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편집 : 장기풍)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충실하십시오”

교종, 6월25일 연중 제1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5일 낮 성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진행한 연중 제1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신자들에게 숨 막히게 하거나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올바른 관심과 보살핌을 바치라고 당부했다. 교종은 비용이나 희생 또는 두려움에도 예수님은 중요한 일에 충실하라고 여러분을 초대하시며, 그러면 모든 것은 주님이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마태 10,26-33, 주 : 한국은 이동 축일)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전에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복음을 위해 견뎌야 할 박해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동안 수많은 큰 기쁨과 큰 박해도 함께 겪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오늘날 여전히 관련된 것입니다. 하느님나라 선포는 형제애와 용서에 기초한 평화와 정의의 메시지인데도 반대와 박해에 직면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잘되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께 우리가 소중하고 좋은 것은 아무것도 잃지 않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대신 예수님은 한 가지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에 충실하기 위해 오해와 비판과 명예와 경제 이익을 잃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사소한 일을 좇느라 삶을 낭비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경고는 우리 모두가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이 시류를 따르지 않으면 비웃음과 차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족 부양을 위해 혼자 일하느라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제나 수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수많은 젊은 남녀도 학교, 스포츠, 다양한 관심사, 휴대폰, 소셜 네트워크 등에 헌신과 열정을 갖고 있지만 더 큰 꿈을 실현해야 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시류를 거스르려면 포기가 필요합니다. ‘효율성과 소비주의 우상’ 앞에 포기가 필요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버려지는 것들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더욱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에 충실하려면 비용이 따릅니다. 그것은 시류를 거스르고 일반 사고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만 '유행의 물결을 따르는' 사람들로 밀려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주목하시는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가 없는 것에 우리 삶의 가장 좋은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 사회가 부과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타인의 판단에 대한 것, 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보다 복음을 우선합니까? 성모 마리아께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지혜와 용기를 주시기를 청합시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저는 지난 주 온두라스 여성 교도소에서 일어난 폭동 희생자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와 함께 화해와 형제적 공존을 위해 기도합니다. 온두라스의 주보 수야파의 성모님께서 온두라스 사람들이 화해의 마음을 열고, 교도소 안에서도 형제적 공존의 여지를 만들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한편 6월20일 온두라스 타마라에 있는 여성 교도소에서 40명 이상 여성이 사망한 치명적 교도소 폭동에 대한 예비조사에서, 수감된 갱단원이 총으로 경쟁자를 공격하고, 일부는 감방에서 산 채로 불태움을 당한 심각한 '보안 붕괴'가 발견되었다. 시오마라 카스트로 온두라스 대통령은 교도소 폭동은 '보안 당국 묵인' 아래 갱단이 일으켰으며, 이에 대응한 '과격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1983년6월22일 실종한 바티칸 시국 주민인 15살 엠마누엘라 오를란디 실종 40주년을 맞아 엠마누엘라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친밀함을 표현하고 '사라진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모든 가족을 위한 기도를 약속했다. 이 사건에 대한 음모론 등 관심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지만, 최근 바티칸과 이탈리아 당국이 조사를 재개하면서 새로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기자들은 미래 세대를 윤리적으로 이끌 책임이 있습니다”

교종, 국제저널리즘 상 수상자들에게 윤리적 정보 제공 사명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4일 오전 바티칸에서 ‘비아지오 아그네스’ 국제저널리즘 상을 받은 대표단을 만나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언론인들에게 책임감 있고 윤리적으로 미래세대를 교육하고, 더 나은 문명을 건설하는 소명을 받아들이라고 당부했다. 연설 내용.

요즘 가짜 뉴스와 유해한 정보가 판치는 현실에서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미래세대에 책임감 있고 윤리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할 때 희망의 지평을 그릴 수 있습니다. 신발이 닳도록 만나는 사람들의 말을 항상 들으며 '디지털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이 기자들의 업무입니다. 지금도 전쟁터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고 보도하는 기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널리즘은 감동과 보고 싶은 욕구, 호기심, 개방, 열정을 가지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전쟁을 보도한 언론인들에게 주는 국제저널리즘 상은 분쟁 비극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같은 고통의 일부를 느끼게 합니다. 

