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 10년 맞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 10년을 맞았다.

밀양 주민들은 12월 17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 10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밀양 송전탑에 대한 진상 조사와 진실규명은 물론, 전원개발촉진법 폐지와 송주법 개정 등을 위한 새로운 싸움을 결의했다.

밀양 주민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송전탑으로 인한 건강권, 재산권에 미친 피해를 지속적으로 감시, 조사하고 정부의 책임을 물을 것, 에너지 3대 악법 개정, 다른 초고압 송전탑 지역 주민과 연대해 탈핵, 탈송전탑 운동을 벌일 것, 마을 공동체 회복, 자본과 국가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등을 다짐하고, “밀양 주민들은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며, 모든 전모가 드러날 때, 진실과 정의가 주춧돌이 되는 튼튼한 집을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주민들이 그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다짐을 밝히고 있다. ⓒ정현진 기자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은 2005년 12월 5일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들이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첫 시위를 한 것으로 시작됐다.

2000년 8월, 5차 장기전력수급계획에 따른 초고압 송전탑 신규 사업 관련 송, 변전 설비계획 확정으로 시작된 밀양 송전탑 사업은 전원개발촉진법에 근거해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됐으며, 주민 의견 수렴과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2005년에 이르러서야 현장 주민의 0.6퍼센트인 126명을 대상으로 한 주민설명회를 계기로 상황을 파악한 주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싸움을 시작했다.

밀양 송전탑 사업은 주민의 동의, 사업의 타당성과 대안에 대한 검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권, 재산권, 정보접근권과 결정권마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전탑 경과지 5개 마을 주민들은 공권력이 투입돼 2013년 10월 13번째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12번의 공사를 막아 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2012년 1월 이치우 씨, 2013년 12월 유한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2008년부터 현재까지 총 383명이 밀양 송전탑 싸움으로 입건돼, 재판 중이거나 벌금형 등을 받았다.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은 밀양 주민들이 겪은 국가 폭력과 인권 유린, 사망 사고 등은 “단일 국책사업으로는 가장 긴 시간 동안 이뤄진 최대의 저항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서, 특히 100건 이상의 응급 후송사고가 발생했던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은 문명사회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 우리 사회에 제기한 과제로, “밀양 송전탑 사안에 대한 진상조사와 진실 규명, 사죄와 배상, 국책사업 시 당사자의 정보접근권과 결정권 보장, 전력사업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환경영향평가 대상으로 포함, 전원개발촉진법 폐지, 전기요금 체제 개편, 송주법 개정” 등을 꼽고 앞으로의 싸움은 이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지난 10년의 싸움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짚으면서,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은 밀양 주민만이 아니라, 연대한 모든 시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밀양이 받았던 연대의 힘을 다른 고통의 현장에서 다시 되돌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오만방자한 철탑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싸울 것이다”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이남우 씨는 “송전탑 사업은 헌법을 짓밟는 사업이었다”며, “우리 밀양 할매, 할배들은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다. 거짓은 언젠가는 망할 것이고 진실은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송전탑 사업을 밀어붙인 정부와 한전에 대해서는,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서, “빠른 시일 내에 밀양 주민들 앞에 사죄하고, 송전탑으로 인한 피해를 해결할 계획을 세워 점진적으로 실행하라”고 요구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지난 2014년 12월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경남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을 거치는 철탑 161기를 세우는 것으로 다 끝났으며, 2016년 중 송전을 계획 중이다.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 씨는 앞으로 이뤄질 송전에 대해 두려움이 크다면서 “지금 마을에 세워진 송전탑은 오만하고 방자하게 주민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송전탑을 세우는 과정 역시 오만하고 방자했다”고 꼬집으면서, “이제 저 오만방자한 송전탑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저것이 무너져 내리는 날까지 우리는 이 일을 계속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걸어온 10년 간, 우리의 요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살던 대로 살게 해 달라는 우리의 뜻 역시 이뤄지지 않았으며 폭력만이 돌아왔다면서, “그러나 10년을 맞는 우리의 결심은 한층 새롭다. 우리의 손을 잡아 준 이들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며, 다른 고통의 현장에서 똑같이 손을 잡고 10년 이상 싸워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도 사람인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힘들면 독립운동했던 선조들을 생각했죠. 독립운동을 날받아 놓고 했겠습니까.”

상동면 여수마을 김영자 씨는, “정말 힘들 때는 서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생각했다. 잡혀가면 또 다른 사람이 나서 싸웠기에 독립이 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정말 긴 세월이지만, 그래도 전국의 연대하는 시민들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며 연대의 손길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싸움이 이긴 이유는 밀양을 계기로 탈핵운동이 생겨났기 때문”이라면서, “우리의 힘이 탈핵싸움에 조금이라도 보태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손을 잡고 핵발전소를 막기 위한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는 2009년부터 밀양 송전탑 싸움을 봐왔고 함께 했다. 김 신부는 누구라도 끝까지 이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도시빈민을 꿈꿨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의 계기였다. 고통받는 이들이 누구든 그들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지켜주자는 결심”이라며, “생태운동, 탈핵운동까지 참여하게 된 이상 앞으로 10년 더 해 볼 생각”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또 김 신부는,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에 참여한 교회의 연대에 대해서도 의미를 짚었다. 그는 밀양 싸움은 여성들의 감수성이 많이 영향을 미친 여성들의 운동이었고, 수녀님들의 동참이 그 흐름을 더 크게 했다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수도자들의 연대는 무엇보다 큰 힘이고 위로였다. 현장에서 같이 싸우는 것 보다도 그들의 존재 자체, 그들의 기도가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수도자들이 밀양 싸움에 연대를 시작할 당시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을 맡았던 김영미 수녀(천주섭리수녀회)는 밀양 송전탑 싸움은 그 자체로 공동체 운동으로 승화된 운동이면서도, 한국 가톨릭교회 특히 수도자들의 삶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김 수녀는 주민들의 삶, 재산권과 건강권 문제로 시작된 일이 공동체적 운동으로 번졌고, 주민 스스로가 핵발전소 문제가 본질임을 깨달아 생태, 환경 운동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면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운동으로 자리매김하는 연속선상에 있고”  끝까지 연대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녀는 특히 2014년 행정대집행 때 수도자들의 연대와 그에 가해진 폭력을 이야기하면서, “수도자들의 저항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일이었으며, 교회 역사상으로도 커다란 일”이라며, “이는 수도자들이 송전탑 반대를 넘어 주민들과 오래 함께 하면서 우정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밀양 할매, 할배들의 입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고백을 들었으며, 그들을 통해 하느님을 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 “하루아침에 이뤄진 역사가 아니다. 우리 수도자들 역시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들과 시민들이 "밀양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앞으로의 10년을 결의했다. ⓒ정현진 기자

한편, 이번 10주년을 맞이해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는 ‘밀양송전탑 반대투쟁 백서’와 사진집을 펴냈다.

대책위 활동가와 인권활동가 등 17명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약사를 비롯해 에너지 정책과 인권침해, 공동체 파괴 상황 그리고 송전탑 반대 싸움과 관련된 주요 기록물을 650여 쪽에 담았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이 백서에 대해,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 302명에게 바치는 존경과 감사의 인사이며, 앞으로 생겨날 싸움에 대한 길잡이 그리고 수많은 거짓과 폭력을 기록함으로써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밀양 주민들은 오는 12월 26일 모든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이 참여하는 10주년 행사를 밀양시 삼문동 문화체육관에서 치를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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