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시청 앞 시민 분향소 설치 불허…주민들 노숙으로 분향소 지켜
유한숙 씨 유족 “아버지 죽음 왜곡하는 경찰에 분노, 함께 싸울 것”

지난 2일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던 고(故) 유한숙 씨가 6일 새벽 사망했다. 3일간의 장례를 치른 후, 유족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송전탑 경유지 4개 면 주민대표 등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는 8일부터 시민 분향소를 차리기로 결정했다. 현재 시민 분향소는 밀양 영남루 입구 노상에 차려졌다.

애초 장례위원회는 시민 분향소를 밀양시청 앞으로 정했지만, 밀양시는 주민 민원과 교통 혼잡을 이유로 분향소 설치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시청 앞은 물론, 밀양역, 한전 밀양지사 앞 등을 경찰을 동원해 막았다. 마지막으로 영남루 입구에 분향소를 차리는 과정에서 경찰은 천막 설치를 막으며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항의하던 주민 5명이 실신, 부상 등으로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 밀양 영남루 입구 분향소. 8일 낮, 경찰의 침탈이 있었고 간신히 비닐 천막과 깔판을 들여올 수 있었다. 주민들이 분향소 앞에서 노숙을 하며 분향소를 밤낮으로 지키고 있다. ⓒ정현진 기자

주민들은 “애초 시청이나 한전 지사 앞을 허가해줬으면, 민원과 교통 혼잡은 없었을 일이다. 현재도 교통 혼잡은 분향소가 아닌 경찰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반발했다. 현재 영남루 앞 분향소는 철거를 막기 위해 주민 20~30명이 밤샘을 하며 지키고 있으며, 유족 대표가 조문객을 맞고 있다.

유족은 고인이 사망 직전까지 송전탑 건설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에 따라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송전탑 건설 사업이 중단될 때까지 장례를 연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청의 불허 입장으로 충돌이 예상되는 만큼 장례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추모 권리 박탈, 인권침해 등에 대한 긴급구제신청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0일 조사관 2명을 파견해 현장조사에 나섰으며, 결과를 바탕으로 장례위원회와 시청 간 중재에 나섰다. 이에 시청은 분향소 위치를 영남루 앞 다리 아래 주차장으로 정했다가, 다시 2~3일의 기한을 달라고 통보한 상태다. 장례위원회는 49재까지 분향소를 유지할 예정이다.

“고인의 죽음 왜곡하지 말라”
경찰, 유 씨 사망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발표

“나는 28년간 돼지 키우면서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그런데 11월경에 한전 과장 1명과 또 다른 1명이 찾아와 송전선로에서 (집과 축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았다. 철탑이 들어서면 아무 것도 못한다. 살아서 그것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 (고 유한숙 씨가 김준한 신부와 곽빛나 간사에게 전한 말)

유한숙 씨의 유족들은 고인의 죽음은 분명히 송전탑 건설 때문이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송전탑 건설 중단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찰이 고인의 사망 이유를 송전탑 때문이 아닌 ‘복합적인 개인적 사유’라고 발표한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밀양 경찰서는 지난 7일 유한숙 씨의 사망 원인을 발표하면서, “음독 원인에 대해서는 유족의 진술 등을 볼 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음독 현장에 있었던 가족은 ‘고인이 송전탑 때문에 죽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사실은 없다’고 최초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음독 이유로 소주 3병 가량의 음주, 돼지 값 하락과 축사 처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면서, “고인의 사망이 지역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호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 10일, 삼문동 주민들이 주민 대표를 만나러 분향소를 방문했다. 이들은 “왜 외부세력이 개입하는가.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조용한 곳에서 추모하라”며 영업 방해를 이유로 분향소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 ⓒ정현진 기자

유족, 경찰 발표 반박…“아버지 유지 받들어 송전탑 반대 싸움 함께할 것”

이에 대해 8일 반박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던 유한숙 씨의 큰아들은 “경찰이 아버지의 죽음을 송전탑과 관계없다고 발표한 것은 이치우 어르신 때와 달리 공사를 중단할 의사가 없음을 표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물론 유서도 없고, 사전에 송전탑 때문에 죽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송전탑과 관계없다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면서, “주변 정황, 돌아가시기 전 이웃과 나눴던 대화, 무엇보다 유언으로 볼 때, 송전탑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셨고, 죽음을 택한 결정적 이유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유 씨는 경찰이 밝힌 사망 원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소주 3병 가량의 음주를 했다는 것은 당일 마신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건강도 문제없었다. 가정불화, 돼지 값 폭락이나 채무의 경우도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며 “아버지는 초동수사 나온 경찰에게도 ‘765(송전탑) 때문에 살 마음이 없다’고 말했고, 또 직접 대책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청해 김준한 신부 등에게도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경찰은 유족이 경황없는 상황에서 개별적 질문에 답한 것을 짜깁기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분노했고, 유족 차원이 아니라 대책위와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면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 것이다. 송전탑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분향하는 유족. 유한숙 씨의 큰아들은 “내 죄가 큽니다. 진작 내가 나섰더라면……” 하며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현진 기자

유한숙 씨의 죽음이 송전탑과 관계없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이들은 또 있다. 음독 당일 유 씨가 만났던 이웃들이다. 여수마을 한 주민은 “그날 나를 찾아와서 송전탑이 들어오면 더 이상 돼지를 키울 수 없고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죽기 보름 전부터 그 때문에 크게 상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은 송전탑 반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대책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면서 “공직에도 있었던 사람이라, 나라가 하는 일은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막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주민들, “애도하겠다는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다니” 분노
김준한 신부, “삶을 부정당한 이의 마지막 선택…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한편 유한숙 씨의 죽음으로 밀양 주민들은 크게 격앙돼 있는 상태다. 노숙으로 분향소를 지키면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 장재분 씨는 “고인의 소식을 들었을 때,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의 심정은 그분과 똑같다”며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이 죽음을 헛되게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분향소 설치마저 막는 것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경찰이 천막을 파손하며 분향소마저 막고 있다. 이런 악랄한 행정이 어딨나”라면서 “국책사업은 국민을 위한 것인데, 반대하는 주민이 둘이나 죽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재고해야 한다. 제발 민심을 살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8일 분향소 설치를 막는 경찰에 항의하다가 부상을 입은 한옥순 씨는 “우리가 범죄자인가. 사람이 죽어서 애도를 하겠다는데 폭력을 행사한다. 우리 주민 모두가 죽어야 한다는 것인가”라며 “한 발자국도 못 물러선다. 이대로 죽는 한이 있어도 두 어른의 뜻을 따르고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 분향소를 지키는 주민들과 이계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정현진 기자

김준한 신부(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유한숙 씨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분신대책위’를 만들었다. 그 어떤 죽음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지였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유한숙 어르신은 한전 측의 무책임한 통보로 일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분의 집과 축사에 깃든 삶의 역사와 가치를 부정당한 상황에서 마지막 궁지에 몰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정부와 한전이 유한숙 어르신의 일생을 한 번에 판단하고 버렸고, 그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었다.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책위와 유족은 정부와 한전 측에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주민들이 요청한 대안을 검토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일 때까지 유한숙 씨의 장례를 무기한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11일 오후 7시 밀양 영남루 앞에서 첫 번째 추모제를 진행한다. 또 밀양송전탑전국대책위원회는 12일 오전 11시 서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중 추모주간을 선포하며, 이 자리에 시민 분향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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