저널리즘 작업의 세 가지 요소는 '노트와 펜과 시선'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요즘 이것들이 점점 더 적게 사용되지만 여전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노트에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항상 많은 작업이 따릅니다. 직접 목격했거나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소식통 보고를 추가 검증을 통해 공개하기 때문에 기록합니다. 노트는 경청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지만 무엇보다 일어나는 일에 기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자는 결코 역사의 회계사가 아니라 참여와 연민으로 역사의 의미를 경험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펜은 점점 더 적게 사용되고 더 발전한 수단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여전히 펜은 생각을 처리하고, 머리와 손을 연결하고, 기억을 키우고, 기억을 현재와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펜은 언론인이 항상 부름 받는 수작업을 연상시킵니다. 세부사항을 확인하고, 가설을 살펴보고, 재구성하고, 모든 단계를 확인한 뒤 펜을 손에 잡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능과 양심과 함께, 실존적 화음을 건드리게 됩니다. 또한 펜은 언론인과 미디어 노동자의 '창조 행위'를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펜은 비아지오 아그네스가 말한 것처럼 직업윤리에 대한 존중과 진실 추구와 사람에 대한 존중을 결합하도록 요구하는 언론인과 미디어 노동자의 '창조 행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노트와 펜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없다면 단순한 액세서리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과거보다 판치는 오염된 단어, 이미지, 메시지에 주의가 산만해질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 호전적 수사 또는 진실을 조작하는 슬픈 현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언어를 무장 해제하고 대화를 촉진하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언론인의 시선은 ‘그림자를 없애고’ 더 나은 문명 건설을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이것은 각자에 요구되는 노력이지만 결국 하나입니다. 통신 종사자 측에 특히 책임감을 요구해 그들이 자신의 직업을 사명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올바른 정보 보급을 지원하고 젊은 세대를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한 문화 이니셔티브를 계속해서 촉진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여러분의 참석에 감사하고 수상자들에게 축하드립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도 잊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움은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교종, 바티칸 박물관 현대미술 컬렉션 50주년 맞아 예술가들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3일 바티칸 박물관 현대미술 컬렉션 개관 50주년에 시스티나 경당에 모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에게 참된 아름다움은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일으키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며 진정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경험하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예술가는 ‘하느님의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특별한 만남을 통해 여러분의 작품이 이 땅의 모든 남녀들에게 합당함을 증명하고, 작품의 증거를 통해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며 모두가 찾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희망합니다. 예술가와 교회는 매우 오랜 ‘특별한 우정 관계’입니다. 예술가들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항상 정신적 차원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예술은 마치 성령의 바람으로 부풀어 앞으로 나가게 하는 돛과 같습니다. 작가이자 신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1885-1968)는 “예술가는 어린아이와 같고, 몽상가와 다르지 않다"고 썼습니다. 

예술 작품은 우리가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줍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숨 쉬고, 움직이며 사물과 사람이 우리 앞에 열리게 됩니다. 예술과 만남에서 경계는 더욱 유동적이고 우리의 경험과 이해의 한계는 넓어집니다. 모든 것이 더 개방적이고 접근 가능한 상황에서 ‘상상력이 넘치는 어린아이의 즉흥성과 현실을 파악하는 몽상가의 직관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술가는 어린이'라는 말은 불쾌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독창성과 참신 그리고 창의성에 자유롭게 고삐를 주어 새롭고 전례 없는 것을 세상에 가져오게 합니다. 

여러분은 예술 재능으로 특별한 것을 밝혀내고 새로운 것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9) 또한 묵시록에서도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21,5)고 하십니다. 따라서 예술가의 창의성은 창조에 대한 하느님의 열정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꿈을 공유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물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에 대한 과르디니의 묘사처럼 예술가들은 선지자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긴장된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더 깊은 현실을 분별하는 파수꾼처럼’ 사물을 깊이 있고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탈리아어에서 ‘메이크업’이라는 단어는 ‘속임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오늘날 인기 있고 종종 불평등을 야기하는 경제 메커니즘에 연루되는 인위적이고 피부 속에 파고드는 아름다움의 매력을 거부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대신 예술은 사회에 비판적 양심으로 행동하고 자명함을 드러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의 예언자들처럼 예술가들은 종종 ‘불편한 것’에 직면해 오늘날의 거짓된 신화와 새로운 우상, 공허한 말, 소비주의 계략, 권력의 계략을 비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진부하고 비하하는 방식으로 자주 나타나는 종교성을 분별할 것을 촉구합니다. 환상가, 분별력 있는 남녀, 비판적 양심으로써 저는 여러분이 생명수호, 사회 정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우리 공동의 집에 대한 관심으로 보편적 인간 협동 단체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인간다움’이 모두에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의 위대한 열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신앙에 가깝습니다. 둘 다 문제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도, 신앙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놔둘 수 없습니다. 종종 예술가들은 인간 조건 깊이와 어두운 심연을 파고들려고 시도합니다. 진정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경험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술이 점점 더 미의 함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이중에는 쓸데없고, 인위적이고, 피상적이고, 부정직한 종류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분별하는 기준은 ‘조화’입니다. 진정한 조화는 아름다움을 작용하는 미덕, 조화자이신 하느님 영이 활동하는 깊은 정신입니다. 조화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통일성을 형성할 때 존재합니다. 이는 오순절에 그러하셨듯이 성령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조화를 이루는 성령의 작품입니다. 여러분의 예술적 천재성이 이 과정을 추구하도록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가난한 이의 소리 없는 탄원을 해석하는 자가 되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예술과 아름다움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들의 침묵의 간청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 감사와 존경을 드리며 부디 여러분 작품이 모든 남녀들에게 합당한 증거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부디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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