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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종교개혁 500주년과 가톨릭루터에게 감사할 수 있다
편집국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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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9  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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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앤 지머만 수녀)

올해 10월 31일에 그리스도교 세계는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의 모든 성인 성당의 문에 그 유명한 “95개조”를 못으로 박은 500주년을 맞는다. 가톨릭 신자 대부분은 이날이 개신교 세계에서 중요한 날이라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에게는 어떤가? 우리에게도 중요한 기념일이기는 마찬가지다. 왜 그런가?

우선, 곳곳에서 다양하게 벌어질 기념행사에 가톨릭이 참여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그 공의회에서 선포한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교령 이후로 우리가 이뤄온 거대한 진보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지역과 국가, 국제 차원에서 우리는 이 문헌의 첫 구절을 진지하게 여겨왔다. “일치의 재건을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촉진하려는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대한 목적의 하나이다.”

이 교령은 그리스도교의 분열이 동방에서 있었고(예를 들어 초기의 그리스도론적 이단들, 그리고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1054년의 동서대이교가 있다), 서방에서의 분열들도 있다고 적기에 이르는데, 서방에서의 분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개신교의 ‘종교개혁’이다.(13항)

교회일치를 향해, 교의와 예배에 관해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진전이 있었다. 나 자신이 전례신학자로서, 내가 해 온 교회일치 작업은 대부분 예배의 영역이었는데, 이 분야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 합의가 있었다.

여러 그리스도교 종파가 서로의 세례를 인정해 주고 있다. 이는 어떤 개신교인이 가톨릭 신자가 되고자 하거나 또 반대로 한 가톨릭인이 개신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할 때, 기존의 세례가 성삼위를 한 절 안에서 분명하게 순서대로 직접 언급(마태오 복음 28장 19절 참조)한 성사 기도문과 함께 물로 받았다면 새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세례를 서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가톨릭 신자가 우리 개신교 형제자매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라는 뜻이다.

어떤 가톨릭 신자들이 믿는 바와 달리, 일부 개신교 종파들은 성체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실제로 현존한다고 믿는다. 이들이 빵과 포도주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실체변화 교의를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일부 개신교 종파들이 로마 가톨릭의 성체성사 기도문을 조금씩이더라도 자신들의 다양한 전례서에 포함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열매가 아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은 몇몇 개신교회의 전례 방식에 큰 영향을 줬다. 특히 가톨릭 독서집의 첫 영어판이 나온 뒤, 공동 (개정) 독서집이 출판되었다.

이는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첫째, 가톨릭인들과 여러 개신교인들이 이제는 일요일 전례에서 같은 독서를 듣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공동 (개정) 독서집을 이용하면서 개신교인들은 전례년의 흐름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기도하는 규범이 믿는 규범(lex orandi, lex credendi)이라는 옛 원칙대로 모든 기도/예배는 각기 어떤 신앙/교의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기도/예배의 근본 목적은 신앙/교의의 이념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 그리고 감사를 드리는 데 있다.

   
▲ 조이스 앤 지머만 수녀가 강의하는 모습 (사진 출처 = <CRUX>)

2017년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한 방법은 개신교인과 가톨릭인 양측에 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예배와 신앙 실천과 연관된 주제들을 놓고 일치를 촉진하는 것이다. 예들 들자면, 하느님 말씀의 힘,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선함, 창조의 은총 가득함, 성스러움으로의 초대, 하느님이 늘 현존하시며 도와주시는 것 등이다.

우리가 ‘타자’(개신교인이든 가톨릭인이든)를 대하는 태도는 부적합하거나 부정확한 지식에 바탕을 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기를 들자면, 어떤 개신교인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마리아와 성인들을 예배한다고 믿고 있다. 가톨릭 신자 중에는 개신교인들이 성체를 그저 상징으로만 여기고 우리를 위해 주어진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아니라고 본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두 생각 다 틀렸으며 대화를 통해 크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오해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풀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사이의 공통점을 대화의 가장 첫마디이자 관계를 위한 기초로 삼아 서로 모두 껴안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모든 이에게 구원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공유한다. 우리는 우리가 부름 받은바 성스러움 안에서 성장하도록 우리 자신을 헌신할 필요가 있다. 선한 일이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바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예를 들어, 복음 실천에 충실하기, 다른 이를 돌보기, 그리스도가 하셨듯 남을 대하기 등이 있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 진행되고 있는 교회일치를 향한 역동성을 포용하고, 우리의 차이들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할 진실한 의지로서 그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이가 일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언가 조금씩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할 때 분열이 치유된다는 원칙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치의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목표로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타인도 우리처럼 선하고 성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500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것은 가톨릭인들에게는 뜻깊은 일이다.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분열돼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간 실현되어 온 교회일치 운동의 여러 성취물을 기념하도록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서로서로 위하여 기도하도록 부르는 것이며, 우리가 공유하는 선함과 진실에 우리의 마음들이 열리도록 촉구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념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톨릭 신앙에 더 많이 배워야 할 뿐 아니라 개신교 형제자매들이 실천하고 있는 신앙의 깊이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의 교회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제도인지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며, 과거와 현재에 걸쳐 서로 상처 주는 판단들과 행위를 해 왔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려는 진실한 사랑과 소망으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 가톨릭인들은 아마도 마르틴 루터를 우리 전례력의 성인 목록에 올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교회의 일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성령에 의해 인도받으며,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찬양을 위한 것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삶으로 실천해낼 때 이뤄지리라는 것을 깨우쳐 준 점에 궁극적으로는 감사할 수 있다.

(조이스 앤 지머만 수녀는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 있는 전례직무연구소 소장이다.)

기사 원문 :  https://cruxnow.com/sponsored/2017/05/21/500th-jubilee-reformation-significant-catholics/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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