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10]

이번 칼럼은 도통 쓰기가 힘들었다. 내 내면에서 우러나는 칼럼 내용은 온통 회한과 절망, 슬픔뿐이었는데, 그조차도 기력이 딸려서 쓸 수도 없었다.

고백하면 메리는 쉬운 아이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태어나서 돌까지는 상위 0.1프로에 드는 신이 내린 선물 같은 아이였다. 2개월여부터 밤잠을 7시간씩 깨지 않고 내리 잤고, 낮잠도 서너 시간씩 절대 중간에 깨는 법 없이 두 번씩 꼭 잤고(엄마들 카페에 들어가 애가 배고플 것 같아 억지로 깨워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상담을 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혼구녕을 내주고 싶다), 아파서 병원에 간 적도 없었고(7개월여 수족구병 증상이 나타났지만 자연치유되었다는 사실을 돌 지나서야 우연히 알게 되기도 했다), 이유식은 무엇이든 맛있게 다른 아가들보다 두세 배를 먹어치웠으며, 젖은 돌 지나고 3일째 되던 날 자기 스스로 강단 있게 끊었던 편안하고 건강하며 스마트한 아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내가 직장에 복귀하면서 어린이집에 가게 된 15개월 이후엔 정반대로 펼쳐지게 된다.

밤마다 자다 깨서 울고, 두 돌도 전에 낮잠을 거부하고, 병원엔 VVIP 고객이 되어 3일에 한 번씩 출근하였으며, 그때마다 아이는 점점 식욕을 잃어갔다. 어린이집 수첩엔 아이가 오늘도 잘 놀았다고 하지만, 나는 물론 알 수 있었다. 메리가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메리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같이 아파하고 공감해주었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며,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복직 당시 나는 이미 욜라를 임신하고 있던 상태였기에 출산까지만은 직장을 다녀야 하는 심리적인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욜라와 메리 ⓒ김혜율
하지만 메리는 두 번째로 옮긴 어린이집에서도 여전히 힘겨워했고, 어린이집 6개월차 수첩에 ‘적응이 필요하다’는 선생님 의견을 보는 순간 무던히 적응하는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 메리도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엔 울지 않고 어린이집 문으로 들어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꾸역꾸역 버텨왔던 나도 휘청거렸다. 그리고 어린이집 7개월차인가. 메리가 어린이집에 가서 말없이 구석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나는 꺼이꺼이 울고야 말았다.

‘욜라만 낳으면 당장에 너를 데려오리. 네 상처를 치유해 주리’ 하면서 정말로 나는 1개월 산후조리 후 메리를 8개월 만에 어린이집에서 빼내 와서, 그때부턴 산후조리고 뭐고, 욜라의 울음 게이지 3(듣기 거슬리긴 하지만 숨넘어갈 정도는 아닌) 정도는 배경으로 틀어놓고 오로지 메리에게 올인했다.

그 당시 내 정신 할당도는 메리에게 80, 욜라에게 15, 살림 5 정도였다. 무엇보다 메리에게 엄마의 강하고 지속적이고 확고한 사랑이 절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욜라에겐 미안하지만 메리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배려해 자주 안아주지도 않고 계속 눕혀만 놓은 탓에 욜라의 뒤통수는 5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납작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부랴부랴 고가의 특허출원 아기머리교정베개라는 걸 사서 눕혀 보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지금 욜라의 뒤통수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지난 일 년, 메리의 심리적인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는 것이 느껴졌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병원에 가니 딱 일 년만이라고 그랬으니……) 얼굴이 많이 밝아졌고, 지난 겨울엔 내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 달라 졸라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육아에 해피엔딩이란 것이 없는지 내게는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이다. 직장에서의 승진 기회를 밥 말아먹고, 배 째라는 식으로 육아휴직을 총 3년 3개월을 내놓고 집에서 머리 산발로 지내며 내 혼과 육체의 거의 대부분을 이 어린것들에게 쏟아붓고 있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배은망덕을 일삼는다. 어린이집 생활 이후 아이의 성격마저 바뀐 건지 원래 내면에 있던 기질이 극한으로 드러난 건지, 메리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까다로운 아이가 돼 버린 탓이 크다.

올해부터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부터 메리의 까다로움과 예민함은 날이 갈수록 극에 달하고 있다. 욜라에게 갖은 수법의 폭행을 일삼고, 엄마아빠의 말을 A부터 Z까지 그 어느 것도 듣는 법이 없으며, 거절과 고집의 강도가 어찌나 서슬 시퍼런지 두렵기까지 하다. 뱃고래가 아주 크다고 의사선생님도 인정했던 메리는 정말 보통 성인여성보다 많이 먹는 대식가였는데 지금은 생명 유지 차원에서 새 모이만큼 겨우겨우 먹으며, 전혀 없었던 편식은 갈수록 보란 듯이 심해지고, 인성교육은 다 때려치우라는 듯이 인사성이고 예의범절이고 그 불씨가 꺼져버린 것만 같다.

아니, 시골의 마당 있는 집으로 와서 자연에서 뛰놀며 건강하게 자라라고 해줬더니 이건 뭐 맨날 마당에 앉아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고불고하는 천하의 개망나니가 되고 있다. 유치원 탓일까? 유치원 생활은 크게 문제는 없으며, 줄곧 물어도 유치원은 곧 죽어도 가겠다고 하고, 이렇게 집에서 엉망이면 유치원 다닐 필요가 뭐 있느냐, 다니지 말라고 하면 자지러지듯이 발악하며 유치원 가겠다고 울고 야단이라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자꾸 내 자신을 돌아보고 태교가 문제였나, 내가 이상한 엄마인가, 하고 자책하게 되면서 결국엔 내면의 고통이 가실 날이 없게 되었다. 잠깐 지나가는 행동이거니 하면서 기다린 지 4개월. 아직도 멀었나? 간과 쓸개를 빼놓고 아이에게 맞춰주고 사랑만을 주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보고, 잘못된 것을 혼내는 가운데 깃든 깊은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나긋이 그러나 단호하게 꾸짖어 보기도 4개월. 아직도 멀었나?

