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0]

금요일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죠.
우리가 입술 사이로 ‘금.요.일’ ‘금. 요. 일’하고 불러만 보아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느덧 ‘홀리데이’가 되는 것 같거든요.

따위의, 개작시를(국어시간에 배운 ‘풀잎’이라는 영롱한 시가 원작임) 흥얼흥얼 읊는 나는 때로 시상이 떠오를 만치 금요일을 사랑했다.

집에서 요일 구분 없이 육아와 살림이라는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요일별로 나름 차별은 두고 있다. 메리 유치원 일정인 월요일 수요일은 영어 특별수업, 화요일은 오르프, 목요일은 수학, 금요일엔 체육. 아침 간식은 월수금은 우유, 화요일은 요플레, 목요일은 요구르트 하는 식에 맞추어서 말이다. 그게 뭔 상관이야 하고 시답잖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대다수의 훌륭한 엄마들은 아이가 입으려했던 블라우스의 목 부분 큼직한 프릴장식이 체육시간에 뜀뛰기할 때 애를 목도리도마뱀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며, ‘우유’ 간식이 나오는 날에 아이한테 빵과 ‘우유’나, ‘우유에 만 콘플레이크’를 아침으로 먹이는 것은 센스 없고 눈치 없는 짓이라는 것도 단박에 꿰고 있을 것이다. 뭐.... 아님 말고.

일상인 듯 일상 아닌 금요일

그중 금요일 체육은 다른 수업과 달리 삼십분 늦게 시작해 오후 2시에 끝나는데, 메리를 태우고 오는 유치원 버스가 1시 40분에 집에 오니,(유치원 다니는 아이들 중 집이 도시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 시골은 오직 메리 혼자라, 특별히 메리만 2시 하원 하는 아이들보다 먼저 집에 오는 상황임) 곧 그 얘기는 체육수업을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면 그날은 애를 직접 부모가 픽업해가라 이 말이다. 그래, 그럼 남편이 메리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면 되는데, 올 하반기는 먼 지방 도시에 1교시 강의가 잡혀서 새벽에 집을 나가 저녁 늦게야 들어와서 메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바로 그것이 내가 더 이상 금요일 예찬시를 흥얼거릴 수 없게 된 까닭이다. ‘사람잡는’ 금요일....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아침 유치원 보내기부터 심호흡을 크게 한다.

여유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밤새 물풍선이 된 욜라 기저귀 벗기는 것만 하더라도 극심한 거부에 도망 행렬. 결코 말로 안 돼, 회유 안 돼, 버둥대고 악쓰는 욜라를 제압하는 완력으로만 가능하다. 책 가져와서 목에 들이대고 읽어 달라 협박하는 와중에 식탁차려 밥 먹이면서 계속 돌아다니며 말 안 듣는 아이들 지속적인 인성교육 시키며 첫 번째 ‘참을 인’자를 가슴에 아로새긴다. ‘외출복 입히기 대장정 시간’엔 서랍장을 막 쑤셔서 찾아온 각자의 코디분을 검사하여 심하지 않으면 그냥 입자 입어 하면서 또 한 번의 ‘참을 인’자를 뜨겁게 새기고. 그러다 둘이 포크 들고 싸움이 붙어 난리가 난 걸 뜯어 말리면서 마지막 ‘참을 인’자 카드를 힘겹게 꺼낸다.

▲ 눈발 날리는 마당에서.ⓒ김혜율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신겨 주며 용케 화 내지 않고 여기까지 왔군, 이제 거의 다 됐다... 했는데. 망할 벙어리장갑!! 엄지손가락 구멍에 엄지손가락만 넣으면 되는데 일부러 손 모양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장갑이 안 들어가게 해! 그래서 그냥 큰 구멍에다 모조리 억지로 쑤셔 넣으니 불편하다고 생난리를 치며 벗어 들고 다시 제대로 해 보라고 고함을 치질 않겠나, 자 그러면서 욜라, 눈 녹아 질퍽해진 마당을 첨벙거리다 자빠지는 액션을 추가한다. 참내. 이제 더 이상 ‘참을 인’자는 없다 요놈들아! 이제는 공포의 외인구단식 지옥전지훈련이다. 각오해라!

‘하으아, 두으아, 세으아, 네으아, 핫둘셋넷! 핫둘셋넷! 페달 밟아, 더 빨리, 더! 야, 뭐야! 가운데로 달려야지 옆으로 빠지면 어떡해! 그러다 논두렁에 처박힌다아! 앗! 돌멩이는 피해야 할 것 아니야! 바퀴가 덜컹거리잖아! 벌써 9시가 다됐어. 어쩌지? 이렇게 꾸물거리면 오늘 유치원 못 간다! 버스는 우릴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그러기에 왜 밥 늦게 먹냐고오~ 엄마가 빨리 먹으라고 했잖아! 좀 더 빨리! 하으아! 두으아! 세으아!’

