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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로를 통한 교황청 개혁프란치스코 개혁의 이해

(로버트 미켄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6일 그가 교황이 된 지 한 달 만에 자신의 통치와 교황청 개혁작업을 보좌하도록 만든 9인 추기경위원회를 15번째로 소집하여 교황청 개혁 문제를 계속해서 다뤘다. 지난 4월 모임에서는 새 주교를 뽑을 때 적용할 “범주”와 교황 대사의 역할에 대해 토의했었다.

하지만 이 회의에 관해 교황청 공보실에서 나온 보도자료 가운데 실제적인 것은 “시작한다”는 단어뿐이다. 설립된 지 3년 만에, 그리고 14번이나 모인 뒤에도 교황청 개혁을 위한 “전체 제안”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실망한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나는 지난 번 칼럼에서 “많은 개혁지향적인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 다시금 아주 걱정하게 됐다”고 썼다. 개혁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내가 지적했듯,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의 태도와 정신에 지진같은 격변을 불러일으켰음에도, 후임 교황이 이어 받을 확실한 (구조적, 교회법적) 변화를 이룬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교회 전통와 온전히 일치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개혁의 기초를 놓는 한 방법은 주교시노드의 역할을 과감히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주교시노드를 교황 직무의 한 본질적 부분으로 만들고, 대신에 15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뒤로 역대 교황들의 손아귀를 요리저리 벗어나 온 관료기구인 교황청 기구들의 역할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즉, 이런 방식으로, 교황청 기구들을 (직접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고 무력화함으로써 교황청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는 이미 지난 3년간 이런 작업을 많이 해 왔다. 이전 교황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치하에서, 교황청의 약 20개 성과 평의회는 꾸준히 문서들을 뿜어냈다. 보편교회는 교황청이 발표하는 지침, 교령, 공지, 선언 등의 홍수에 빠졌다.

그런데 지난 3년간 프란치스코 교황 치하에서는 그런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문서가 나오는 양은 드문드문한 수준으로 줄었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청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로 –국무원보다 더 높은 위치로- 복구시킨 신앙교리성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그 어떤 다른 부서에서보다도 더 눈에 띄고 더 중요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라. 프란치스코가 교황이 된 지 3년간, 신앙교리성은 전 세계 교회에 적용되는 문서를 단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해마다 2-4개를 냈고 더 많을 때도 있었다.

마지막 문서는 지난 2012년 4월이었는데 미국 여성수도자 지도자회의(LCWR)에 대한 교의적 평가서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단체에 대한 신앙교리성의 이른바 “조사”를 재위 2년차인 2014년에 (“화해”라는 형식으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마무리 지음으로써 신앙교리성이 마지막으로 수행하던 주요 작업을 중단시켜 버렸다.

신앙교리성은 –교황청의 모든 다른 부서처럼- 교황이 권한을 줄 때가 아니면 그 자신의 권한은 전혀 없다. 이들 부서들은 엄격히 말하면 주교 단체성과 관련이 없고 교황에게만 봉사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청의 각 성에 세계 각지의 주교 여러 명을 “위원”(member)으로 두어 발언권을 줌으로써 단체적 요소를 도입했다. 하지만 각 성의 장관(및 평의회의 의장)과 그 밑의 직원들이 사실상 실권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수많은 문서를 쓰고 발표할 권한을 줬고 다른 부서가 발표하는 중요한 문서를 심사하도록 했다. 이 둘은 거의 30년간 하나가 되어 일하며 전 세계 교회 생활을 규정했다.

그리고 라칭거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 선출되자 대리인을 통해 신앙교리성을 계속 지휘했는데, 윌리엄 레바다 추기경과 지금의 신앙교리성 장관인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이다. 그가 뮐러를 임명한 것은 2012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곧 교황직을 사퇴하기로 이미 결심한 뒤였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여러 사실이 있다.(2013년 2월에 사퇴했다.)