메리는 사랑을 퍼주고 퍼주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 밑 빠진 독이거나, 사랑의 독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독을 채울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대책 없이 괴로웠다. 어제는 처음으로 한 시간 내내 짜증부리며 고함치고 반항하는 메리 엉덩이를 때렸다. 우리 집 생활필수품 1호 파리채가 휘어지도록 따끔하게 매를 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 때렸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치원 갔다 온 메리는 오늘도 억지를 쓰며 화를 내고 울고 고함을 지른다. 그 폭력성과 사나움에 눈물이 찔끔 나서 나는 멍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달랠 수 없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가 어제까지의 내 일기였고, 내 글 속에 녹아 있는 좌절과 슬픔이다.

ⓒ김혜율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오늘 한꺼번에 이 상황의 원인과 해결책이 모두 나에게 왔다. 남편이 보게 된 유튜브의 한 동영상이 그 원인을 확신하게 해주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천근아 소아정신과 교수의 말씀으로 기질상 100의 80은 순한 아이고, 10 정도는 까다로운 아이인데, 순한 아이는 만족도를 이미 90을 가지고 태어나서 엄마가 10만 주어도 만족을 하는데, 까다로운 아이는 10을 가지고 있어서 엄마가 90을 해줘야 비로소 100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0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반응이 좋으니 엄마가 더해줘서 90을 해주게 되어 180이 되는 데 반해, 10을 가진 아이는 그 까다로움에 엄마가 힘겨워하다 90이 아닌, 겨우 10 정도를 해주게 되어 토탈 20이 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아이를 ‘엄마가 힘겨워하는 순간’, 이게 중요하다. 내가 바로 그 시점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고, 힘에 겹고 지칠 대로 지쳐서 아이가 받아야 할 사랑을 점점 더 적게 주고 있지 않았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상황은 그대로이고 변하지 않았지만 그 진단이 내게는 매우 명쾌했고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메리가 동네가 떠나가라 울고불고 하는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지금 최선인데. 앞으로 어떻게 더 잘 해줘야 할지…… 그 방법은 모르겠다’ 하는 의문으로 망연자실해 하고 있을 때, 옆집 할머니가 나타나서 메리를 순식간에 순한 양으로 만드는 마법을 보여주신 후 나는 아예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 해결책은 너무도 단순한 것이었다. 이름하여 ‘증조할머니표 육아’! 옆집 할머니는 연세가 올해 82세로 메리에게 할머니라기보다는 증조할머니뻘인데, 육아박사 할애비가 와도 이건 못 달래는 억지일 뿐이다라고 하는 메리의 난동을 순식간에 ‘뚝’ 그치게 만들고 메리 입가에 미소까지 짓게 만들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그동안 욜라가 울 때마다 달려오셔서 울음을 그치게 한 그 방식 그대로(지금까지 수차례 보여줬지만 미처 내가 깨닫지 못했던), 고전적인 비법 두 가지를 공개한다.

비법 1은 ‘호랭이곶감’이다. 아이 달랠 땐 무조건 맛있는 과자봉지나 먹을 것을 꼭 들고 오셔서 그걸 쥐어 주신다. 그냥 오시는 법이 없다. 할머니 손에 들린 호기심을 자극하는 먹을거리에 아이는 일단 반은 정신이 홀린다.

비법 2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아이 만들기’이다. 아이가 울면 달려와서 “왜 울어? 왜 그래? 무엇 때문에?” 이런 말 절대 안 물으신다. 그저 아이를 안고 쓰다듬으며 “아이구, 우리 착한 메리(욜라)가 울어? 에구구, 이리 이쁘고 순하고 착한 우리 아기가 어째서 울까? 으응? 세상에서 젤 예쁜 우리 아가 울지 말어~ 아이고 우리 메리(욜라), 할머니가 사랑해~ 사랑해~” 하신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할머니가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르신다. 이 아이는 그런 착한 아이가 아니라니까요’ 생각하면서 입을 씰룩거리고 있는데, 메리는 내가 착하고 이쁜 아이인가 하는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진정되면서 곧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정말 착하게 변한 눈의 메리를 보면서 그동안 아이에 대한 원망과 실망으로 차 있던 내 마음에도 전혀 다른 감정의 메아리가 울리는 게 아닌가. ‘아, 내 아기,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기가 여기 있었네! 아니, 왜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지?’ 하고 말이다.

달래지지 않는 초고집쟁이 아기를 두신 엄마들께 ‘증조할머니표 육아’ 우는 아이 달래기 비법1과 2를 동시에 쓰기를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비법 2에서 많은 내면의 저항이 있을지라도 내가 증조할머니인양, 증손자를 달래는 양, 증조할머니로 빙의될 수 있다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가야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엄마들이여, 힘을 내자! 당장에 비상 간식과 그대들의 (증조)할머니를 상상하자.

오늘 칼럼을 이렇게 감사와 깨달음으로 맺을 수 있어서 기쁘다. 물론 내 육아여정이 앞으로도 순탄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또 헤쳐 나가며 다시 길을 찾으면 길은 보일 것이다. 없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것일 뿐이니,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아이를 기르는 일은 이토록 한 사람을 단련하는 일인가 싶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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