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정체성 변화역사적 인물 예수가 신의 수준으로 격상되는 과정에 교회 안에서는 예수의 본질을 둘러싸고 상이한 논쟁들이 있어 왔다. 핵심은 예수의 신성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가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사상적 통일을 위해 일신론에 기반한 그리스도교가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정신적 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에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싼 신학적 갈등이 있는 것은 로마 제국을 위해서도 좋을 게 없었다.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니케아(지금의 튀르키예 이즈니크)에서 이른바
한국 수도회의 현실교구 신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도회에서 강의와 피정 동행을 할 때가 심심찮게 있다. 수도회와 수도자들에 대한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단순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교구 사제로 사는 것보다 수도자로 사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안다.한국 수도회가 쇠퇴와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고령화와 수도 성소의 급격한 감소는 수도회 쇠락의 직접적 요인이다. 수도회를 방문할 때마다 직접 피부로 절감한다. 지난 세기의 그 활발했던 분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년의 공동체라고
내가 좋아하는 십일월이 오면, 내 영혼은 나 혼자만의 고요한 춤을 춘다.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November라는 십일월에는, 내가 온 길과 내가 걸어갈 길을 생각해 본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은 아무 미련 없이 자기의 거처를 떠나 길거리를 뒹굴고, 어둑한 저녁 산책을 하다 보면, 매 순간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우리 삶의 본질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특별히 11월에는 죽음을 묵상하고, 영원하신 하느님을 명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죽음이란 알 수 없는 깊이에 매료되어 나는 수도 생활을 택했다
이 글은 (www.comngood.co.kr)에 함께 실렸습니다. - 편집자시어머니에게 순종하는 착한 며느리에서 '다문화 고부 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다. 결혼 이주 여성의 고향을 시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며, 고부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주로 동남아 출신의 젊은 여성이 나이 차 많이 나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농촌 가정이 소개되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인지 프로그램은 ‘시집살이시키는 시어머니’와 ‘미숙하고 고집 센 며느리’라는 고부 사
바울로의 종교적 형이상학바울로를 철학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계 사상사에서 그가 끼친 ‘철학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헬레니즘의 영향권에서 활동한 바울로는 예수에게서 그 개별적 모습(physics)을 넘어서는(meta) 보편적 본질을 보았고, 역사적 예수의 의미를 영원한 신의 세계와 연결시켰다. 그리스 형이상학을 그리스도교적 실천의 영역에서 유의미하게 활용한 것이다.이와 관련한 그의 메시지들이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보편화하고 이론화하는 데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세계의 철학과 사상계도 그를 인용하며 시간과 영원,
노동 현장에서 밀려나는 인간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은 생계 수단이나 경제 활동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과 창조 질서에 깊이 연결된 행위다.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공동 창조 행위며,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인류 역사 안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왜곡되고 훼손되어 왔다. 실제 역사에서 노동은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항상 권력(정치)과 자본(경제)과 기술(과학)이 강제하고, 이용하고, 대체하고 있다.노동은 일반적으로 육체, 감정과 욕망, 지능으로 작동되어 왔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요
가을은 하루하루 깊이와 아름다움을 더해 가며, 너의 영혼은 안녕한가 안부를 물어온다. 점점 짧아져 가는 하루 해가 질 무렵이면, 나는 알라메다의 골목길을 쏘다니다,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곤 한다. 길게 드리운 가을 햇살은 투명하고, 따스하나, 동시에 창백하다. 그리고 금새 사라진다.오늘은 내가 다니는 오크랜드 한인 성당이 창립 41주년을 맞아 야외 미사를 드렸다. 레드우드 나무가 빽빽한 숲속에서 드리는 이 미사에서, 이민 공동체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미국이란 곳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신자들이 느끼고 겪어야 했을, 여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는 지난 20일 화성시 주석로 연구소에서 ‘K-시노달리타스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학술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 총회 최종문서와 시노드 이행 단계 길잡이를 바탕으로, 한국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의 구체적 방향을 모색했다.이날 현재우 박사(평신도사도직연구소), 김남희 교수(가톨릭대학교),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가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한국 교회에 뿌리내릴 방안에 대한 통찰을 발표했다.함께 걷기 성공, '양성과 공동 식별'에 달려 있다첫 발표를
좋은 사람좋은 사람이란 어떤 모습의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많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의 깊은 속내와 생의 이면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또 한 사람이 삶의 모든 자리에서 좋은 사람으로 서 있을 수도 없다. 어떤 한 사람이 좋은 민주 시민이었지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고, 가족 관계 안에서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웃과 타인에게는 냉정하고 박절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말, 태도와 자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그를 판단하고 평가한다.주관적인 판단이
그리스 철학에서 보았듯이, 구체성 너머의 세계에 대한 상상은 그리스도교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헬레니즘의 형이상학적 사유는 역사적 예수가 이데아적 수준으로 고양되는 정서적이고 논리적인 기반으로 작용했다. 일 세기의 일부 그리스도교인은 예수가 원래 신과 같은 존재였는데 육체를 입고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갔으며, 신의 세계에 있으면서 여전히 현실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은 '요한 복음'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형이상학이라는 전문 영역이 그리스도교를 통해 대중화하면서 예수라는 인물에 적용된 사례라
