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엠마오 둘째 날, 115번 현장 찾아 미사 봉헌
"절망과 희망을 함께 체험하는 이 자리가 바로 부활의 자리"

밀양 엠마오 둘째 날,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현장을 찾아 미사를 봉헌했다. 115번 현장은 현재 부북면 127번과 129번,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현장과 함께 최후의 보루로 남은 곳이다.

미사에 앞서 주례를 맡은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장위동 선교본당)는 부활에 또 다시 암흑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나 신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희생제물을 바치는 일,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한 죄악을 멈추라고 하신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 세상은 그 뜻을 밟고 간다. 그 희생의 주범은 국가권력, 우리 안에 있는 맘몬”이라고 역설했다.

나승구 신부는 “우리안의 맘몬을 몰아내야 한다. 그것은 기도로써 평화를 기원하고 세상에 두루 알릴 때 가능하다”면서, “다만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것은 부활 달걀을 품어 안고 썩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정현진 기자

이 미사의 강론은 김인한 신부(부산교구)와 조진선 수녀(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가 맡았다.

“그동안 우리가 쓰는 전기는 ‘내 돈 내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의 피값이었습니다. 내가 고생해서 돈주고 아껴서 사는 것이라고 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 역시 신부로 살면서 고생하고 봉헌 한다며 뻔뻔히 말했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빚 갚느라 허덕이는 게 정상이었습니다. 부활, 생명이란 예수의 피값으로 얻어진 목숨인데 마냥 축하하고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김인한 신부는 “세상의 가치가 판치는 가운데, 생명이 무엇인지 말해야 하는 우리는, 세상의 만물을 겉으로만 그냥 볼 수 없는 이들”이라면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눈을 뜨이고서야 비로소 예수를 알아봤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신부는 “미사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정성이 만나는 장”이라면서, “우리는 또 다른 미사의 현장인 이 삶의 현장에서,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의 눈을 뜨게 해줬던 밀양의 할매, 할배들, 죽어가는 어린 영혼들을 보며 더 깊이 눈뜨고 부활의 현장을 마주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엠마오의 길에서 누구를 찾고 만나러 길을 떠난 것일까요?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조진선 수녀는 이번 엠마오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또 슬펐다고 고백하면서, 이 길을 함께 걸으며 모두 예수님을 만났기를 빈다고 말했다.

조 수녀는, 세월호 참사로 힘든 시기, 엠마오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세월호, 강정, 밀양, 삼척, 콜트콜텍, 쌍차의 문제는 모두 같은 본질과 얼굴을 지녔다.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조진선 수녀는 가난한 과부가 주눅들어 내는 작은 정성을 알아봐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모두의 뒷모습에서 봤다면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연민을 느끼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 수녀는 이 세상은 돌봄을 위한 여성성이 훨씬 더 필요한 곳이라고 말하면서, 교회 역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세족례와 같은 전례 예식보다 삶의 자리에서 가난한 이들, 그중에서 가장 버림 받은 이들의 발을 닦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밀양 엠마오’에 참여한 유지영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는 “그동안 내 마음이 꺼져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화조차 내지 못하는 우리의 무력함이 아리고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힘을 내고 타오르는 듯한 감동을 얻었다”고 전했다.

유 수녀는 밀양의 어머니들을 만나면서 새삼 우리 신앙 선조들이 참자유의 길을 갔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바른 것이 무엇인지, 옳은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부족한 삶이지만 생명을 전하는 사도가 되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루카 24,36)

1박 2일의 여정은 이날 미사로 끝을 맺었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무거운 마음으로 엠마오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부활에 대한 믿음 그 자체가 희망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모두가 아프지만, 그 조차도 함께 겪는다면, 상상치 못한 희망과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얻었노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평화를 구하라’. 밀양 엠마오의 또 다른 주제였다. 밀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눈 이야기 속에서 이들이 구한 평화를 읽는다. 

