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 때의 차이

(마시모 파졸리)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이상한 역설 상태다. 가톨릭교회는 불변성의 상징이라고 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변화를 할 수 없고 현상유지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상유지에 만족해 보이는 가톨릭신자들은 아주 적은 것 같다- 적어도 광장에서의 목소리로 보자면 그렇다.

달리 말해, 우리는 현재 가톨릭교회의 현 상태에 대해 두 가지 통상적인, 쓸 만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즉, 제도적인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보수파 논리 대 변화와 개혁 논리라는 구조가 통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양측 둘 다 제도적 현상유지나 성직자 체제를 공격하고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 된 처음부터 이러한 요소들과 거리를 뒀다.

한쪽에는 리버럴-진보적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논리구조가 있다. 평신도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촉구하고, 분권화, 주교단체성, 공동합의성, 대화와 교회일치 정신 그리고 포용성을 강조한다.

다른 쪽에는, 반개혁 또는 “개혁의 개혁”이라는 논리구조가 있다. 사제 부족이나 수도 성소의 부족, 가톨릭학교들의 “정체성” 실종, “무종교인”의 등장 등등을 지적하며, 이 모든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그 뒤 시기의 결과물인 이른바 “가벼운 가톨릭”(Catholic-lite) 때문이라고 본다.
(편집자 주- “Catholic-lite”는 성공회 신자인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자신이 성공회 신자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성공회는 가톨릭과 전례와 교리 등 외형에서 비슷하지만 죄의식의 무게는 절반인 가톨릭-라이트라고 설명하면서 유명해졌다. 카페인이 적은 콜라라이트와 같은 표현에서 따왔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의식을 가진 가톨릭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상황이 나타난 한 이유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당시에 정리된 개혁의 신학과 공의회 뒤 교회의 특정한 성격들 때문이다. “교회 개혁”이라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의 하나라는 데는 아무런 의문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로 큰 변화를 겪은 신학 사상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에 교회개혁에 대한 가장 중요한 신학적 기여는 공의회 직전과 직후에 프랑스의 이브 콩가르(1905-95)가 쓴 유명한 책 “교회 안의 진정한 개혁과 가짜 개혁”이었다. 이 책은 원래는 1950년에 나왔지만 1968년에 나온 새 판본이 몇 년 전에야 영어로 번역됐다.

지금처럼 가톨릭교회가 분열 없이 전진할 능력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리고, 오랫동안 깊게 진행되어 온 긴장들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지만 드러나게 만든 교황 재위 중에, 이 책에 담긴 근본적 기여는 특히 중요하다.

▲ 이브 콩가르 (사진 출처 = LA CROIX)

콩가르는 교회를 “이교(교회 분열)를 불러일으킴 없이” 개혁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조건을 정리했다.

첫째는 교회의 사목적 차원과 자비의 수위성이다. 그는 사목 직무는 진리의 위대한 학교이며 예언자적 개혁은 이미 존재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개혁은) 또 다른(another) 교회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회를) 다른(different) 교회로 만드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교회의 “모든 요소”, 교회의 “온전한 진리”와 일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중심-주변부, 제도, 그리고 교회 생활의 변증법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성원은 반드시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고도 어떤 문제에 관해 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교회가 중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이 자유는 보장된다.

세 번째 조건은 참을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개혁은 “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교회는 어떤 원칙을 유지하는 문제인 것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기정사실(fait accompli)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네 번째 조건은 진정한 쇄신과 개혁은 전통의 원칙으로의 복귀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콩가르는 전례 개혁은 전례 그 자체가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전체성(유지)에 중요해 왔다고 말한다.

