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신부님에게 한 신자분이 오셔서 당신의 한복을 축성해 달라고 하시더랍니다. 며느리에게 줄 한복이라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그분의 뜻이 매우 의미 있다 여겨져서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해 드렸다고 합니다.이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다루었던 ‘속풀이’가 떠올랐습니다.(“축성과 축복은 같은 말인가요?”) 우리가 말을 자꾸 혼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묵주를 “축복"할 때도 “축성"이란 말을 혼동해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다시 기억을 떠올리면, 축성은 “봉헌하여 성스럽게 만든다”는 의미의 콘세크라시오(
오가며 친분을 쌓게 된 분께서 최근 가까운 친척이 위중한 상태라고 병자성사를 청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자를 방문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며칠 뒤 병자성사를 받으셨던 분의 사망소식을 듣고 빈소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발인이 바로 다음 날이라 저는 혹시라도 지인의 가족들이 요청하면 조용히 위령미사를 봉헌할 수도 있겠다 싶어 휴대용 미사제구 세트를 준비해 갔었습니다. 하지만, 빈소의 분위기가 혼잡하여 미사를 드릴 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미사를 드리지는 못 해도 평신도들이 할 수 있는 사도예절로 대신할 수 있겠다고 말씀
최근 들어 한반도의 남과 북이 서로 언제보다도 실제적인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북한에 관한 호기심이 다시금 일어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의 교회에 대해서 질문이 들어오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이런 단어를 잘 쓰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북한의 교회를 ‘침묵의 교회’라고도 불러왔습니다. 본래는 공산주의 정체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북한의 경우 1948년 정식으로 공산정권이 서자 북한 지역이 침묵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가톨릭대사전 참조)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교
사제들은 교무금을 낼 수도 있고 안 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교무금은 각 동네의 본당과 얽힌 사안인데, 교무금을 받아 본당을 운영하고 소속 교구에 보조금을 납부하는 이가 본당을 책임진 사제이기 때문입니다.교무금은 한국 교회에 있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사제가 충분치 않았던 초기 한국교회는 공소를 거점으로 지역 교회공동체들이 뿌리내리도록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신자들이 모았던 자금이 교무금의 기원이 됩니다. 헌금의 일종이라 할 수도 있지만, 주일 미사에서 봉헌하는 헌금과는 달리 액수가 정해져 있고 1년이라는
이번 주에 다룰 질문은, 제가 예수회원인데 공교롭게도 예수회가 운영하는 전 세계적인 신심운동에 관한 것이 되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운동이 전 세계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유학 시절 이 운동으로 인해 국제적 차원에서 오가는 이들을 보면서 그 규모를 실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기도의 사도직'(Apostleship Of Prayer)은 우선, 모든 이에게 열린 신심운동입니다. 그 영성은,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일상적인 노력, 예수성심께 대한 봉헌,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태도, 교
어떤 분은 집 근처에 본당이 있는데 주소지로 보자니 관할 본당은 오히려 집 근처에 있는 성당보다 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성당으로 교적을 옮길까 했더니만 성당 사무실에서는 관할권 안에 있는 주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적을 옮겨 드릴 수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본당으로 가는 게 아무래도 편하겠죠. 하지만 안 된다고 하니 어찌할까요?다른 이유에서 교적을 옮기고 싶다는 분도 있습니다. 주일에도 일 때문에 일터에 갔다가 가까운 성당에 더 자주 가는데, 아예 일터 주변 본당으로 옮기는 것이 낫겠다고 하십니다. 하지
최근에 제 고모부와 이모부께서 임종하셨습니다. 두 분이 공교롭게도 사흘 사이로 연이어 떠나신 터라 제 몸과 마음이 부산했습니다. 그렇게 빈소를 오가며 언젠가 장례미사와 위령미사에 대해 받았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장례미사는 뭐고, 위령미사는 뭔가요?"큰 범주에서 위령미사는 장례미사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뭉뚱그려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모두 위령미사라고 해도 큰 잘못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 용어를 따로 쓰는 걸로 보아 죽은 이를 위한 미사는 장례미사와 위령미사로 구분된
애독자 한 분이 미사 중에 종을 치는 행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먼저, 종을 치는 횟수에 관한 것입니다.이분은 어린 시절 복사단 활동을 했었고, 당시에는 미사 중에 여섯 번 종을 치는 것으로 배웠다고 하셨습니다.저도 어릴 때 복사단에서 활동을 해 보았기 때문에 종 치는 데 예민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종 치는 순간을 깜빡 잊거나, 미사 준비하면서 실수로 종을 빠뜨렸을 때는 머릿속이 하얗게 바뀌는 느낌이었습니다.제 기억에는, 꼭 치라고 배운 순간은 총 다섯 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 성변
어느 본당의 전례 봉사자로부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주일미사 1독서는 가급적 남자가, 2독서는 여자가 한다는 지침이 무엇을 근거로 이뤄졌는지 궁금하고, 더불어 예물 봉헌 때 제병이 담긴 성합은 남자가 들고 온다는 데에도 어떤 근거가 있는지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이에 대해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생각해 보니 미사 의뢰가 들어와 가 봤던 본당의 전례 봉사자들은 정말, 오늘의 질문 상황에 걸맞는 전례 구성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제1독서는 남자 봉사자, 제2독서는 여자
우리는 며칠 전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으면서, 부활시기를 마감하고 다시 연중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되새겨 보고, 이 능력을 통해 일상을 꾸며 가야 할 때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성령께서 오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다른 말로 오순절이라고도 부르는지 질문하신 분이 계셔서 좀 살펴보고자 합니다.성령 강림 대축일을 오순절과 혼동하게 되는 데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펜테코스테(Pentecoste)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50번째"라는 뜻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50번째 날을 뜻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냐
