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

요즘 들어 나의 아침은 더욱 혹독해졌다. 애 키우는 걸 함께하던 육아 동시대인 상당수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재개했거나, 집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치열한 육아현장에서 슬며시 해방감을 맛보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내 주변 SNS에서는 아이가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출근하면서 “엄마 사랑해~ 빠이빠이~ 뽀뽀 쪽” 하는 사진과 증언들을 올리며 엄마의 걱정과 달리 너무나 잘 해내고 있는 효자효녀들에 다들 감사하고 있다는데. 나는 오늘도 세발자전거를 타고 유치원 버스 정류장까지 질주하는 메리가 논두렁에 처박히지 않게 따라붙으며 심장박동수를 최대 게이지 85프로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그 와중에 젖 떼느라 밤새 울고불고하는 욜라를 무리해서 둥개둥개해준 탓에 쑤셔오는 무릎 뼈를 느끼며 ‘아, 나도 글루코사민이든 도가니탕이든 챙겨먹어야 하는 건가’ 하며 조금 슬퍼하였다.

아침 바람은 그래도 차가워 십여 분 쉬지 않고 뛰고 나면 목안의 점막이 메말라 침을 서너 번은 삼켜야 목소리가 나온다.

“후아후, 후으흡, 메리야, 허어억, 앉아라, 후아후아.”

그래놓고 3~4분 일찍 도착한 그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메리 입속에 과일 조각이나 치즈 한 장을 고깃고깃 접어 넣으며 “빨리 삼켜라” “한 입만 더 먹어라” 채근하면서 메리 눈에 못다 지운 눈곱 하나를 고이 떼어주는…… 나는 누구? 코치? 매니저? 영양사? 위생사? 보디가드?

그래 나는 엄마지, 엄마.

ⓒ김혜율

유치원 버스를 보낸 뒤엔 너털너털 자전거만 끌고 올라오는데(약간 넋 나간 표정일거다), 메리 태우고 가는 모습은 못 보고 꼭 빈 자전거 끌고 가는 모습만 본 몇몇 동네 어르신들이 여러 날 동안 ‘(어느 미친) 여자가 아침마다 꼭 같은 시간에 세발자전거를 끌고 휘청거리며 지나가나’ 하고 무척 궁금해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애 유치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하는 나의 해명(대여섯 번 정도 했다)을 듣고서야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느 미친) 이상하고 수상한 여자’에서 ‘아, 이장댁 옆에 이사왔다던 그 집 사람이구나’ 하고 변하는 순간을, 나는 보았다.

며칠 전부터는 영원히 날 보며 짖어댈 것 같던 우리 아래아래 집 개가 내가 지나가도 짖기는커녕 지나가든가 말든가 하며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개무시하는 변화도 있었다. 동네 개한테 드디어 인정받고야 말았다. 기뻐만 하기엔 어쩐지 씁쓰레한 기분을 느끼며 아직도 평화가 내려오지 않은 우리 집 마당을 흙먼지를 일으키며 건너가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욜라가 다양한 모습으로 아침 후반전 선수로 뛸 대기를 하고 있다.

상황 1 : 하의 탈의한 채로 우다다다 뛰어다니고 있다.
이 녀석 아침 똥 누고 기저귀 안 찬다고 도망다니고 있구나, 이젠 꼼짝 마라. 엄마가 왔다. 네 누나 24개월간 너 18개월 이적까지 하루에 대략 다섯 번, 그럼 한 달 평균 백오십 장, 그걸 42개월치 해왔으니 뭐. 움직이는 동체의 몸에 기저귀 찍찍이 정중앙 맞춰서 그것도 양 다리 사이 기저귀 날개까지 순식간에 정돈시킬 수 있는 엄마가 왔노라.

상황 2 : 쌍루가 종횡(눈물이 온 얼굴에 범벅)하여 울고불고 있다.
엄마랑 누나가 아침에 자전거 타고 나가는 걸 보고 따라오고 싶었구나. 그래, 나가자꾸나, 욜라. 바로 신발만 신으면 마당이 아니냐. 한 번만 넘어지면 흙가루로 온 전신이 도포되는, 아직 평탄화가 안 되서 울퉁불퉁 재미진 모험의 나라, 마당이 아니냐. 꽃샘추위가 안 가신 어느 저녁 날, 엄마가 콧노래 부르며 심기 시작한 대파 모종이 한 포트 당 4~5뿌리, 그게 약 50포트, 고로 대파 200뿌리를 다 심는다고 ‘파아일체’가 되어 마무리한 우리 집의 야심작! 하지만 비실비실 다 죽어가고 있는, 텃밭이 있는 마당이 있지 않냐.

상황 3 : 날 보자마자 몸을 날리듯 허벅다리에 누워 내 옷깃을 여며주며 애절해한다.
뭐? 젖 먹고 싶다고? 아니, 아니, 안 된다. 네 누나 12개월간, 너 18개월 이적까지 도합 30개월 엄마는 수유부로 살아왔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였나니. 욜라야, 아름답게 떠나자. (물론 욜라는 울고불고.)

상황 4 : 조용하다.
집 뒤 켠 앵두나무 꽃에 날아드는 벌, 나비, 새들 구경에 한창이로구나. 혹은 마당에 들어온 애옹애옹 애옹개(고양이)를 창문에 코를 박고 구경 중이구나. 그럼 그 사이 엄마는 아침밥을 먹을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 잘 알아. 그러니까 후루룩 삼킬 수 있는 누룽지가 최고더라. (그런데 상황 4는 앵두나무 꽃이 지는 관계로, 내가 저리 가라 워이워이 박대 좀 했다고 애옹개가 부쩍 발길을 줄인 관계로 점점 빈도수가 적어지고 있다.)

젖 없이 어떻게 스스로 잠드는지 모르는 욜라가 오전 내내 잉잉 울다 지쳐 제 누나 유치원 파하기 딱 30분 전에 잠들었다. 30분이라는 자유의 시간에 가슴 벅차하면서 남편이 사다 놓은 주부 9단 소시지를 구워 먹으며 생각에 잠긴다. 난 언제쯤 육아 9단이 되려나. 아침 누룽지타임 5분은 언제 되찾을 수 있는 건가. 올해 내내 아침마다 세발자전거를 끌어야만 하나. 그리고 세발자전거 타이어는 어디서 교체 가능한가? (고속질주에 타이어 마모가 심하다.)

그때 들려오는 “부르르 삡삡~!” 마당 앞에 노란 버스 한 대가 서더니 뿌연 흙먼지 속에서 걸어 나오는 메리의 실루엣. 나는 늘 널 기다리고 있었던 양 뛰어나가지. 예전 잠깐 어린이집 시절에는 항상 네가 이 엄마를 기다렸었잖아. 이젠 엄마가 메리 너를 기다릴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이좋게 같이 뛰어볼까? 오늘 하루 후반전을~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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