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가 시작된 이 가을에, 우리는 주님의 빛 안에서 함께 걷는다.

가을은 누가 뭐라 해도 축제의 계절이다. 곡식을 수확하고, 사람들은 넉넉함 속에서 흥을 즐겼다. 어쩌면 늘 부족하게 살아서, 그런 쉼, 넉넉함, 축제가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삶은 늘 거칠고 팍팍하며, 또 배고픈 것이라서 그저 이 계절에는 꼭 생을 즐겼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포도주로 유명한데, 포도가 재배되는 나파에서는 이즈음이면 바람에 포도향이 배어 나고, 그 바람 속에서 포도송이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 공연히 흥겨워진다.

성서에서 포도주와 향연을 하늘나라의 기쁨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포도송이들의 이야기가 모여서, 맑은 향의 포도주가 되는 것은 결국 하늘나라와 같다. 그래서 이번 시노드가 이 가을에 열린 것, 특히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에 열렸다는 것이 내 맘을 설레게 한다.

처음 신학을 공부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제2차 공의회'였다.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 우리 모두는 함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우리는 아직 '제 2차 공의회'의 정신을 살려면 멀었고, 이해도 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고, 또 다른 학생들은,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교회를 이룩하려면, 여성 사제직이나, 동성애자에 대한 견해에 대해 새롭게 쓰는 '제3차 공의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공의회가 열렸던 그 1962년에 대해,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흘러나왔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여성들의 이야기다. 공식적으로 공의회에 여성은 참석하지 못했고, 15명 여성이 오직 듣기만 하는 조건으로 초대되었다. 하지만 여성 참석자들은 공의회 일정 후, 공의회에 참석한 성직자들을, 식사에 초대하여 대화를 나눔으로써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지게 했다. 우리 수도회의 제랄다(Gerarda Joubert) 수녀님은, 공식 초청되지 않았지만, 오크랜드 주교님과 함께 머물면서, 공의회 참석 중인 신학자들과 장외 토론을 하기도 했고, 그 대화 내용들을 정리해서 여러 수도 공동체에 보내 주기도 했다. 교회는 여성을 초대하지 않았지만, 여성들은 결코 교회의 장에서 소외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성들이 처음부터 공식 초대되었다.

한 송이 풀꽃도 사실은 함께 생명을 살아간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던 날. 여러 색, 여러 모양이 한 송이에 담긴다면, 우리 교회 안에는 얼마나 여러 색, 여러 모양이 담겨야 하는 걸까. ©박정은
한 송이 풀꽃도 사실은 함께 생명을 살아간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던 날. 여러 색, 여러 모양이 한 송이에 담긴다면, 우리 교회 안에는 얼마나 여러 색, 여러 모양이 담겨야 하는 걸까. ©박정은

물론 이번 시노드는 제3차 공의회가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공고하게 하시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노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미국 잡지 <아메리카>에서도 이번 시노드에 대해 실었는데, 그 기사 표제는 '이번 시노드가 3차 공의회가 아니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이렇게 성직자, 평신도, 남자, 여자가 함께 교회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새로운 세대의 교회는 이렇게 늘 항상 모든 사람의 소리가 들리게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데 더 이상 제약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함께 걸어가는 것이기에 그렇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이 시노드 기간에도 움직이며 걸어간다. 나도 지역 교회에서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를 받았다. 오크랜드 한인 성당에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 미사에 강론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시노드가 시작되는 이 주에, 우리 동네 아이들과 미사를 함께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냥 조그만 축복만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나를 초대해 준 신부님도 고맙고, 이 미사를 시작하면서 모인 신앙인들의 마음은 더욱 감동스럽다. 

처음에 열심한 두 분 자모회 어머님의 무모한 열정과 지고한 순명으로 시작된 이 영어 미사에 사람들이 한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십 년 전, 청년이었던 세 명 학부모가 함께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더욱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말없이 잘 웃던 청년이 아버지가 되었고, 예쁘게 기타를 치며 찬양을 하던 청년은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미사 드리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배워 간다. 근처 버클리 대학에 다니는 잘생긴 남학생 세 명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기 위해, 이 미사에 초대되었다. 

포도를 수확할 때면, 바람 속에 포도 향기 실려 오고, 포도송이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시노드란 축제 속에는 포도가 알알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들이 농익어 맑은 포도주가 될 때, 하늘나라의 노래가 시작될 것이다. ©박정은
포도를 수확할 때면, 바람 속에 포도 향기 실려 오고, 포도송이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시노드란 축제 속에는 포도가 알알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들이 농익어 맑은 포도주가 될 때, 하늘나라의 노래가 시작될 것이다. ©박정은

아이들은 찬양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세 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독서와 신자들의 기도를 하는 어린이들도 멋지게 잘했다. 바티칸에서만 시노드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 교회에서 조그맣게 시작되는 이 시노드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어디 그뿐인가, 미사 후 친교 시간에 나는 이 미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작은 모임에서 나는 어쩌면 더 깊이 공동체를 배워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글로벌한 비전 속에, 나의 기도는 나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다짐이었는데, 어쩌면 나는 그저 글로벌한 세상의 교회 일원으로 살 것 같았는데, 주님께서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공동체로 부르시니 조금 당황스럽다. 하지만  거기서 만나는 어린이들과 복음 속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렇게 조금씩 함께 살아보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동안 잊어버렸던 다정한 단어 '우리 동네 성당'이 마음에 콕 하고 박혔다. 

그리고 오늘 난 우리 공동체의 한 수녀님을 보내 드렸다. 참 유쾌했고, 다정했던 수녀님이셨는데, 그 수녀님의 다정함은 무척 독특해서, 정말 아이 같은 그런 다정함이었다. 오래 아팠던 수녀님이지만, 불평 없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농담을 걸 수 있으셨고, 그의 말에는 늘 꾸밈이나 거짓이 없었다. 미사 말미에, 우리는 하느님께 수녀님을 보내 드리면서, 정말 달릴 길을 다 잘 달리셨다고, 박수를 쳐 드렸다. 장례 미사 중 수도회 성당을 둘러보니, 벌써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많고, 수녀님들이 많이 늙으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있어서 감사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길을 걷고 있다. 병고 중에서도 웃음을 지으며 함께 길을 걷던 수녀님을 보내고, 이 시노드(함께 걷는 길), 혹은 시노달리디(함께 걸음)는 결국 이 세상과 천국을 이어 주는 다리라는 생각을 한다. 하느님의 빛 안에서 걸어간, 그리고 앞으로 함께 갈 모든 이를 위해 요즈음 계속 노래를 부른다.

We are marching in light of God.

We are marching in the light of God.

We are marching, marching

We are marching oh ohhh!

We are marching in the light of God.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인문학"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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