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 주변으로 지나가는 3개의 송전선로, 극심한 소음과 전자파 초래
주민과 수도원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원안'대로 추진해달라

밀양 송전탑 건설로 밀양 가르멜 수녀원도 위기에 처했다. 이 수녀원은 2년 전 부산에서 밀양으로 이전했고, 막 자리를 잡아갈 즈음 수녀원 주변으로 3개의 송전선로가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봉쇄수도원에서 살아가는 수녀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생활 스트레스는 둘째 치고 기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정도로 미사와 기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동체에 송전선로의 극심한 소음은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다. 초고압 송전선로의 소음은 통제할 수도 없고 수녀원 근처 지형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서 소리가 안으로 메아리를 치기 때문이다.

▲ 수녀원 현관에서 보이는 앞산 양쪽으로 송전선로가 지나간다.

송전선이 마을과 수녀원 사이를 가로질러 가 

현재 계획에서 선로의 한 줄기는 700m 거리를 둔 마을과 수녀원 사이를 정확히 2등분하며 지나간다. 마을쪽으로도 수녀원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구도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측이 찾아와 수녀원에 혜택을 주겠다며 마을쪽으로 옮겨진 설계도를 내밀었지만 수녀원측은 단호히 거절했다.

“마을을 죽이고 우리만 살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을과 우리는 똑같습니다. 주민들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고 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요구하는 것은 ‘원안대로 가는 것’입니다”

마리안나 수녀(전 원장)와 벨라뎃다 수녀(현 원장)는 2년 전 부산에서 이전해온 후에야 이장으로부터 한전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듣자마자 수녀원으로 지나가는 송전선로 경로를 살폈다.

21명이 살고 있는 수녀원이지만 봉쇄수도원의 특성상 모든 생활기반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규모는 대수도원급이다. 사제관, 인근 밭, 사택 등이 선로로부터 350m 안팎으로 모두 영향을 받았다. 제병을 생산해 부산교구에 보급하는 이 수녀원은 22,900볼트의 전력을 사용하는 기계를 쓰고 있어서 당장 생활권 침해와 생계 유지도 문제였다.

할수 있는대로 국민권익위원회와 밀양시에 탄원서를 내고 그때부터 기도에 매달렸다.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부산에서부터 수녀원을 따라 온 아녜스 선생이 중간에서 협조자 역할을 하고 있다.

수녀원 측은 송전탑 설계의 원래 안은 직선코스로 경북과 경남을 걸쳐가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행정상의 절차로 북경남을 빙 둘러 밀양지역에 밀집되는 형태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현재 상황에서 대안은 보다 민가가 적고, 철탑 수도 줄어들 수 있는 원안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상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원안을 회복한다면 밀양의 문제도 다소 해결될 수 있고, 한전측의 비용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전측과 주민사이의 갈등을 지켜본 아녜스 선생은 “한전측은 여지가 없다. 협상을 하자면서도 막상 협상자리에 나오면 선 공사, 후 보상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것은 곧 계획을 바꿀 수도 보상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수녀원 정문에 붙어있는 스티커. 밖으로 나오지 못하지만 수녀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절실한 것은 기도다.

수녀원측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밀양을 살리고 또 나라를 살리는 길일 것입니다. 행정적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이라도 무리수를 두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꼭 도와주십시오”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이 문제에 함께 하고 있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송전탑 문제는 한전만의 절대적 이득을 위한 사업이라는 것에 있다. 수도권을 위한 전력 송전을 하는데, 송전선로가 관통하는 지역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서로 똑같이 이득을 보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전적으로 부당하다”라고 꼬집으면서, “한전은 싼 전기를 끊임없이 공급하고자 하면서 그 때문에 누군가가 손해본다는 것을 모른다. 그것은 재산권, 건강권을 침해당하는 이들의 고통으로 매개된 전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송전탑 문제는 앞으로 핵발전소와 함께 문제제기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부산교구는 부산과 울산지역의 환경단체와 결합해 함께 싸울 것이며, 지금으로서는 주민들이 끊임없이 고소고발 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제들이 주민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전했다.

밀양의 송전탑 건설은 결코 밀양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며, 송전탑 개수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원자력, 전체적인 전력 소비에 대한 문제이며, 도시의 전력 소비를 감당해야 하는 주변 지역의 소외문제, 국책사업의 진행 방식 문제, 나아가 생명의 문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성찰이 있기 전에는 또 다른 송전탑을 끊임없이 지으며, 다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위에 살아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옳은 일이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현재 밀양 가르멜 수녀원과 주민들 사이에는 든든한 협조자 역할을 하고 있는 최 아녜스씨가 있다. 수녀원이 밀양으로 이전할 때 함께 따라올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는  송전탑 건설 계획을 알고 수녀원에서 이사를 만류했을 때도 끝내 마을 어귀에 집을 지었다. 요즘 주민들에게 아녜스씨는 그야말로 '천사'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협조를 구하고 주민들 곁을 지킨다. 현장에 오가면서 사진이 찍혀 벌써 고소고발을 4번이나 당했지만, 그는 옳은 일이기에 하나도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그동안 한전과 주민들의 싸움을 지켜본 소회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보내왔다.

부산에서 이곳 밀양으로 온 지 2년 6개월……. 2009년 5월, "○○님, 765,000 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니까 우리 수녀원 근방으로 이사 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어느 수녀님이 내게 알려 왔을 때 "수녀님들이 사시는데 제가 왜 못살겠습니까?"라고 말했던 일이 지금 새삼스럽다.

수녀원 성당과 집만 오가던 나의 평범한 일상이, 거대한 한전과 정부 앞에 생존권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힘없는 5개면 주민들, 그리고 12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봉쇄 수녀원을 존속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는 수녀님들, 목숨을 던져 사찰을 지키고자 애쓰시는 태고종 스님들과 함께한 투쟁의 시간으로 바뀌면서 옆도 뒤도 돌아 볼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급박하게 흘러 왔기 때문일 것이다.

평균 100m 이상 최고 높이 145m의 765,000 볼트의 초고압 철탑이 무려 69개나 휘감아 가는 밀양은, 철탑이 세워지면 그 천혜의 자연 경관을 송두리째 잃게 되며 죽음의 도시가 된다. 이 위기 앞에 선 고령의 주민들 (96세 노인을 위시해 대부분 70~80세)은 한전의 송전탑 건설 공사자들과 대치하다가 100여명이 고소를 당해 경찰과 법원으로 불려 다니고 또 다쳐서 병원으로 오가는 일이 그만 일상이 되어 버렸다.

가만히 계셔도 아픈 노인들이 추운 겨울에 텐트에서 밤을 지새우며 24시간 한전과 대치하고 있다. 더욱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실은 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외롭게 싸우는 것도 모자라 개처럼 질질 끌려 패대기쳐지기 일쑤라는 것, 또 심지어 비구니 스님에게 온갖 상스러운 욕설을 해대며 덩치 좋은 세 명의 남자들이 스님의 다리를 180도로 꺾어 올려 손으로 스님의 국부를 할퀴고 주먹으로 가격하는 기막힌 상황인데도 언론에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네 번째 고소를 당해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를 감사히 맞이할 수 있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내 영혼의 홀가분함과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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