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성공한 혁명가, 실패한 행정가

부유한 병원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한 청년이 불의한 현실에 분노했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서 법대를 졸업하고도 굳이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던 열혈 청년과 뜻을 함께하면서 청년 의사는 혁명가가 되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금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칭송하고 존 레논이 “세계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라고 일컬은 체 게바라 이야기다.

1959년,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장군을 몰아내고 혁명 정부의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된 체 게바라는 대사의 직분을 맡아 외교가를 무대로 일하다가 곧 쿠바의 경제 개혁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다. 국립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으로서, 소수에게 장악되어 있던 국부를 국유화하고 왜곡된 부의 분배를 바로 잡으며 농업국가 쿠바를 산업국가로 변모시키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행정가로서의 체 게바라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체는 한 국가의 중앙은행 총재이면서도 돈에 대한 이해가 낮을 뿐 아니라, 돈 자체를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물질적 욕망을 노동의 이유로 삼는 것을 경멸한 까닭에,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인센티브를 주기보다는 도덕적 동기 부여로 생산을 장려하는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고귀한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돈으로 따질 수 있겠느냐’며 저임금을 강요하는 경영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체 게바라 자신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이상과 이념에 경도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상에 앉아서 산더미처럼 쌓인 각종 보고서와 결재 서류를 다루는 일을 우스꽝스러운 관료주의자들의 행태라 보았던 체 게바라는, 대신 사탕수수 농장과 벽돌 농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장관의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으니, 경제 개혁의 리더십은 실종 상태가 되고 산업화, 국유화, 금융정책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실패하고 만다. 결국 2년여의 짧은 공직 생활 끝에 체 게바라는 요즘 말로 ‘경제를 거하게 말아먹고’ 쿠바를 떠나게 된다.

▲ 체 게바라.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2. 선거 이후

지난해, 정치를 더 이상 소수의 정치업자들의 농간에 맡겨 둘 수 없었던 시민사회는 촛불 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파면하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적어도 현 시점까지 새 대통령과 정부가 전폭적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시민사회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뿌듯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선거 때와는 또 다른 과업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대개의 사회 문제는 제로섬 게임과 흡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한 쪽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이 집단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고 나면 다른 집단의 불만과 불평을 마주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도덕과 명분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절박한 생계의 문제가 개입되면 그 어려움은 한층 더해진다. 부당한 기득권을 일소한다는 것이 선거 때는 유용한 구호일 수 있으나 일상 속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선거가 승패를 극적으로 가르는 한판의 시합이라면, 그래서 때로는 선전 선동과 모략 같은 방법도 어느 정도 용인되는 전쟁터라면, 일상 속에 개혁 과제를 이루어 가는 일은 단판에 승패를 가릴 수 없는 구성원 모두의 공동 과제이고, 따라서 서로 마음을 다치지 않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도록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51:49의 팽팽한 대치 상황 속에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 각각의 이해 주장들을 어떻게 통합하고 관리해 가느냐의 문제는 단판 승부 따위와는 차원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선거 때는 ‘저 악의 무리를 응징하자’는 한마디로 지지자들의 뜻을 모아 낼 수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사회 문제들 앞에서는 일사불란한 대오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3. 전문가의 영역, 그리고 선동의 위험

우리 사회의 전면적 쇄신과 개혁을 진정 갈망하는 이라면, 혁명가와 행정가의 역할이 다르며 나름의 고유한 영역이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쇄신은 자극적 선동과 구호만으로 이뤄 낼 수 있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이른바 적폐의 범위와 역사가 넓고 길수록 그에 얽힌 문제들도 복잡하다. 이미 진행되어 버린 암종을 절제하는 데 고도의 정확성과 섬세함이 요구되듯, 이미 구조화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이른바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영역과 역할은 그런 면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누군가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던데, 인터넷에 나오는 몇 가지 단편적 정보, 책자 한둘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태도는 교만에 불과하다.

그런 맥락에서 선거 때에 유용했던 선전 선동을 이어가려는 관성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교육은 대상의 시야를 넓히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결정과 실천을 이끌어 내는 것이지만, 선동은 대상의 시야를 오직 한 가지만 보도록 좁히고,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진 결정과 실천에 끌어들이고자 한다.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다. 따라서 일상 속의 개혁과 쇄신을 위해서는 선동가의 목소리보다 전문가의 목소리가 좀 더 자주, 또 크게 들렸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 없지 않을 터인데, 그동안 전문가들이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각해서 내놓는 방향 제시와 결정에 대해서는 별로 들은 바가 없다. 신자 전문가들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하고 촉구한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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