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보고서, "갈등에서 사귐으로" 출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고 그리스도교의 일치 가능성을 모색하는 문서가 번역 출간됐다.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직제협의회’는 로마 교황청과 루터교 세계연맹이 2013년 함께 낸 보고서 “갈등에서 사귐으로”를 번역 출판하고 5월 11일 이를 소개하는 출판 기념회와 일치 포럼을 열었다.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1999년 루터교 세계연맹과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가 채택한 “칭의/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에 이은 두 번째 양자 간 대화의 결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루터교세계연맹 무닙 유난 의장은 이 문서에 기초해 지난해 10월 31일 “가톨릭과 루터교가 장애를 극복하고 일치를 이루도록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공동성명에 서명하기도 했다.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서론과 6장의 본론으로 구성됐으며, 종교개혁에 대한 새로운 전망, 루터 신학의 주요 주제에 대한 재해석, 교회 일치를 위한 원칙 등을 담고 있다. 번역에는 신앙과 직제협 신학위원회에 속한 개신교와 천주교 신학자 20명이 참여했다. 공동번역인 만큼 가톨릭과 개신교 용어를 병기했으며, 성경 인용은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공동번역성서를 따랐다.

▲ 종교개혁 500주년 공동 기념문서 "갈등에서 사귐으로". ⓒ정현진 기자
신앙과 직제협은 “갈등에서 사귐으로”가 500년 갈등을 넘어서는 중요한 전환점이며, 그리스도교의 미래를 제시하는 중요한 문서라고 설명하고, "오랫동안 다른 종교인 듯 살아온 천주교와 개신교에게 문서의 번역 자체가 일치운동의 과정이었으며, 한국 교회에 소개함으로써 일치운동의 저변 확장의 계기를 마련"한다고 의미를 밝혔다.

11일 저녁 서울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열린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에서는 안교성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는 “갈등에서 사귐으로” 공동 한글번역본의 성격과 의의를 발표하고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 박태식 신부(성공회대), 김주한 목사(한신대), 손정명 수녀(선한 목자 예수수녀회)가 토론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기억과 그것이 어떻게 기억되었는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기억은 과거를 현재화시킨다. 과거의 일 자체는 바뀔 수 없지만, 현재 안에 있는 과거의 현존은 바뀔 수 있다. 즉 2017년의 주요 핵심 사안은 다른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갈등에서 사귐으로” 16항)

참가자들은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역사적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차별화하면서 정체성을 획득해 왔으며, 이것이 일치보다는 분열을 이끌었다고 지적하면서, “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맥락에서 다시 읽고 서로 공감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비판과 이단적 판단을 바꾸고 새로운 기억의 힘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교성 교수는 “종교개혁은 궁극적으로 교회를 개혁하는 사건이었지만, 지난 500년간 그러한 본질보다는 교회 분열과 교파화, 상호비방과 오해 등이 부각됐다”면서, “종교개혁의 우선적 당사자였던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보고서를 출간한 것은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교회일치 운동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본격화하기 시작했으며, 각 종파의 선교 일치 운동에서 비롯됐고, 동방정교회가 촉구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타 교회를 형제로 보는 교회일치적 인식의 변화가 큰 축을 차지했다.

교회일치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교회들과 가톨릭교회 사이의 양자 간 대화가 시작됐고, 이는 타 교회 간 대화도 촉발했다. 안 교수는 “20세기 전반에는 신앙과 직제 중심의 다자 간 대화가 대세였지만 후반에는 당사자 교회들 사이의 양자 간 대화가 주요 양상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이는 궁극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 왔지만 이 두 흐름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이러한 대화가 국제적 차원뿐 아니라 지역적,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노력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직제협의회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문서 "갈등에서 사귐으로"를 공동으로 번역 출판하고 출판기념회와 포럼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

안 교수는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갈등과 경쟁 중심적 이단론에서 상호 인정의 공존론적 비교 교회론이라는 교회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며 틀림이 아니라 다름과 공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변화는 “옳고 그름”에서 “다름이 있는 합의”, “화해된 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선택함으로서 공동성에 대한 희망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보고서는 교회일치와 세계화의 맥락에서 종교개혁을 새롭게 이해하고, 종교개혁의 새로운 전망을 다루며, 종교개혁 역사의 중요한 쟁점들, 즉 면벌/대사, 루터 심판 과정, 성경의 권위, 교회의 돌봄을 위한 관리 감독, 트리엔트 공의회, 목회/사목의 개혁, 제2차 바티칸공의회 등을 되짚는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교회 일치의 다섯 가지 원칙”을 앞세워 상호 단죄를 거부하고 공동 기념을 모색한다. 다섯 가지 원칙은 “분열이 아니라 일치의 전망에서 공동 유산 강화, 상호 접촉과 신앙 증언을 통한 지속적 변화, 가시적 일치 추구, 우리 시대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능력 회복, 복음 선포와 세상에 대한 봉사로 하느님의 자비 증거” 등이다.

송용민 신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일치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학적 성찰과 일치를 넘어 각 교회가 함께 세상 속에서 공동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며, 역사 속에서 있었던 잘못을 인정하고 사건을 재평가, 재해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종교 일치는 사회변혁을 위한 관점, 공동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장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고 우리의 아픔으로 끌어안고자 할 때, 공동선을 위한 목표는 교회 안의 갈라진 장벽을 제거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것이다. 그것이 또한 에큐메니컬”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 교회는 끊임없이 공동선을 위한 활동으로 연대, 일치해 왔으며,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교를 이끌어 온 힘”이라며, “미래를 바라볼 때, 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또 다른 축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과 직제협은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을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소속 개신교 8개 교단, 한국천주교회, 한국정교회 등이 2014년 5월 설립했다. 현재 김희중 대주교와 김영주 목사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신앙과 직제협은 각 교단 신학자 20여 명으로 구성된 신학위원회에서 낸 종교개혁 500주년 주제 논문을 모아 2018년 중 논문집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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