괴물같이 소리 지르고 악쓰며 숨이 끊어질 듯 버스시간 맞춰 메리를 태워 보내고 나면 다리가 풀린다. 눈도 왔고 바람도 매서운 어느 추운 날엔 버스 보내고 너무 힘들어서 좀 울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12분 걸리는 거리를 어떻게 오늘은 7분만에 돌파했는지, 나의 저력이 서러워 어흑어흑 운다. 달리면서 7개월 된 뱃속의 셋째가 내일이라도 바로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해야 했던 나의 처지가 기가 막혀 으앙 하고 운다. 마당에서 엎어질 때 혼이 났던 욜라도 이제야 서럽다고 따라 운다.

두 사람의 울음이 터진 시골마을 버스정류장은 참 고요하기도 하지. 저 건너 눈 쌓인 논에 까치 같은 새 몇 마리가 이쪽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먹이를 찾으며 걷다 날다 하는 걸 보며 눈물을 닦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마을 길을 되걸어 오면서는 좀 전에 지나가며 너무 큰소리로 떠든 게 생각나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이제는 다른 한 건이 기다린다

한 건 했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시. 내가 일초라도 눕는 꼴을 못 보는 욜라의 감시 하에 누워서 쉰다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욜라 시중들면서 틈틈이 집안일을 하다보면 점심도 먹기 전에 메리가 올 시간이거나 메리를 데리러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사전에 항상 메리의 의견을 묻기는 한다.

“메리야, 네가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것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체육 수업을 들으면 엄마가 데리러 가야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차는 아빠가 가지고 가셨고, 엄마는 걸어서 유치원에 가야 해. 물론 욜라를 유모차에 태우고 말이야. 그리고 나서도 또 너랑 욜라와 함께 걸어서 집에까지 와야 해서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러니 안타깝지만 이번 주 체육은 하지 말고 그냥 버스타고 집에 오면 어떻겠니? 집에 와서 더 재밌게 놀자~ 응?”

하고 간청을 매번 해보지만 역시 메리는 피도 눈물도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절대 체육시간은 포기할 수 없단다. 아무렴. 메리가 방긋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나도 간절하다. 참고로 집에서 유치원까지는 욜라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경보선수마냥 숨이 차도록 쉬지 않고 최대속도로 걸었을 때 40분이 걸리고, 유치원에서 메리를 만나 집까지 걸어오다가 욜라도 유모차에서 내려 걷겠다고 설치는 날엔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는 거리다.

눈이 오고 비가 올 때는 거의 재앙이다. 걷다가 자기연민에 빠진다. 갑자기 눈을 뿌리는 하늘을 원망한다. 연말이라 남은 예산 억지로 쓴다고 마을길 넓히는 공사판이 벌어져 수시로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다니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의 위협적인 몸체와 매연을 진심으로 증오한다. 문명의 이기, 콜택시는 딱 한 번 이용했는데, 기사님이 여기는 너무 오지라 한 번 들어왔다 나가는 값으로 만 칠천 원은 받아야한대서 그냥 매번 몸으로 때우고 있다. 아이의 유치원 체육수업 30분을 위하여 왕복 2시간을 걷는 엄마라니! 게다가 굉장히 짐스러운 욜라라는 아이를 이끌고 뱃속엔 아이를 한 명 더 품고서! 아아 이토록 아이교육에 헌신하는 열혈엄마가 바로 나라니! 정말 절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루소의 ‘에밀’이라는 책을 절대 읽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나오는 한 구절. ‘당신의 아이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이가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는 것이다’를 신뢰하는 나는 혹여나 내가 아이에게 너무 많은 물건을 제공해 주지 않는지 항상 조심한다. 사 달라는 장난감, 과자 같은 것은 최대한 절제하고, 쉽지 않게 물건을 가지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기다림으로 인한 설렘을 선사하고자 한다. 그래서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아끼며 사용하도록, 그 마음이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인간과 생명에 대해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염원한다.

하지만 몸으로 때우는 것은 그 반대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만큼의 체력과 시간을 모조리 쓰고 있다. 메리가 고안하는 각종 게임은 정말 뇌세포가 다 죽어 버릴 만큼 너무 재미 없어서 몸이 배배 꼬이지만 어떻게든 놀아 준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가 다 있냐는 투로 놀아 주다가 도저히 지루해서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땐 금단증상 온 뽕환자처럼 손을 벌벌 떨며 남편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제정신을 다잡는다. 숨바꼭질, 술래잡기, 같은 책 백번 읽기, 외에도 각종 머저리 같은 놀이가 수두루 빽빽하다. 아아아흠.

중간중간에 버럭 화도 내고, 얼굴이 마치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자처럼 길쭉하게 변해 헤롱대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남편 붙잡고 신세한탄을 하기도 하는 나약한 정신과 육체이지만, 그래도 오늘도 달린다. 세발자전거를 잡은 한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발이 꼬여 넘어질 뻔하기도 하지만 얼른 균형을 잡는다. 그러면서 늙은 어미는 더욱 더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나는 몸으로 때우는 엄마니까. 울고 웃는 모든 시간을 함께 하기로 한 엄마니까.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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