언젠가 다뤄 봤던 가톨릭 내 다양한 전례를 기억하시나요? “가톨릭 전례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를 참고하시면, 전례가 단지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익숙한 전례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전례 외에도 다양한 전례가 가톨릭 교회로부터 인정받고 있습니다.오늘날 로마가톨릭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전례는, 당연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생겨난 것입니다. 공의회를 소집한 분은 요한 23세이지만 그 일정 안에서 실제로 함께한 분은 바오로 6세였기에, 오
노동조합(이후 노조)이 없이 기업을 운영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자 했던 유명 재벌기업이 노조를 만들려는 운동을 조직적으로 탄압해 왔다는 사실이 최근 문서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이런 시사적 정보 때문인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관에도 노조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받았습니다.이런 질문을 받으니 질문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기업이나 단체에 꼭 노조가 있으란 법 있나. 없이도 운영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질문에 답한다면, 노조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기준이 특별하게 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개헌안 내용 가운데 야당이 가장 심하게 공격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토지공개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가지고 개헌안을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다양한 이견이 있었습니다.토지공개념이 공격을 받은 데는,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토지공개념과 사유재산권 혹은 재산소유권은 상호 충돌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충돌한다고 해서 양립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닙니다.토지공개념과 같은 사고를 과연 사회주의적 발상에만 국한해서 볼
여기서 “나"는 상을 당한 가족의 한 구성원입니다. 얼마 전 부친상을 당한 친구 하나는 자기 집에서 그 자신만 가톨릭 세례를 받은 상태였습니다.이런 경우 당연히 그 혼자 신자라고 해도 장례를 천주교 식으로 치를 수 있습니다. 물론 정서상 가족들과 합의를 해야겠지요. 상주가 신자인 경우에는 비교적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여러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습니다.그래서 가능하면 임종을 앞둔 분에게 대세를 드리는 것이 그런 반대 의견을 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혹은, 돌아가신 분이 세례를 못 받았다고 해도 사제와 친분이 있는 경
전에도 비슷한 주제를 다뤄 본 적이 있습니다. 사회법적으로 이혼한 비신자 부부의 경우에 대해서 질문이 들어온 김에 오늘은 그 주제를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비신자인 심순애 씨와 이수일 씨는 둘 다 사회법상으로 서로 재혼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내되는 순애 씨가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으려 하는데, 장애가 생겼습니다. 남편 수일 씨는 세례받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언뜻, 부부 중 한 편이 세례를 받고 안 받고가 다른 편이 세례 받는 것과 관련 있어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사회법상 부부
부활시기 잘 보내고 계시죠?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부활의 의미가 더욱 생기 있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부활축제가 어찌하여 봄에 이루어지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부활시기엔 부활초를 켠다는 것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빛이시며, 이 빛을 통해 우리의 생명이 되살아 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얼마 전, 평일미사에서 미사를 준비하던 복사가 ‘부활초도 켜나요?’하고 물어 왔습니다. 저는 부활시기니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복사는 부활초를 부활성야와 주일에만 켜는 것이라 착각했었나
재의 수요일에 우리 모두가 다 흙에서 왔음을 기억하면서 사순시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사이에 부활을 맞고 봄이 온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2018년 올해는 제주 4.3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 우리는 특별한 부활을 기원하는 게 좋겠습니다. 4.3 희생자들의 영혼이 안식을 얻고,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이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남과 북으로 나뉜 것이 아니라 함께 해방을 맞기를 바랐던 이들이 이제는 제대로 인정받는 것, 그것이 이 나라가 제 모습을 되찾는 의미로서 부활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그래서 올해의 부활이 더욱 의미
독자분들은, 미사 중에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Dominus vobiscum)라고 축복의 인사를 하면, 회중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Et cum spiritu tuo)라고 응답의 축복을 하였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미사 경본"의 표현이 바뀌면서,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를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로 바꾸어 응답하게 되었습니다.이 바뀐 표현에 대해 주변의 지인들은, 입에 익숙치 않아 불편하기도 하지만 신자들에게는 “영"(spiritus)이 없고 성직자들에게만 있는 것이냐? 하는 질문과
짧은 지식과 식견으로 글을 쓰다 보니 용어를 혼동하여 쓰는 것도 모르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얼마 전에, 수도회 내의 제3회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재속회라고도 불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 단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혼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서로 성격상 다른 조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지난 기사(“수도회에 제3회라니요?”)의 오류를 확인해 보시도록 권합니다.제3회와 재속회의 차이에 대해서는 작은 형제회 소속의 신부님께서 친절히 용어의 혼동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설명과 제
언제부터인가 가톨릭 교리와는 동떨어진 가르침을 전하며 신자들을 현혹하는 세력이 교회 내로 침투하고 있나 봅니다. 저는 본당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어서 요즘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둔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심각하게 그런 세력이 잠식했는지 잘 모르지만, 오가며 있어 들렀던 여러 본당에는 그런 이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대신 제가 일하는 대학 캠퍼스에서는, 그 세력이 학생들에게 이성친구 맺어 주기 등의 이벤트를 마련하여 접근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강의에 왔던 학생 하나는, 이 세력이 전략적으로 놓은 미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