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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을에 전화할 일이 생겼다[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1]

산타마을에 전화할 일이 생겼다.

"흠흠, 산타 할아버지, 어쩌죠? 크리스마스에 주신 선물... 고장났어요. 새 걸로 바꿔 주세요."해야 한다.

   
▲ 선물을 받고 활짝 웃는 메리와 욜라.ⓒ김혜율
욜라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동 오토바이를 하나 샀는데 한 5분 간 굴러갔을까 곧바로 그 짧은 수명을 다했다. 하루 종일 배터리 충전을 해도, 꼼꼼히 조립상태를 점검해 봐도, 아무리 녹색 전진 버튼을 눌러 봐도 굴러가지 않는다. 빌빌빌... 털털털 하는 소리만 내고 앉아 있다. 욜라는 그저 자동차같이 생겼고 바퀴가 달렸으니 전동차가 스스로 굴러가지 않아도 전혀 개의치 않고, 흡족하게 제 두발로 오토바이를 잘 끌고 다니지만, 그래도 난 분명히 전동차를 샀지, 붕붕카를 산 것이 아니었어!

나도 제정신으로는 고가의 승용 완구를 절대 사진 않는다. 그런데 그 당시 크리스마스는 다가오지, 준비한 것은 없지, 택배 배송 기간도 고려해야지,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밤에는 선물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인터넷 쇼핑을 시작했다. 그러다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 추천’, ‘조카바보들이 고르는 선물 베스트’ 이런 걸 읽다가, 베스트 선물은 다른 획기적인 선물을 낳고, 엄마들의 넘치는 상품리뷰 블로그는 나를 더욱 고무케 하다가 점점 길어지는 선물후보 리스트에 눈이 충혈되고 정신을 반쯤 잃을 즈음 그만, 상당히 저렴하지만 무려 ‘전동차’를 하나 구매한 것이다. 가격이 너무 싸서 제품의 질에 대해 의심하는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광고문구는 이랬다 ‘저렴하다고 무시하면 안 돼요~ 높은 퀄리티와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ㅇㅇㅇ!’

그리고 집안 인테리어를 해칠 만한 디자인의 장난감은 시각 공해라고 평소에 주장하는 내 감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세월이 지나도 우수한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정통 클래식의 세련된 디자인’이란다. 오오! 내가 진흙 속의 진주를 찾아냈어! 몹시도 상기된 얼굴로 뻐근한 오른쪽 어깨 근육을 스트레칭하며 만족스럽게 결제를 하고나니 저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선물을 받고 좋아할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느라 희부옇게 밝아 오는 새벽녘까지 기분 좋게 잠을 설친 것도 같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사정상 그냥 건너뛰고 크리스마스 당일 날 밤에야 아이들에게 산타 할부지가 못 다한 선물 배달을 하러 오신다고, 자는 척 해 봐야 산타 할배는 다 알고 있으니 모든 걸 제치고 잠부터 자야 한다며 아이들을 서둘러 잠자리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이 욜라의 자동차를 조립하려 상자를 뜯을 때부터 어쩐지 미덥지 않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전동차는 그 첫인상부터 조잡해 보였고 상자 겉면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여러 모로 기대치는 낮아졌던 것. 남편이 내 안목을 의심하는 것 같아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워낙 세상에 없는 가격, 초특가로 샀으니까 뭐, 그냥 조립하세요. 했다. 제품설명대로 그 초록 버튼을 눌렀을 때 윙~ 하고 움직이기야 한다면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를 것이고 그것으로 됐어, 성공이야 하면서.

   
▲ 누나 외투 빌려 입은 욜라.ⓒ김혜율
내가 네댓 살 쯤 먹은 꼬마 아이였을 때 다른 아이의 전동 자동차를 한 번 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 어린 마음에 들었던 내 것이 아닌 것, 하지만 가지기엔 벅찬 어떤 것에 대한 선망, 잠깐 타고 내렸을 때의 진한 아쉬움이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 선물을 받고 아주 기뻐할 것이라는 흥분된 기대는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오 분도 안 돼 바로 고장이 나다니. 그리고 그 디자인도 정통 클래식의 세련됨이라기보다는 어정쩡하고 희멀건 색감과 값싼 재질감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싶게 만드는 난감함에 가까웠다.

메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또한 대실패다. 주방놀이 장난감인데, 이것도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가격이 싼 것을 보았을 때 그 정체를 파악했어야 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기에는 무슨 대리석으로 만든 양 눈부신 외양에 그 옆에 서 있는 노란머리 외국 아이의 신나는 포즈까지 더해져 실제로 그 앞에서 메리와 욜라가 나를 위해 요리를 해 갖다 바치는 상상만으로 숨이 막힐 듯 행복했었는데... 흑. 평소에 나는 애들이 그냥 돌멩이나 종이쪼가리 같은 걸로 주방놀이를 하는 것이 뭐 어떠냐 했었고, 어른 싱크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덩치 큰 흉물스러운 플라스틱 덩어리를 집안에 들여 놓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대를 이어 물려줘도 좋을 만한 제대로 된 원목 싱크대가 아닐 바에야 차라리 아무 것도 사 주지 말자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요 며칠간 아이들이 빈 반찬통과 어린이 접시, 티스푼과 포크 같은 것을 잔뜩 늘어놓고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약돌, 조개껍질과 휴지 쪼가리 같은 것으로 요리를 한다고 한참을 낄낄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다른 요즘 아이들과 달리 없어도 너무 ‘없이’ 노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살짝 일었다. 그리고 만일 제대로 된 장난감 요리 도구가 갖춰진다면 둘이서 하는 놀이의 재미가 얼마나 더 커질까, 엄마로써 아이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줘야 옳지 않나 하는 생각도 스치듯 했었다.