   
▲ 교황 프란치스코 (사진 출처 = 교황청 유튜브 갈무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학자였던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존중하는 뜻에서, 뮐러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을 뿐 아니라(그때 그는 신앙교리성 장관이 된 지 겨우 9달째였다.)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기도 했다.(편집자 주- 교황청의 각 성 장관과 평의회 의장은 추기경이 임명되거나, 임명된 뒤에라도 곧 추기경이 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그는 신앙교리성을 비롯한 교황청의 여러 부서를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와 같은 방식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뮐러를 우회하고 신앙교리성에는 아무런 실제 권력이나 권한, 쓰임새를 주지 않았다.

뮐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하거나 주도한 어떠한 문서에도 공식 참여하도록 부름받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프란치스코”의 회칙인 "신앙의 빛"(Lumen Fidei, 2013)은 실제로는 그의 것이 아니고, 베네딕토 16세의 마지막 작품이다.

대신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서인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 "사랑의 기쁨" 등을 설명하도록 다른 신학자들을 불렀다. 크리스토프 쇤보른, 피터 턱슨, 로렌초 발디세리, 그리고 리노 피시켈라. 교황청의 관습을 확실히 깨고, 그는 이들 핵심 문서를 상세히 설명하는 일에 신앙교리성에 아무런 역할을 주지 않았다.

나아가, 그는 이런 문서를 쓸 때 “지구의 끝”으로부터의 신학적 도움에 크게 의지했다.(그는 교황에 선출된 직후 첫 일반알현에서 자신을 “지구의 반대 끝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즉 남미의 아르헨티나, 또는 로마와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킨다.) 그가 발표한 문서의 첫 초안을 쓰는 그림자 필자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아르헨티나 가톨릭대학 학장인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대주교라는 것은 아주 잘 확인된 상태다. 그리고 그는 교황 재위 초기부터 발터 카스퍼 추기경을 높이 존경하고 그의 사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한 로마에 있는 몇몇 동료 예수회원에게 주기적으로 의견을 듣고 식별에 도움을 받는다.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인인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를 비롯해 그레고리오 대학의 일부 교수 등이다.
그는 교황청 기구들이 특정한 “기본” 업무는 계속하도록 허용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소외시켰다. 보기를 들어, 시성성에서는 계속해서 성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고, 주교성과 인류복음화성에서는 계속해서 주교 후보들을 뽑고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이 올린 후보 명단에 들지 않은 이들을 직접 골라 성인으로 “선언”하거나(보기-예수회 공동창립자인 베드로 파브르 신부) 주교로 임명하기(이 명단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를 주저하지 않아 왔다.

그는 또한 경신성사성 장관으로서 전통주의자인 로베르 사라 추기경이 근래 활발히 국제적인 언론활동을 펴며 보편교회에 영향을 미치려 시도해 왔음에도, 경신성사성을 무력화했다. 그는 사라 추기경이 로마에서 할 일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편집자 주- 사라 추기경은 극히 보수적이고 퇴행적인 인물로서, 최근 현재의 전례 일부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비해 지나치게 개혁된 것이라며 예전처럼 사제가 신자를 등지고 미사를 드리는 것이 더 좋으므로 올해 대림절부터 다들 그러자고 선동하고, 또 신자들은 영성체를 할 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 다시 원래의 우리의 관심사로 돌아가 보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없어진 뒤에도 되돌릴 수 없는 유산을 남길 수 있도록 어떤 움직임을 취하고 있는가? 그가 어떤 구조적 또는 조직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는 처음부터 어떠한 구조적 개혁이 일어나려면 그 전에 태도와 사고방식부터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개혁을 하려면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그러한 회개는 느리기는 했지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새로운 징표들이 날마다 보이고 있다. 그의 노력은 이미 전체 교회가 언젠가 반드시 오고야 말 구체적 변화들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또는 부드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즐겨 상기시키는 바,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복음의 기쁨")

그리고 그는 교황청 기구들을 우회하며 개혁의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을 쓰는 한편, 보편교회의 면모를 아주 잘 바꾸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로버트 미켄스는 <글로벌 펄스> 편집장이다. 그는 1986년부터 로마에 살고 있다.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바티칸 라디오>에서 11년 일했으며, 그 뒤 런던에서 나오는 가톨릭 주간지 <태블릿> 기자로 10년간 일했다.)

기사 원문: https://www.ncronline.org/blogs/roman-observer/francis-reforming-roman-curia-circumvention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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