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3]

작년 어느 날이었지. 나는 거의 십여 년 만에 낮잠이란 걸 자기 위해 분주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잠이 오면 그냥 누워 자면 되지 무슨 준비? 하고 의아해하시는 독자분들이 계실지 몰라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나는 본래 남편을 비롯한 누가 누워서 자는 꼴을 못 본다. 또한 남편과 같은 어느 누군가가 “낮잠 좀 자.” 그러면 당장에 “아니 안 자!” 대답하고, 그래도 남편처럼 끈질긴 누군가가 “피곤할 텐데 낮잠 좀 자지.” 그러면 “안 잔다고 안 자! 낮잠 안 자”하며 버럭 성을 낸다. 낮잠을 자고 나면 바이오리듬이 깨져서 그럴까, 낮잠을 자는 통에 벼락치기를 못해 시험을 망친 적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날은 어떤 심경의 변화가 왔는지 유치원에 간 메리의 부재와 욜라의 낮잠이 이루는 조화에 나도 낮잠이란 걸 한번 자 볼까 하며 두근 반 세근 반 낮잠을 준비했다.

핸드폰 체킹(벨소리 무음), 택배 체킹(오늘 받을 택배 없음), 가정사 체킹(별일 없이 무난한 기운), 세상사 체킹(민방위나 비상사태 없을 거로 예상. 있다 한들 낮잠 자다 일어나야 할 일은 없을 듯), 우주기운 체킹(기상이변 없을 것, 유에프오 안 뜰 듯).

‘고로 완벽히 편안한 낮잠을 잘 수 있다. 한번 해 보자. 어제는 거의 잠 한숨 못 잤고 메리 두시 반에 픽업해서 열나게 놀아 주려면 지금 자 둬야지 안 그럼 죽을 수도 있다!’

ⓒ김혜율

생각하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설거지 거리와 빨래더미와 온갖 잡동사니들로 어지러운 집안과 세수 안 한 몰골과 넝마 같은 나의 패션, 이런저런 사정은 뒤로 한 채....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자는 낮잠이라 설레고 낯설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든 지 두세 시간 정도 흘렀을까.... 어디선가 들리는 ‘똑똑똑 놐놐놐.’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택배 올 거 없는데? 도를 아십니까에서 왔나? 아무도 없는 척 해야지’ 그런데 ‘놐놐놐’은 아주 끈질긴 놈이다. ‘아따 욜라 깨겠네.’ 결국 광란의 ‘놐놐놐’을 멈추려 벌컥 문을 열어 제꼈다.

오! 지저스 지저스 크라이스트!

내 앞에.... 시어머니가 방그레 웃고 계셨다. 저 아래 시아버지도 올라오고 계셨다.
어머니.... 저 원래 낮잠 안 자는데.... 어머니.... 오늘따라 집이 엉망이네요. 어머니.... 어머니....

아아아아아.... 그날 나는 이마에 대롱거리는 진땀을 닦느라 바빴다.

그날부터 낮잠은 더욱 강력한 트라우마가 되었고, 나는 전날 밤을 샜건, 아기를 낳았건, 몸이 아프건, 낮에는 여간해선 잠을 안 자는 아니 못 자는 사람이 되었다. 대신 모자라는 잠은 아침잠으로 보충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늦잠꾸러기가 되었고 대신 낮에는 너무 졸려 잠깐 눈을 감았다가도 무엇에 놀란 듯 발딱발딱 일어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오늘로 자그마치 사흘 연속으로 낮잠을 잤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어도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 댕기거나 눈을 후벼 파는 이도 없고, 머리 위로 소꿉장난이나 베개싸움의 파편도 날아오지 않고, 줄기차게 질문 세례를 퍼붓는 심층면접관도 없다. 물론 갑자기 나타나는 시어머니도 없다. 다만 자고 있는 나에게 살며시 다가와 속삭이듯 말하는 “밥 먹어”하는 소리와 꿈속까지 파고드는 군침 도는 냄새가 나의 눈꺼풀을 들어 올릴 뿐이다.

눈을 비비며 나가 보면 반짝거리는 대리석 식탁에 갖가지 진수성찬이 그득하다. 식탁 위의 샹들리에 조명을 받으며 방금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쫀득한 밥을 한술 뜨며 대체 무엇부터 먹을까 고민을 한다. 꽃게탕의 국물을 한 숟갈 떠 넣어 본다. ‘후루룩’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일어나서 다음 번 밥숟가락을 기다리며 아우성을 친다. 나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은 고봉밥을 내려다본다. 그때 내 밥 위에 다소곳이 올려지는 꽃게의 통통한 집게다리 살! 망설임 없이 입속으로 앙! 머릿속에서 팡파레가 터진다.

과연....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내가 죽어서 천당에라도 간 걸까? 아니면 아직 꿈 속을 헤매는 중인가?

나는 실로 ‘꿈속의 천당’과도 같은 친정집에 와 있다.

남편의 2주간의 해외 출장 덕분이다. 떠나기 전 남편은 세 아이와 나의 거취에 대해 한참 고민하였다. 나는 혼자서 세 아이를 다 돌볼 수 있다고, 식재료 떨어지면 들에서 나물을 캐 먹음 되고, 비가 오는 아침이면 로는 앞으로 업고 욜라는 뒤로 업은 채 우산 쓰고 가면 문제 없고, 메리와 욜라 목욕 시킬 때 로가 숨넘어가게 울면 좀 기다리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괜찮다고, 난 할 수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남편은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며 메리와 욜라 두 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야 만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로만 데리고 친정에 내려오게 된 것이고.

ⓒ김혜율

나는 여기서 이렇게 지내고 있다. 낮잠도 늘어지게 잔다. 그리고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배를 채우고, 먹어도 먹어도 허한 내 마음 어딘가의 구멍도 메워 간다. 로를 돌보는 것도 힘들 것이 없다. 내가 로를 안고 있으면 엄마가, 아니면 아빠가, 주로 내 동생이 로를 뺏어 간다. 로를 맡기고 밖에 놀러 가기도 한다.

이번에도 내가 편집기자님께 칼럼 원고를 제때 드리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이었나? 나의 육아일기는 자고로 고통과 고난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여기 친정에 온 이후로는 그것이 전혀 감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말하겠지. 그럼 호의호식하고 눈살 찌푸려질 만큼 나태함과 안일함이 줄줄 흐르는 육아일기를 쓰라고. 아주 행복하고 바랄게 없다고. 그런데 이렇게 시절이 좋고 몸과 마음이 편한데 어떤 엄마가 육아일기를 계속 쓸 수 있겠냐고. 때마침 낼모레 남편이 나를 데리러 온단다. 우아한 여왕마마에서 부엌데기 신데렐라로 돌아갈 시간이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나의 부엌엔 달콤한 낮잠과 엄마가 차려 주는 밥 대신 메리와 욜라가 있을 것이다. 요정 할머니가 선물해 준 반짝이는 유리구두 같은 아이들이. 그곳에서 마법은 아마도 또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게 될 것이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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