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송전탑 건설에 맞선 밀양 평밭마을 주민 이남우]

어머니의 젖가슴을 닮았다는 화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병치료를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 유독 많은 이 평화로운 마을이 765kv 초고압 송전탑 싸움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그리고 그 싸움의 중심에는 이남우 씨와 부인 한옥순 씨가 있다.

시작된 지 7년, 본격적으로는 3년째를 맞는 이 싸움에 대해 그들은 한결같이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필 ‘철탑’이 평밭마을을 지나가는 것도, 이 모진 싸움도 하늘의 뜻이요, 끝내 이길 수밖에 없는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이남우 씨는 그동안 경찰서 조사 20번, 손배소 10억 원의 기록을 달성했다. 목숨 걸고 막겠다는 각오로 유서를 품고 싸우기 시작한 것도 그다. 당뇨와 고혈압에 뇌동맥경화 재발 위험까지 있어 의사는 “데모하면 죽는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그는 “더 살면 뭐 할긴데…. 혼자만 집에 편히 앉아 있을 양심, 내는 없다”라며 현장에서 버틴다.

▲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이남우 씨. ©정현진 기자

거제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살아가던 중, 뇌동맥경화라는 병마를 만나 평밭마을로 들어왔다. 살기 위해서였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땅 한 평 물려받지 못한 것이 한이라 자식들 몫으로 밭과 집을 마련하고 남은여생은 주변 사람들을 살피면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덜컥 마을 앞으로 초고압 송전탑이 지나간다고 했다.

하늘이 주신 삶의 터전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송전탑 건설은 그 어디에도 안 돼! 핵발전소 건설도 막아야

청천벽력이었다. 그때부터 외롭고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맨 앞에 나서지 못했다. 다른 주민들과 함께 움직일 뿐이었는데, 점점 상황이 그를 앞으로 밀어냈고 충실히 자기 몫을 감당했다.

“처음 공사를 막자고 할 때는, 개인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지. 그런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공부도 하고, 무엇보다 이미 송전탑이 들어선 당진이나 아산을 가보니, 이건 목숨 걸고 막아야 할 일이다 싶더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진데, 이 밀양 땅 지키고 후손들한테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 뿐인 기라”

이남우 씨는 하루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송전탑 반대에 본능적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밀양 땅에는 안 된다”는 생각은 “이 땅 그 어디에도 안 된다”는 호소로, 또 “송전탑 짓게 만드는 핵발전소는 안 된다”는 확신으로 번져갔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막으려는 민심을 정부나 한전에서 헤아려야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 아이가. 이건 너무 무지몽매한 시도인거라. 우리한테 정부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초전도 지하매립 방식이 돈이 많이 들면, 몇 년 후에 시도하는 것이 땅을 지키고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방법일 텐데…. 고작 한다는 게 지들 이익에만 집작해가 국가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장기적이고 사람중심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 희망버스가 밀양에 도착하던 날, 평밭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남우 씨. ©정현진 기자

마을공동체 깨트리는 정부와 한전 ... 이웃 간의 갈등이 큰 고통

이 초로의 노인에게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따로 있었다. 한전 측에서 마을 사람들 간에 싸움을 붙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지난 시간 마을별 대책위원장이나 이장을 맡았던 사람들은 물론, 반대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을 수없이 돌아서게 했다. 보상과 일련의 대가를 앞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임수와 거짓으로 주민들을 상대하는 한전과 정부가 말할 수 없이 원망스럽다.

