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를 거니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만나고 싶었다. 무언가 날것, 그대로의 바다를 만난다면, 무디어져 버린 내 영혼이 깨어날 거라는 그런 기대였다. 우리 수녀원의 피정 집은 오레곤 해안에 있었고, 나는 끝없이 펼쳐지는 숲길을 지나고, 잔잔히 흐르는 강가를 지나고, 그냥 머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들을 지나, 거대한 바다를 만났다. 초여름의 이 거대한 바다는 지는 해를 한참 간직한 채,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생명의 신비를 알고 싶다고 기도하면서 당도한, 해 지는 바닷가에서, 처음 본 것은, 뜻밖에도 죽음의 흔적들이었다.
신학과 영성
박정은
2023.06.12 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