그 생각의 반죽이 깊은 밤 컴퓨터 모니터의 쏟아지는 상품들의 홍수 속에서 판단력이 흐려져 헤맬 때 가당찮게도 ‘이것만은 하나 사 줘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구름빵처럼 부풀어 올라 둥실 두둥실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그 구름빵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지? 네 그래요, 몸이 구름처럼 가벼워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우왓! 이 구성에 이 가격! 너무 저렴해, 게다가 매진 임박이래! 일단 사고 보자. 메리가 무척 좋아할 거야~ 내가 요리하고 설거지 할 때 메리와 욜라 둘이서 그 옆에서 함께 요리와 설거지를 하는 거야~’

아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왜 진작 사 줄 생각을 못했을까. 플라스틱이란 게 걸리긴 하지만 이것도 잘만 만들면 애들 갖고 놀기에 나쁘지 않지 뭐~하고 애써 위안하면서.

하지만 그건 순전한 내 희망사항이었고, 이것도 울고 싶을 만큼 형편없는 모조품 장난감에 불과했다. 저 붕붕카와 쌍벽을 이룰만한 퀄리티.

내가 손으로 툭 하고 살짝만 건드려도 싱크대가 흔들흔들하고 조립한 이음새가 벌어지고 빠지고 무너졌다. 심지어 부품 한 귀퉁이가 살짝 깨져 오는 통에 오븐 뚜껑은 언제나 헐겁게 여닫히다 못해 싱크대 다른 부분을 건드리기만 해도 오븐 아가리를 시도 때도 없이 쩍 벌리지 않나. 개수대라고 만든 것이 간장 종지만해서 거기서 장난감 숟가락 하나라도 설거지하기 어려워 보였다.

   
▲ 눈 받아먹으려고 날름 하는 메리.ⓒ김혜율
오븐 뚜껑을 닫는다든가, 렌지 위에서 뭐 좀 요리를 해 보겠다고 힘을 좀 주면 위태롭게 렌지후드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선반에 늘어놓은 각종 주방도구들이 후두둑 떨어져대서 애들이 싱크대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계속 싱크대 수리를 하고 있다. 그 장난감은 그런 덕분에 애초에 의도됐던 아이들의 역할 놀이를 통한 사회성, 창의력, 언어력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섬세함과 조심스러움, 더불어 참을성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용도로 제격인 것 같다. 메리와 욜라가 덕분에 스위스 시계 장인이 되거나 보석 세공업자로 명성을 드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뭔가 핀트가 어긋난 장난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리 조심조심 해도 뭔가가 계속 툭툭 떨어지고 무너지는 통에 신경이 과민해지고, 둘이 같이 서면 어깨가 부딪쳐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는 비사회성 장난감! 에라이!

어른이 허울 좋게 광고하고 대충 팔아 돈 벌려고 만든 장난감에 멍드는 동심이여. 너에게 용서를 구하노라.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도 실수할 때가 있는 법 아니겠니, 산타마을 선물공장에서도 가끔은 불량품이 나오기도 하나보다....

그리고 수많은 상품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눈을 갖지 못하고 휘황찬란한 광고판 속임수에 속고 만 어리석은 엄마여. 그 움츠린 어깨를 펴고 다음번엔 잘해 보겠다는 뼈아픈 경험치를 충전하시길. 그리고 상품 선택은 언제나 말짱한 정신으로 할 것과 대체로 ‘싼 것이 비지떡’이더라라는 옛 선조들의 말씀을 척추뼈 사이사이에 새겨 보자!

그래도 전동차와 달리 싱크대는 반품하기 귀찮아 그대로 사용하는 데까진 해야겠다고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나는 그 달걀 껍질과도 같이 예민한 싱크대에서 아이들이 번갈아 만들어 오는 통닭과 피자와 커피를 한 삼십 인분쯤 먹어 주었다. 열악한 주방환경 속에서도 요리를 한다고 동분서주, 툭탁툭탁하는 아이들이 괜히 짠해서 나도 모르게 또 오버해서 ‘냠냠쩝쩝, 아구아구, 우적우적’을 하며 플라스틱 통닭을 칼로 막 썰어 포크로 집어 먹다 입속으로 공기가 과다하게 들어갔는지 그날은 하루 종일 트림이 나고 속은 더부룩하였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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