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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 일기-2[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6]

조리원 둘째날

아이를 낳은 지 4일째. 잠 한 숨 못자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잠을 청하고 누워 눈은 감았다고 해도 애국가4 절을 줄줄 욀 정도로 정신이 총총하다. 당연스레 지난밤은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신생아실 콜 대기조로 불침번을 서며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밤새 방과 신생아실을 왔다갔다 했더니.... 육신이 사정없이 휘정거린다. 하지만 내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은 융숭한 삼시세끼 매끼 간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산모님들! 딱 봐도 각종 피곤과 산후 후유증에 쩔어 있는 좀비형 산모님들 덕분이다.

애 젖 주러 가는 길목, 그녀들과 새벽 1시에 한 번, 3시에 한 번, 5시에 또 한번, 은은한 야간 조명의 조리원 복도에서 마주치며 소리 없는 미소를 주고받았다. ‘나만 개고생하고 있는 게 아니군.’ 그리고 밤 만큼은 편히 쉬어 보겠다고 한 몇 몇 산모도 밤새 불어 나는 모유는 어쩌지 못하고 유축기로 짜고 또 짜내어 그걸 또 신생아실에 배달하느라 잠 설치기는 마찬가지인 듯 보인다. 이런 시기에 혼자였다면 산후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인데 조리원에서는 같은 처지의 산모들을 보며 버틸 수 있다. 처음으로 비싼 조리원 비용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가와 모유 수유 밀당

   
▲ 셋째는 태어나 얼마간은 엄청난 브이라인의 아가였다.배경은 분홍색 유니폼의 산모 의상.ⓒ김혜율
신생아들은 배고프다고 울며 깨 놓고는 젖 주려 안아 주면 딴청을 피우기 일쑤다. 몇 번 빨다가 잘 안되니 그냥 잔다. 그러지 말고 젖 좀 먹으련 하고 한참을 깨워 들이대면 이 녀석들, 얼굴이 빨개져라 악을 쓰고 울어 재낀다. ‘내가 왜 힘들게 젖을 빨아야 하지? 얼른 젖병으로 분유나 줘’ 하면서 모유 단식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개중엔 오늘 조리원에 들어온 16호 산모의 아기마냥 거의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정도로 우는 아가도 있다. 엄마들은 이러다 우리아기 성질 버리는 거 아닌가, 이러다 굶어 죽지나 않을까 하여 얼른 젖병을 아기 입에다 꽂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다음번에 아기는 더욱 역정을 내며 울거나 아쉬울 것 없노라 하며 자는 척 하는 꾀를 부린다. 우리 아가는 후자 타입이었다.

바닥을 때리고 귀를 죽 잡아당겨도 입 앙 다물고 자겠단다. 훗 네가 이 엄마를 이길소냐. 쿨하게 바로 신생아실에 다시 넘겨 주며 분유 보충도 하지 말라고 했지. 모유 수유를 하겠다고 결심했으면 이때 만큼은 아기가 배고프다고 좀 울어도 맘 약해지지 말고 자나 깨나 젖을 물리고 또 물리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나저나 메리와 욜라 때 하도 고생을 해서 이번에야말로 단단히 벼르고 준비하고 있는 초기 젖몸살을 어떡하든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너무 두렵다. 모유 전문 관리사가 나더러 유선이 너무 치밀하여 첫째 둘째는 어떻게 하였다 하더라도 셋째아기 젖 먹이기는 매우 힘이 드는 유형이라고 했다. 유달리 악조건이랬다. 마사지를 아무리해도 안 된다고, 그 어떤 전문가라도 서포트 역할밖에 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흘리는 말.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아기가 젖을 빨아서 뭉침을 풀어 주는 것이란다.

뭐야, 돈 들여서 전문가의 손길 아무리 받아도 안 되는걸 애가 해결할 수 있다니. 아주 심플하고 근본적이다. 아무리 참고서 문제집 들고 파봐야 돈 낭비, 시간 낭비, 정력 낭비. 교과서를 보세요 하는 말이 아닌가. 아이가 키맨이구나.

‘아가야, 아가야! 이 엄마를 살리는 건 너한테 달렸어, 엄마 좀 살려 주라. 엄마 너무 아프고 불편해서 죽을 것만 같아’

오늘밤도 어차피 잠 못 잘 거, 한 시간마다건, 삼십분 마다건 계속 달려가는 거다.

“그러다 병나요, 산모님. 쉬러 왔는데 넘 고생하셔서 어째요....”하는 신생아실 이모님들 걱정도 오늘 내일 까지만이다.

셋째날

어둡고도 환한 밤이었다. 밤새 아이를 만나고 또 만날 때마다 난 아이에게 ‘먹고 산다는 것이 이처럼 젖 빠는 것 마냥 힘이 드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다. 강해져야 한다 아가야, 앞으로 자라면서 엄마 닮아 울보깽깽이가 된다 하더라도 네 생애 처음처럼.... 근성으로 바로 서렴. 너 뱃속이름 ‘풀’처럼 그렇게 생명력 있게 살아 다오. 내 아가,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느꼈던 ’그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고 있겠지. 그래도 나쁜 것만은 아니지? 엄마랑 매 순간 함께였잖니.