▲ 둘째날 아침 기도. "부활하신 주님을 뵙기 위해 기쁨으로 달음질치던 제자들처럼, 저희도 이웃과 함께 아침의 언덕을 달려갑니다. 죄의 어둠을 절절히 뉘우치며 눈물 흘리는 저희의 가슴속에 눈부신 태양으로 떠오르십시오." 아멘. ⓒ정현진 기자

밀양 엠마오 참가자들이 남긴 이야기

- 밀양 현장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머리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현장을 찾음으로써 공감하는 기회가 됐다. 앞으로의 삶을 현장에서 힘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다. 나에게는 ‘결심’의 시간이었다.

- 엠마오를 떠나면서 예수님을 만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또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났다.

-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교회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희망이다.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내가 만난 예수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통받는 예수를 위해 야전병원과 같은 교회의 모습은 나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 이번 부활은 너무 큰 슬픔으로 맞았다. 처음에는 주님의 뜻을 모르고 이 자리에 왔지만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간다. 이 사건에서 하느님의 뜻을 본 것 같다. 엠마오로 가는 길의 제자들처럼 마음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궤뚫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신앙인은 현실 논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로 움직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과연 나는 사람, 그리스도인, 수도자로 본분을 다하며 이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다시 처음의 고민을 안고 돌아간다.

- 어제 밀양 할매가 “죽음을 넘어섰다”고 하는 말에 순교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큰 선물이었습니다. 악의 세력을 봤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선함으로 악함을 마주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엠마오가 이벤트가 아닌 삶, 하나의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

- 밀양에 처음 왔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할매가 우리에게 절을 할 때, 하느님의 모습을 봤다. 약자들이 소외되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꽃을 심으며 움막을 지키는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 묵상했다. 우리의 여정 안에서 서로 희망이 되어주고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 같다.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기도하는 삶, 연대의 힘을 희망하는 여정이었다.

- 이 자체가 부활이다. 꾸며진 잔치가 아닌 삶에서 함께 아픔을 느끼고 사는 이들이 나누는 바로 그 자리가 부활이 아닐까. 절망과 함께 희망을 체험하고 기쁨을 찾는 것이 바로 부활이다.

- 밀양 할매, 할배들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느꼈고, 함께 동행한 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부끄러움을 보았다. 그래서 감사드린다.

- 이것이 의미가 있을까, 힘이 될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함께 한다는 것의 힘을 실감한다. 작은 힘이라도 함께 모이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 부활의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이 체험으로 일상 안에서 부활을 살아갈 것이다.

- 지금 우리는 돌아가지만, 여기서 이뤄진 순례, 기도, 나눔 안에서 예수님을 두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함께 있는 분을 두고 간다는 든든함이 있다. 어떠한 악도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빛과 힘을 누를 수 없다는 수도회 창립자 신부님의 말씀을 이곳에서 확신한다. 이것이 나의 부활 체험이며, 악이 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며 진리다. 꺼지지 않는 희망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 당신들의 삶과 생명, 희망을 걸고 싸우는 할매들을 만났다. 함께 울고 기도하고 나누고 미안해하는 우리의 모습,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오는 차안에서는 절망적과 분노가 가득했지만, 돌아가는 이 길에는 고통가운데서 만난 예수님이 힘을 주셨다는 것을 느낀다.

- 인간성을 말살하는 이 세상의 모습, 악이 점점 번식해가는 모습 앞에 겁나고 두렵다. 성령을 이긴 악령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예수의 손을 다시 잡아야 할 때다. 인간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예수의 손을 잡고 나가는 것 밖에는 살 길이 없음을 깨닫는다.

- 예수님은 매 순간 십자가에 매달리고 또 부활하신다. 부활의 기쁨을 순간 순간 느끼면서도 또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게 된다. 죽어가는 할매들을 보면서, 똑같이 죽어가는 예수를 살려야 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내가 그들을 살려야 하고 부활하도록 해야 한다.

- 이 자리가 감사하지만, 우리가 돌아가면 밀양은 다시 경찰과 한전의 세상이 될 것이다. 모쪼록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연대하러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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