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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교회는 어떻게 보는가“경제 넘어 전인 발전” - “민족들의 발전” 회칙 50주년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이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발표한 지 50년을 맞았다. 회칙이 발표된 1967년 3월 26일은 그 해 부활절이었다.

같은 시기 박정희 정권의 “공”으로 이야기되는 경제성장의 신화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왜 이 시기 한국 교회는 박정희와 갈등을 빚었을까. 박근혜 탄핵만으로 민주주의는 회복되고 박정희 신화는 청산될 수 있을까.

회칙 “민족들의 발전”은 1960년대 전 지구적 시대상을 인간 삶, 특히 가난한 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성찰한 결과다. 인류의 삶을 바라본 교회는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비추기 위한 사회적 가르침을 내왔고, “민족들의 발전”은 레오 13세 “새로운 사태”(1891), 비오 11세 “40주년”, 요한 23세 “어머니요 스승”과 “지상의 평화”(1963)를 이어 받고, 요한 바오로 2세 “노동하는 인간”(1981) 등을 거쳐 교황 프란치스코의 “복음의 기쁨”에 이른다. 50년이 지났지만 사회적 불의와 이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의 상황은 분명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만큼 정의를 벗어났다.”(30항)

회칙이 발표된 1960년대는 개발과 발전의 신화 아래 국가별 정치, 경제적 격차가 심해지고, 이른바 제3세계는 이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선진국은 경제 개발과 발전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제3세계는 식민지를 벗어났어도 여전히 경제적 예속 상태였고,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졌다. 또 동서 간 이념 차이에 따른 갈등도 못지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선진국이 앞선 기술로 저개발 국가를 착취함으로써 이루려는 ‘발전’이 불의하다고 지적하고, 연대를 통한 공동의 발전, 모든 인간과 인류를 위한, 정의로운 ‘발전’, 평화의 새로운 이름으로서 ‘발전’을 천명한다.

그리고 그는 이 회칙에서 “발전도상에 있는 민족들의 정당하고 중대한 요구를 들어주려는 노력을 위해” 교황청에 교황 직속 기구로 ‘정의평화위원회’를 두기로 한다고 밝혔다.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

“민족들의 발전”은 제3세계 민족들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모든 인간의 발전”,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본 모습의 회복”이다. 회칙을 통해 교황 바오로 6세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하느님이 원하는 정의, 평화를 위해 사랑으로 연대하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완성’, ‘인류 전체의 공동발전’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회칙은 1부에서 “양식, 건강, 직업의 안정”이라는 인간의 정당한 소망을 보람 없게 하는 ‘문제점’으로 식민화와 식민주의, 빈부의 격차, 문화간 충돌 등으로 봤다.

또 교회가 보는 사회의 발전은, “경제적 성장만이 아니라 인간 전체와 인류 전체의 발전과 향상”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하나 하나의 인간, 그 인간들의 집단, 나아가 인류 전체”라고 강조한다.

 

   
▲ 부자 집 앞에 있는 라자로.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인간 각자, 인류 전체를 위한 발전을 위해 회칙은 “재화는 만민의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또 사유권의 임의 사용을 막기 위한 국가 권력의 책임을 강조하고, “공적 자원과 국민의 노동으로 얻은 수익을 개인의 이득만을 위해 축적한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될 말”이라고 못 박는다.

이어 회칙은 자유 자본주의가 “경제 발전의 근본은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경쟁이며, 생산 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으로 한계와 의무가 없다는 주장은 불행하고 그릇된 사상”이라고 지적하고, “인간 품위를 말살하는 노예화로서 ‘노동’을 경계하면서”, “인간의 지성과 자유에 기인하지 않고서는 인간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회칙은 이 모든 ‘긴급한 일’을 두고 폭력이나 혁명이 아닌, 개혁, 계획에 따른 실천, 인간에 대한 봉사, 교육, 가정과 직능별 단체의 역할, 합법적 다원주의, 문화 발전의 장려를 통해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이르고, “발전 향상되어야 할 주체는 ‘완전한 휴머니즘’이며, 이는 개인인 인간 전체와 전 인류의 완전한 발전이며, 절대자인 하느님께로 향한 휴머니즘”이라고 했다.

“빈곤의 극복이 아무리 급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종이나 종교나 국적의 차별 없이 누구나 다 타인과 자연의 예속 상태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 명실상부한 자유 세계, 가난한 라자로도 부자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인간 공동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것이다.”(47항)

2부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에서는 약소민족에 대한 원조, 공정한 통상 관계, 보편적 사랑에 대해 다루며 개인을 넘어 인류 발전을 위한 국가간 연대, 잉여 재화의 분배, 세계 기금 제도의 필요성, 대화를 역설한다.

특히 ‘국가 간 통상’ 문제는 생산 제품을 수출하는 선진국과 원료, 농산물을 수출하는 저개발 국가 간의 빈부 차가 날로 커지는 것이라면서, “경제적 독재”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은 자유 무역을 경계했다.

이를 위해 기초적 평등을 지키기 위한 국제 협약의 필요성,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주의 극복, 공동 세계에 대한 지향과 민족 자결 방침을 강조한다.