“수백, 수십 년 이어온 마을 사람들의 정서, 이웃 간의 정을 깨트리고 있다. 너무나 분통이 터져서 차라리 송전탑을 세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한전이랑 싸우는 건 차라리 목숨 걸고 하니 쉽다. 그런데 이웃 간에 우찌 죽이네 살리네 하겄노…. 설득하고 호소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남우 씨는 “결국 거짓말로 주민을 속여서 송전탑을 세워놓고, 그 주변 사람들이 못살고 나가거나 죽기를 바라는 거겠지만, 우린 그 수법 다 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을 하면서 이미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을 돌아봤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꼭 가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권했다. 효과는 컸다. 무조건 “안 좋으니 반대 한다”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나쁜지, 생생한 체험이 되었고 싸움이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지금 생활도 건강도 망가져서 하늘만 원망하고 있다. 우리를 보고 신신당부하더라. 송전탑 세우고 나면 그만이라고, 꼭 막아야 한다고. 예산의 한 마을은 송전탑에서 500m 떨어진 100가구 남짓한 마을이었는데, 지난 6년 동안 14명이 병으로 죽었다고 하더라. 분명히 송전탑 탓이라 짐작은 하면서도 분명한 증거가 없으니 어쩔 도리도 없고. 농사를 지어도 벌이나 나비가 없으니 꽃이 피어도 열매를 못 맺고, 키우는 돼지들도 죽어나간단다. 명절 때 자식들도 제대로 못 찾아온다 안카나.”

내 재산 다 가져가고, 마지막 남은 목숨도 가져가라

모든 것을 다 걸었다.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모았던 재산에도 미련을 버렸다. 저 징글징글한 ‘철탑’만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0억 손배소를 당하고 온 집에 압류딱지가 붙었을 때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 가져가는 순간, 이 부당한 일의 증거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리 나서도 공사를 계속 한다면 결정적인 순간, 최후로 남은 몸을 던지겠다고 아내와 같이 유서를 썼다.

죽을 만큼 외로웠고, 건강도 악화되고, 연금의 80%는 활동비로 들어가는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도 즐거움은 있다고 이남우 씨는 고백한다. 바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겁날 것도 없고, 아까울 것도 없다. 송전탑만 막으면 우리 인생이 그리 헛되지 않을 수 있으니…. 이제 이 일이 업이고 즐거움이다. 요즘은 도와주는 이들이 많아져서 무엇보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을 해주고 있으니까.”

▲ 이남우, 한옥순 두 부부가 걸어놓은 현수막. ©정현진 기자

새롭게 복원되는 마을 공동체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으로 시작된 세상의 평화

이남우 씨는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뿐만 아니라 반대운동에 동참하는 평밭마을 100여명의 주민과 다른 마을 주민들이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더불어 살기 시작해서다.

본래 밀양은 타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게는 조금 배타적인 지역이다. 귀촌, 귀농한 이들이 많은 평밭마을도 그랬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고 관계도 수평적이기 보다 수직적이었는데, 송전탑 반대 운동으로 전혀 다른 마을이 됐다.

이남우 씨는 “스스로 모인 이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진 하나가 됐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다 보니, 서로 돕고 아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옆 마을 사람들도 만나서 같이 놀고 밥해먹고. 이 일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다른 마을 주민이나 가르멜수녀원 수녀님들을 어찌 만났겠나”면서 “그런 면을 생각하면 한전이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새삼 세상이 훨씬 밝고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스로 희망버스를 타고 와서 생명의 나무를 심는 이들을 보면서, 물질과 권력에 눈먼 사람들보다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남우 씨에게 밀양의 송전탑을 막는 일은 사람의 도리요, 세상의 평화를 구하는 일이 됐다. 그는 송전탑과 연결된 핵발전소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나라에 원전 수출계약을 맺었다고 좋아하더라. 그건 방사능을 수출한다는 거 아이가. 그건 참말로 비인간적인 처사다. 우리가 다 지구의 주인인데, 우째 방사능을 팔아먹는 그런 일이 있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남우 씨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남을 위한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아마도 송전탑을 막아내면서 가장 고된 것이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남을 위해 살면 결국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그 중심에는 남과 전체를 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면서 자녀들에게 늘 가르쳤다는 한마디를 당부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남을 기쁘게 하는 법을 배워라”

▲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주민 증언대회에서 이남우 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