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현장 미사 봉헌 “통곡에 응답하기 위해 기꺼이 외부세력 되겠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을 방문한 수도자들 ⓒ정현진 기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나승구 신부)이 7일 송전탑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밀양 금곡리 헬기장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했다.

오랜 싸움에 지친 밀양 주민들을 위로하고 공사 강행과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기 위해 밀양을 방문한 사제단은 오후 2시경 공사 자재를 쌓아 둔 헬기장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한 후, 평리, 바드리를 방문해 주민들의 상황을 살폈다.

이날 미사에는 서울, 인천, 광주, 부산 등 10여 개 교구와 예수회,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등 4개 수도회 40여 명의 사제가 참여했으며, 수도자 40여 명, 주민과 연대 시민 50여 명도 함께했다.

그러나 1시 30분 쯤 예정이었던 미사는 수시로 자재를 나르는 헬기 소음으로 30여 분 지체됐고, 중간 중간 소음으로 인해 중단되기도 했다. 사제단은 한전과 경찰 측에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헬기 운행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사에 앞서 밀양 현장을 지켜온 김준한 신부(부산교구,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참가자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김 신부는 “가장 힘든 것은 거짓말이 횡행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주민들과 1시간, 10분 전에 한 약속도 어기면서 막무가내로 주민들을 밀어 붙이고 있다”면서 “비가 내리는데 단식하는 주민은 비닐 위에 방치해두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마저 져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신부는 “우리가 경찰에 요구하는 것은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다.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경찰이 중립을 지킨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경찰이 오히려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밀양 주민들은 너무 많이 속아왔다. 신뢰와 진실이 사라졌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예의를 잃지 말자”면서 “경찰, 언론들은 더 이상 밀양 주민들을 모독하지 말라. 그것이 인간일 수 있는 마지막 한계점”이라고 말했다.

이강서 신부(서울대교구)는 최근 언론이 밀양의 ‘외부 세력’ 운운하며 왜곡보도를 하는 것에 일침을 가했다. 이 신부는 “외부세력은 없다. 우리는 같은 운명 공동체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며 “만일 타지에 사는 밀양 주민의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온다면 이들도 불순세력이라고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 신부는 “밀양 주민들은 ‘강도를 만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착한 사마리아인’은 외부세력”이라면서 “이곳에 있는 사제, 수도자,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이가 외부세력이며, 자랑스러운 외부 세력”이라고 말했다. 또 “예수가 외부세력의 원조”라며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분 때문에 우리는 외부세력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동훈 신부(인천교구)도 “고통에는 색깔, 좌우, 이념이 없다.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이며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곳에 달려온 이유”라며 “통곡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 외부세력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외부세력일 것”이라고 말했다.

▲ 미사는 수시로 자재를 나르는 헬기 소음으로 30여 분 지체됐고, 중간 중간 소음으로 인해 중단되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 ⓒ정현진 기자

미사를 시작하며 나승구 신부는 “밀양 주민들의 인생은 우리에게 모두 내어준 삶이며, 농촌은 대도시에 모든 것을 내어주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게 더 무엇을 바라고 내어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세상 모든 할매들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 자신의 뿌리를 상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모든 분들에게 간절히 청한다. 사람의 길을 가자”라고 호소했다.

이날 미사에 참여한 권 카타리나 수녀는 “수녀님들이 바로 이곳 현장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들었다.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함께 미사를 드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당당하자고 결심하며 달려왔다”고 말했다.

권 수녀는 밀양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 신앙의 이름으로 오히려 이곳을 외면하는 이들이 너무도 안타깝다면서, 밀양의 현실에 대해 왜곡하고 오도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그는 “이곳에 오도록 만드는 힘은 예수와 신앙에서 출발한다. 예수를 어떻게 알아듣는가의 문제다. 나에게 이것은 신앙 고백”이라면서 “복음에서는 우리에게 ‘가라’,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고 이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와 보지도 않은 채 판단하고 비판한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잘못은 단 하나, 라자로를 모른 척한 것, 바로 무관심이었다”고 말했다.

▲ 7일 송전탑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밀양 금곡리 헬기장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정현진 기자

▲ 7일 송전탑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밀양 금곡리 헬기장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정현진 기자

한편 미사 후 사제단과 미사 참가자들이 방문한 평리와 바드리마을에서는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이어졌고, 사제단은 이에 항의하며 연좌에 나섰다.

바드리마을은 이웃한 동화전마을 주민들이 지원하고 있다. 89번 현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공사 현장으로 인부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10여 명도 되지 않는 주민들 앞을 매일 200여 명의 경찰들이 막아서고 있다. 이날은 경찰과 주민이 서로 한계선을 합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일방적으로 앉아 있는 주민들을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주민들과 시민, 사제들에 대해 채증하고 단순 항의에도 체포하겠다는 위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행위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경찰은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라거나 “모른다”고 답변했다.

사제단은 8일 오전 여수마을과 평밭마을 현장을 방문하고 미사를 봉헌한다. 앞으로도 밀양에는 각 교구 사제들과 수도회를 중심으로 연대 방문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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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습니다>

보도한 내용 중 “고통에는 색깔, 좌우, 이념이 없다.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이며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곳에 달려온 이유다. 통곡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 외부세력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외부세력일 것이다”라는 발언은 나승구 신부가 아닌 장동훈 신부의 발언으로 확인되어,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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