이러한 네 조건을 따르자면, 오늘날의 교회에는 1950년대나 1968년에 존재했던 교회보다 훨씬 더 높은 장애물이 있다. 예를 들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반대하는 이들은 “사목성”(pastorality)을 교회적 실천을 개혁하는 한 범주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이혼 후 재혼한 가톨릭신자들에 관한 문제들에 이들이 보이는 태도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오늘날에는 “교회의 일치” 안에 남아 있기가 훨씬 더 복잡하다. 지금의 일치는 지리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복잡하고 더 조각나 있으며 더 다양한 일치임을 생각하면 말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또한 신자들 상당수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많은 약속이 지난 50년간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힘들다.

“전통”에 관해서는, 지금은 대체로 비전통화된 지적, 문화적 환경이 굳건한 세상과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는 전통주의 사이에는 아무도 있을 자리가 없는 것과 같은 때가 많다.

하지만 콩가르의 개혁 신학과 충돌하는 현재의 교회 풍경에는 세 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

첫째는 교회개혁을(또는 반개혁을) 준이교적(para-schismatic)인 심리구조에 인도되어 (이 교황 또는 저 교황에게, 이 교회지도자 또는 저 지도자에게) 특이하게 복종하는 준교회(sub-church)라는 관점에서 상상해 보려는 새로운, 포스트모던 경향과 관련이 있다. 이는 진보파와 전통주의자 둘 다 “정체성들”에 집착하는 것으로서, 교회개혁을 상상할 능력이 없어진다.

모든 정체성들(이념적, 인종적이든 성적이든)을 껴안고 흡수할 수 있는 교회 안의 근본적 일치라는 생각은 콩가르 시대 교회와 같지 않다. 이는 또한 교회적 정체성들의 가상화(virtualization)와도 연관이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가톨릭 정체성이 하느님 백성이 교회 안에서 체험하는 것에 의해 모습을 갖추던 부분은 적어지고, 다른 신자들이 산 경험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듣거나 본 것에 의해 모습을 갖추는 부분은 더 커진 상황이다.

두 번째 모습은 개혁되어야 할 제도와 교회개혁을 제안하는 이들 사이의 단절이다. 콩가르는 모든 사제-신학자들이 사목 직무를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구에서는) 학문적 신학은 평신도들의 손에 더 많이 들어가 있고, 이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나 공동체 안의 사목 직무에 한 필수적 부분이 되기가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문 신학자들과 아주 잘 연관되어 있지 않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는 “상아탑”의 책임만은 아니다. 일부 사제들과 주교들이 전문 신학자인 평신도들을 자기 본당이나 교구의 사목 직무에 참여시키는 데 불편해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대학 행정가들, 그리고 아마 이 전문 신학자들의 동료 가운데 일부도 이들을 본당, 교구의 사목직무에 참여시키기를 꺼리지만 이유는 다르다. 본당에서 이들 평신도 신학자들에게 요구할 일이 많고 힘들며, 그렇게 참여하면 이들의 가족에게 끼칠 영향이 가장 먼저 눈에 보인다. 평신도 신학자는 더 많이, 사제 신학자는 더 적게라는 관점에서 이뤄지는 전문 신학의 민주화는 따라서 교회개혁의 실천과 사상에 깊은 함의를 갖고 있다.

세 번째 모습은 아마도 다루기 가장 힘들 것이다. “진정한 개혁과 가짜 개혁”의 첫머리에서, 콩가르는 가톨릭교회는 그 자신을 개혁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내보였다. 부패와 비리라는 낡은 문제가 해소되어 왔기 때문에.

콩가르는 16세기에 개신교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위기 시절에 가톨릭교회는 “순수한 정신, 자원, 그리고 사목자들”이 없었다고 썼다. 사실 이러한 자산들은 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복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투명성 사회” 안에 살고 있으며,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와 (정도는 좀 덜하지만) 재정 비리 이야기가 콩가르 시대의 교회와는 아주 다른 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따라서, 우리는 또한 이러한 추문들이 개혁의 가톨릭 신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성찰해야만 한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catholicism-between-reform-and-counter-reform-reading-congar-50-years-later/5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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