한 해가 기울어 가는 느낌이 드는 시간이 돌아왔다. 아직은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지만, 내가 느끼는 햇살은 이미 새로운 절기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천천히 내가 사는 동네에 저녁 산책을 하다 보면, 풀잎들이 마르는 향기가 달콤하고, 풀벌레들의 노래가 천지를 가득 메운다. 나는 이 풀벌레들의 합창을 좋아하는데, 이 소리는 매우 나직하여, 영광을 드러내는 법이 없고, 그저 아득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참 성실하다. 자기들의 리듬에 충실하게 온밤을 채워 간다.더구나 신기한 건, 집 안으로 들어서면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레오 14세 교황 취임 후 첫 100일은 단순히 그가 보낸 시간이란 차원을 넘어, 그의 지도 방식, 우선순위,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나아가려는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었다. 이 시기 교황의 행보와 발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와 언론의 면밀한 관찰 대상이었다. 그의 재위 초기는 교회의 신뢰 위기, 세속화, 내부 분열이라는 복합적 도전 과제를 안고 시작되었다.바티칸 공식 언론의 평가: ‘연속성’과 ‘회복’교황청 공식 언론인 이탈리아 가톨릭 일간지 (Avvenire)와 바티칸 기관지 는 교황 레오 1
형이상학이라는 말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철학은 대체로 형이상학적이었다.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는 말은 로도스의 안드로니쿠스(Andronicus Rhodius)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재편집할 때 "제일철학"을 ‘자연학(physics) 뒤에(meta)’ 배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편집상의 이유로 배치된 '제일철학"이 점차 ‘자연 현상(physics)의 너머(meta)’를 다루는 분야라는 인식이 생겼고, 그 뒤 ‘형(physics) 이상(meta) 연구’가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어 온 것이다. 자연 현상(phys
극단의 시대에 생각하는 신앙의 매개성폭염과 극한 호우가 교차적으로 반복되는 여름이다. 날씨만 극단적이 아니라 우리 삶도 극단적 상황으로 밀려가는 느낌이다. 타협과 중간이 없다. 경제 상황과 빈부 격차도 극단적이고, 정치도 극단적 대립과 갈등의 양상이다. 사회도 이념 대립과 입장, 시선 차이로 분열을 겪고 있다. 사회적 대화와 조율의 영역에서 중개자 역할을 해야 하는 종교마저도 혐오와 배제의 정서를 유발하는 근본주의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말이 살짝 빗나가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는 매개(중개, 중재)의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이 글은 (www.comngood.co.kr)에 함께 실렸습니다. - 편집자일본군 ‘위안부’를 지우고 모욕하는 이들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맞은 지 80년이 되는 해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점령하면서 여러 폭력과 탄압, 수탈을 자행했지만, 그중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자행한 전시(戰時) 성폭력이라는 중대한 전쟁 범죄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 심각한 인권 침해 범죄였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며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지만, ‘위안부’ 여성들은 전쟁 범죄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한국에서의 무리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와서 며칠을 앓았다. 시차를 핑계로 한 사나흘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맘을 무시하며, 새벽 세 시 반에 공항에 나왔다. 하늘에는 아직 별도 있고 달도 있는 시간, 이 시간을 뒤로하며 인디애나폴리스를 향했다. 이번 학회는 새로운 수도원 운동(New Monasticism)에 관한 연구를 서로 나누는 모임인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한 명, 영국에서 세 명, 그리고 나까지 합쳐서 아홉 명은 미국 각지에서 왔다. 나만 가톨릭 수도 공동체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성공회와 개신교 공동체
지난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다룰 때 잠깐 등장했던 이름이 있다. 알렉산드로스다. 세계의 역사를 다룰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알렉산드로스로 인해 그리스(헬라스)와 그 동쪽의 문화가 섞이고, 고대 팔레스타인에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전파되는 등 유대교 문화의 지형이 바뀌었다. 그 지형 안에서 그리스도교도 탄생했으니, 알렉산드로스의 세계 사상사적 영향이 적지 않다.알렉산드로스의 등장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56년 그리스 북쪽의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다. 필리포스 2세는 군대를 확
얼마 전 사제 서품 기념일이었다.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었지만 벌써 사제로 살아온 시간이 32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선득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의 신앙은 더 성숙했을까? 나의 사제 영성은 더 깊어졌을까? 사제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시절보다 지금의 나는 더 헌신적인 사목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선뜻 긍정적인 답을 말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한다. 슬픈 일이다.세월이 간다고 나이가 든다고 자동으로 성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세월과 나이는 오히려 타성과 관성에 물들게 할 뿐이다. 부단히 애쓰지 않는다면 현상
박문수 씨가 에서 선별해 번역한 레오 14세 교종에 관한 7개 글 가운데 마지막을 싣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교종 직무의 미래를 들여다봅니다. - 편집자(기사 출처 = 2025년 5월 14일)(토마스 리스, 예수회 사제, 고정 칼럼니스트)성령께서는 5월 8일 일리노이 출신이자 페루 시민이기도 한 로버트 프레보스트를 교황으로 선출하심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바티칸 관계자들에게 레오 14세 교황 선출은 지난 콘클라베 이후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르헨티나 예수
어떤 시인의 여름 칠월은, 청포도가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익어 가는 달이어서, 손님이 오시면, 은쟁반에 모시를 놓고 포도를 대접하는 시간이라 했는데, 내게 푸르른 이 칠월은 내가 영적으로 동행하는 자매들의 영혼이 무르익는 달로, 그들이 내는 목소리를 경청하는 달이어서, 더 깊어지고, 더 맑아진 마음을 만나러 오느라 온통 설레는 달이다. 하느님의 영과 지혜가 어디 먼 곳에 있지 아니하고, 어디 높은 곳에도 있지 아니하고, 그저 하루하루 일상을 정성껏 살아 내는 사람들의 기도가 깃든 이야기 속에 있음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다.격조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