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1]

3월부터 김혜율 님의 ‘육아일기’ 연재를 격주 간격으로 시작합니다. ―편집자

ⓒ박홍기
태어난 지 15개월부터 사회생활(어린이집)을 8개월여 하다가 동생 본 덕분으로 다시 집으로 귀환하여 실컷 놀면서 1년 꿇고, 올해부터는 유치원에 다니게 된 첫째 메리워드(이하 애칭 메리)는 다섯 살 여자아이다.

그리고 태어나서 제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주변의 찬사 속에 꼭 배우 송중기 정도 꽃미남으로 자랄 것 같던 카리스마적 눈빛과 오똑한 콧날, 브이라인 턱선을 가지고 있었으나, 백일을 지나면서 급격히 외모퇴보… 자기 ‘아빠화’되어 가고 있는 둘째 이냐시오 로욜라(이하 애칭 욜라)는 세 살 남자아이다. 그는 아직까지는 세상의 쓴맛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한 채 엄마가 가끔 이성을 잃을 때 궁둥짝을 흠씬 두들겨 맞을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집에서 자고 먹고 하는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의 주된 양육자로 집안에서(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엄마로서, 앞으로 메리와 욜라에 대한 이야기 ‘욜라 즐거운(메리~한) 육아일기’를 쓰기로 작정했다. 기자님의 칼럼 기고 제안에 “음, 아, 글쎄요” 이런 품격 있는 어투는 전혀 섞지 않고 마냥 가볍고 발랄한 ‘솔’ 음으로 “오우, 네에~ 콜~” 하고 말았으니까.

당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장기육아휴직(3년차)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내가 돈을, 원고료라는 것을 벌 수 있어서 굉장히 멋지다는 것이었고, 그 돈은 전적으로 애들 과자 값…이 아닌, 예수님께 오롯이 헌납하고야 말리라는 계획을 잡고 좀 설렜다.

그리고 “애를 유달리 힘들게 키우는 것 아니냐”, “애 보는데 엄살이 심하다” 하는 주변의 평을 들으며 ‘나홀로 육아대장정’의 길에 오른 외로움과 고단함을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다행이고 든든하다는 생각과, 우리 아이들의 그 작은 어깨와 부드러운 머리칼이 내 손에 쥐어지는 느낌을, 온갖 말썽과 감탄을 다 자아내는 오늘의 일상을 망각이라는 구멍 속에 흘리지 않고 기록할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삐뽀삐뽀 119소아과>. 부제 ‘우리 아이에 대한 모든 것, 아기가 아프면 엄마는 알아요~’ 같은 사법고시 수험서 두께의 육아 바이블이 있다. 나도 이 책을 선물 받았는데 틈만 나면 바닥에 엎드려 정독으로 삼회독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였나하면, 쌔근쌔근 잠 잘 자는 갓난 메리를 옆에 두고 나는 아이가 이물질을 삼켰을 때의 응급조치편을 펼쳐서 아이를 뒤집어서 양쪽 견갑골 사이를 아주 빠르고 세게 탁탁탁탁 두드리는 처치를 머릿속으로 연습하거나, 그도 안 될 땐 복부압박법, 하임리크 방법이나 턱혀거상법을 가상으로 실시하며 혼자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곤 했다.

아니면 우리 아이가 싼 똥과 삐뽀삐뽀 책에 원색슬라이드 화보로 수록된 다양한 아가들의 똥을 비교분석하며 ‘이건 당근 이유식변이지 피똥이 아닌거야. 암 우리 아기는 정상변!’ 하며 안도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말한다. 이 세상 육아서를 모조리 읽는다고 해도, 전국구 전화번호부 두께의 육아 바이블을 십회독 해봐도 애를 직접 키워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육아의 고통이여, 육아의 달콤함이여. 그렇다. 육아는 실전이다.

왜 내가 종종 차라리 노가다(나를 써준다면)를 뛰고 싶어 할 때가 많은지 미혼의 자유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아이를 품어주던 시절. 흙에서 마구 굴리며 애 키웠던 그 옛날 엄마들은 ‘육아 섬’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요즘 엄마들의 막막함과 불안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긴 요즘 엄마라도 어른 스무 명이 옆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야단인데도 졸리다고 살포시 눈감고 알아서 잠들곤 하는 순둥이 지수 상위 1%대 아기를 둔 내 동생 같은 천하의 복 받은 엄마라면 나의 육아일기에 ‘흥’ 하고 말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이번 육아일기를 통해서 아이들만큼, 딱 고만큼의 어설픈 꼬마엄마인 내가 하루하루 키도, 마음도 쑥쑥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길 바라본다.

내일 우리 가족은 메리가 다니는 유치원 근처로 이사를 간다. 나름 시골이다.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아이가 뛰어놀아 에너지 방전되어 밤에 잠을 일찍 자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아이가 밖에 나가자고 조를 때 굳이 같이 손잡고 나가서 놀아주지 않아도 되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아이가 집안을 장난감과 잡동사니로 엉망으로 만들기 전에 밖에서 어지르라고 마당 있는 집으로.)

자 메리, 욜라! 뛰어놀 준비됐니?
엄마랑 아빠랑 레쯔고~!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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