“더 나은 세계는 꿈이 아니다”

 

   
▲ 바오로 6세 교황. (이미지 출처 = 교황청 홈페이지)

회칙은 “인간 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으며, 이는 개인 간, 민족 간 형제적 사랑의 유대가 끊어진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보편적 사랑”을 강조한다.

이는 “연대성 의무와 그리스도교적 애덕의 의무로 남을 받아들일 의무, 자국의 유산을 잃어가는 유학생과 비인간적 노동 조건을 견뎌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 공장주와 기업 대표들의 사회적 발전과 인간적 진보에 대한 책임, 원조와 협력을 위한 사절단이나 전문가들이 가져야 할 형제적 사랑, 문명 간의 대화 그리고 인류의 저개발 상태를 거슬러 싸우려는 단호한 결심으로 하는 기도”다.

“이 길은 모든 사람이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걸을 길이기에 본인은 정세의 중대성을 지적하고 해야 할 일의 긴급성을 모든 이에게 깨우쳐 줄 의무를 느낀다. 행동할 시기는 지금이다.... 이렇게 중대한 책임은 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지워져 있다.” (80항)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의 결론에 이르러, “우리가 빈곤과 부조리를 거슬러 싸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윤리적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전 인류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힘과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면 그것이 평화라고 할 수 없다. 평화는 하느님이 원하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호소한다.

한국교회 : 사회복지와 사회사목

한편, 이 회칙은 1980년대 이후 급속도로 사회복지를 확대해 온 한국 가톨릭교회의 지금 모습에도 도전적인 과제를 담고 있다.

전 주교회의 인성회와 사회복지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최재선 씨는 “민족들의 발전”의 처음과 끝은 “인간 발전”이며, 이는 “하느님 보시기 좋았던 모습을 되찾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모든 노력”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주교회의 ‘인성회’(仁成會)는 ‘인간발전’을 당시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가 번역한 말이다. 인성회는 나중에 사회복지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

‘인간발전’은 정의평화, 사회복지 두 차원으로 이뤄지는데 어떤 것이 제대로 된 인간 발전인지 선포하고 비인간화된 것을 비판, 고발하는 것이 정의평화위원회의 기능이라면, 구체적으로 그 선언을 수행, 실행하는 것이 사회복지의 영역이다.

최재선 씨는 최근 인간 발전을 거시적으로 보는 시각에 따르면 ‘사회복지’는 구호, 자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경제적 생활과 사회적 지위 개선을 위한 방법을 넘어 전반적 사회 전문 서비스(봉사) 영역이며, 더불어 구조 문제의 개선,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운동을 교회 안에서 ‘사회사목’으로 부르고 있으며, “사목이란 이 세상에서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는 표지, 도구로서 교회가 현실 속에서 이를 구체화하는 모든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즉 사회사목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이 신앙 속에서 인간답게 성장하도록 이끄는 것과 세상의 변화를 위한 헌신의 총체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기구를 개혁하면서 기존의 정의평화평의회와 사회복지평의회를 통합해 "통합적 인간발전 기구"를 만든 것은 이렇듯 "민족들의 발전" 회칙에서 제시된 통합적(전인적) 인간발전 개념이 두 영역을 통일해 흐르는 때문이다.

 

   
▲ 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 "복음의 기쁨" 역시 "민족들의 발전" 정신을 잇고 있다. 그는 취임 뒤 첫 방문지로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난민수용소를 선택했고, 미사 강론에서 "오늘 이 시간 이 세상에서 누가 울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가 유튜브에 게시한 동영상 갈무리)

또한 최재선 씨는 “민족들의 발전”은 ‘발전’의 개념을 인간, 특히 가난한 이들을 비인간적 상태로 만드는 것에서 인간적인 상태로 가는 것이라고 전복시킨 것이며, 경제 중심에서 전인적, 전 세계적 관계의 변화로 이끌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완결적 사랑”을 이야기한 선구적 회칙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가난한 라자로가 부자 식탁의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의 식탁에서 같이 앉아 밥을 먹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재선 씨는 “한국교회가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본래의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면서, 특히 교회의 사회복지사업을 걱정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협력과 봉사는 돈, 건물, 전문가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교회가 아닌 기업의 방식”이라고 지적하면서, “봉사를 더 많이 하기 위해서 돈이나 건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유혹’”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모든 가난한 이들을 살필 수 없다. 인간 사회의 불평등이 어느 시점에서 해결되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교회는 교회다운 방법으로 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할 뿐이며,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 학교, 사회복지시설을 사랑과 연민, 따뜻함으로 치유하는 곳인가? 어려운 곳을 찾아 교회만의 역할을 하던 그 모습인가? 아무도 돕지 않는 이들의 곁에 교회가 있는가? 다른 기업이나 정부가 하는 것과 다른 것이 있는가?”

최재선 씨는 “교회가 좋은 일을 선도적으로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 자리를 다른 이들에게 내어 주고 더 낮은 곳, 더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며, “사목의 차원에서 가장 먼저 생각 해야 할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이 지상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는가”라며, 비인간화는 비단 경제뿐이 아닌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은 단지 대상이 아니며,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가난한 이들도 자기 자신을 완성해가는 ‘발전’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나라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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