서관 쫓겨나는 거야. 시끄럽다고 사람들이 나가라는 거야. 엉? 엄마가 말했지? 계속 이러면 쫓겨난다고! 가자, 가! 어서 밖으로 나가자구!”

▲ 도서관에서 쫓겨난뒤 풀죽은 뒷모습들 ⓒ김혜율

급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계단으로 내려가자 이끌었다. 물론 욜라는 계단에서도 한참을 악을 쓰고 울었는데 이번엔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각박한 시골 도서관 인심에 맘 상해서 복수심이 발동한 것이다. 욜라는 내가 안아 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내려오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데 사실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시간이었다. 이젠 안 되겠다 싶어 번쩍 들어 올려 일층까지 내려 주니 욜라는 그게 아니라는 듯 또 울면서 손을 발처럼 사용해 기듯이 층계를 다시 올라가더니 처음부터 다시 해보잔다. ‘아놔... 이 녀석 스팀 나오게 만드네.’ 결국엔 아예 애를 보쌈을 해서 도서관 마당까지 들고 가 벤치에 메다꽂았다.

급히 타전한 소식을 듣고 짐 싸서 내려온 남편과 함께 따스한 가을 햇살 속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욜라의 생떼를 진정시키고는 이날의 도서관 외출을 마감하였다. 집으로 가면서 남편이 물었다. “역시 집에서 애 보는 게 그나마 편하지? 아니... 그래도 밖에서 보는 게 더 나을라나?” 나는 분명히 말한다. “집에서 하는 고생이 지겨워서 밖에서 하는 고생을 택한 것 뿐. 둘 다 힘들어, 뭐 그런 거지 쳇.”

어느새 내 등짝의 축축함도 다 가시고 욜라도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이로 돌아와 주었다. 나는 이렇게 오늘도 내일도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것일까? 천사같이 자는 메리와 욜라를 보면 이 아이들이 다 커서 어른이 된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다. 아주 먼 이야기 같은데 누구나 말하는 금방인 세월. 나는 그저 끝이 있는 내리막 도로를 달리고 있는 중일지도. 그리고 어쩌면 속도가 계속 빨라지는 것이 두려워 때때로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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