나는 줄곧 몽유병환자처럼 굴었다. 너무 열심히 보낸 것도 같다. 구태여 시계를 보는 것은 의미 없었다. 커튼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새파란 빛이 내 방 사물들의 윤곽을 비칠 때서야 ’아아, 어느새 새벽이네‘ 하고 알았다. 커튼을 쫙 걷어 젖히니 맞은편에서 붉은 태양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천하에 게을러터져서 남들 다 보는 새해첫날 해돋이 못 본 지도 십 수년짼데 해가 뜨면서 칼날 같은 빛을 온 천지에 찔러 대는 걸 보고 있자니 곰이었던 내가 인간이 되는 기분이었다. 사실 말로하자면 동굴 속에서 백일동안 쑥과 마늘 먹는 게 낫지 애 붙잡고 백일 씨름하며 사는 게 더 힘들다. 곰도 인간이 되는 마당에 그냥 보통 여자가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임에랴, 겪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아침식사 종이 울릴 때가 돼서는 그동안 나를 두려움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가슴 통증이 매우 견딜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후에 만난 모유전문가도 급변한 상황에 놀라워하며 흥분해서는 임상기록차트에 뭐라고 막 휘갈겨 쓰며 칭찬과 격려를 해 주었다. 좋은 선례를 남긴 것 같아 뿌듯하다. 메리와 욜라 때 오래 끌었던 고민이 일찌감치 해결되자 이것이 바로 셋째 맘의 파워구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낮에 두어 시간쯤 잠! 잠을 잤다! 짧았지만 흔히들 잠이라고 부르는 잠다운 잠을 잔 것이다. 5일 만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만 여겼던 ‘인간으로서 잠을 잔다는 것’이 이토록 감격에 겨울 줄이야. 알고 보면 무엇이든 감사할 일투성이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정신력도 아니고, 모성의 힘도 아니고, 그냥 밥을 제때 잘 먹은 덕분이니 앞으로도 밥은 머슴처럼 많이 먹기로 하겠다.

셋째를 출산하고 나니...

그런데 거울 속의 내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인다. 몸이 찌뿌둥하면서 무겁다. 몸무게를 재 보니 이틀 전보다 2킬로그램이 더 나간다. 말이 안 된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터질 듯이 땡땡 부었다. 애 낳고는 멀쩡하더니 어째 갈수록 몸이 안 좋네. 아니나 다를까, 조리원 마사지 이모가 나보고 여기 있는 산모님들 중 가장 많이 부었다고 한다. 메리ㅡ 욜라 때 없던 산후 붓기가 웬말인지. 그러고 마사지를 하면서도 내내 “어머어머 산모님 지금 몸 상태가 심각하세요”하며 탄식 연발이다. 셋째 출산인데다 나이도 있어서 아이 낳고 기가 딸려서 몸이 안 좋은 거란다. 그래서 회복도 느리고 살도 거의 안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겁을 준다. 젠장 완전 슬프다. 큰 애가 중학생이라는데, 내가 결혼 안 한 골드미스 같다고 하자 까르르 웃으며 서비스로 뱃살 오일 터치를 해 주었다. 그래도 구겨진 내 맘은 펴지지 않는다.

잠깐 얼굴 보러 온 남편에게 “이제 난 다 끝났어. 나 일찍 죽을지도 몰라. 그러면 애 셋 데리고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태평함이 미워서 성을 버럭 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버블티를 사 온 센스를 가상히 여겨 모든 걸 묻는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서 잘까 하는 남편을 윽박지르듯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떠나보냈다. 메리와 욜라, 그래도 아빠 얼굴 봐야지 싶어서.

그래놓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슬픈 가요에 마음이 울컥거린다. 셋째를 기어코 낳냐며 걱정하다 못해 화를 내시던 친정엄마의 마음이 그야말로 백퍼센트 이해가 돼서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아차 하고 녹으면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몸이 축난다는 거 아니까, 오로지 딸을 사랑해서 걱정되는 마음뿐이셨구나. 큰 애들 보면서는 조리가 안 될 테니 친정에 내려와 한 달이라도 더 몸조리를 하고 가라는 엄마의 사랑이 고마워서 울음이 복받친다. 저 멀리 차도를 따라 줄줄이 달리는 자동차들의 노랗고 빨간 불빛들이 마구 번진다. 옆 방 14호실에선 아기를 방에 데려와 어르는 소리가 들리고, 16호실에서는 텔레비전 소리와 함께 남편과 다정하게 도란거리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나는 라디오 볼륨을 조금 크게 키우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울음을 삼키느라 목구멍이 아프다.

조리원 일기 계속됩니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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