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언젠가 다뤄 봤던 가톨릭 내 다양한 전례를 기억하시나요? “가톨릭 전례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를 참고하시면, 전례가 단지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익숙한 전례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전례 외에도 다양한 전례가 가톨릭 교회로부터 인정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로마가톨릭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전례는, 당연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생겨난 것입니다. 공의회를 소집한 분은 요한 23세이지만 그 일정 안에서 실제로 함께한 분은 바오로 6세였기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전례를 간단히 바오로 6세 전례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바오로 6세 전례는, 각 나라의 말로 진행되고 사제와 회중이 제대를 가운데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이뤄지는 전례라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로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으며, 가톨릭 교회 밖에서도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이 있다면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사건이었습니다. 전례의 변화는 그와 같은 공의회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개방적 시각은 이웃종교와 대화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고 오히려 풍요로운 다양성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보고자 했습니다. 대화는 교회일치운동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도 분열되어 있는 이들이 서로 하느님 안의 형제자매들임을 알고, 공동선을 위해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변화되는 세상에서 교회는 평신도의 역할과 역량에 주목했습니다. 위계로만 교회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협력 구도 안에서 움직이는 교회를 설정해 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어 준 지평은 엄청난 것이었던 만큼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그런 변화에 우호적일 수는 없었고, 그 개방성이 많은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럽과 같이 오래전부터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지역에서 적잖은 신자들은 새로운 전례와 새로운 신학적 지평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라틴어만을 하늘나라의 신비를 드러내는 언어라고 믿고 살아왔던 이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바티칸 제2차공의회에서 채택된 전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의회 이전의 전례인 트리엔트 전례(트리엔트공의회를 통해 확인된 전례, 간단히 비오 5세 전례라고도 합니다)만을 고수하였습니다. 

비오 10세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에도 이전처럼 회중을 등지고 선 채 미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시청각적인 면에서, 사제가 방패형 제의를 입고 벽 쪽에 붙은 제대를 두고 미사를 거행하는 전례가 트리엔트 전례입니다.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됩니다. 이 전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전례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전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는 우리에게는 매우 멋져 보입니다. 라틴어를 알면 더욱 뭔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현재 로마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바오로 6세 전례와 비오 5세 전례 모두 거행할 수 있습니다. 공의회 이후의 전례인 바오로 6세 전례가 더욱 권장되고 확산되어 있을 뿐입니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는, 라틴어와 자국어가 섞여서 진행되는 절충적 전례를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언어의 절충적인 사용 예를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각에 따라 복고풍이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전례를 향유할 수 있다면 삶도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유럽처럼 쉽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사제가 트리엔트 전례를 봉헌할 수 있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라틴어로 진행되는 전례입니다.

하지만, 트리엔트 전례를 고수하는 모임 중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거부하는 세력도 있음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과거의 전례를 고수함으로써 공의회의 정신을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요한 23세 교황 이전의 교황만 그들의 교황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현재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대표적 예가 "비오 10세회"(Society of Saint Pius X)라는 단체입니다. 1988년에 파문을 당했었으나 2009년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파문이 철회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교회와 일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상을 대면하고 살아가는 데 대화를 통해 이해를 넓혀 가고자 하는 교회의 움직임보다는 “나를 따르라” 식의 명확한 규범제시와 지시가 어떤 신자들에게는 더 힘을 주는 원천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비오 10세회가 보여 주듯 극보수적 태도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과 몸을 섞기 위해 오신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려는 움직임과 배타적 고결함을 유지하려는 움직임 사이에서 나는 어디로 이끌리고 있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는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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