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

“애 키우는 거 힘들지?”

누가 물으면 그 대목에선 늘 그렇듯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슬픈 표정이 되어 “응, 난 아무래도…… 애 보는 거 체질에 안 맞나봐”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존경하옵고 늘 금과옥조 같은 말씀을 즐겨 하시는 나의 은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애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냐? 체질에 안 맞으면 체질개선을 해!”
‘체질개선? 아아……(T^T) 네.’

그래서! 체질을 좀 바꿔보기 위해 (클로렐라 대신에) 그동안 나의 육아 행적을 더듬어 제법 잘한 것을 찾아 ‘나도 육아가 체질이다’라고 믿게 하는 자신감 상승요법을 쓰기로 했다. 지금 욜라는 ‘혼합 기저귀 육아’ 중이지만 메리 때만 하더라도 ‘올 천 기저귀 육아’를 했던 과거를 공개해볼까?

그것은 강렬한 두 가지 기억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다. 하나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태어난 동생, 우리 집 늦둥이의 기저귀에 대한 기억이다. 베란다 빨랫줄에서 햇볕을 받으며 하얗고 바삭하게 말라가던 천 기저귀의 자태에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그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각인시켜버렸던 것.

또 하나는 대학 시절, 초등학교 3학년짜리 남자 꼬맹이 과외를 했던 시절의 일이다. 아이의 공부를 봐주면서 더불어 전반적 생활습관 클리닉 입주 과외 선생으로 초빙 의뢰할 만큼 나를 반듯한 처자로 봐주신 어머니의 기대와 다르게 과외의 말로는…….

개구쟁이 꼬맹이랑 맨날 쎄쎄쎄만 하고 놀다가 두 달 만에 잘리게 된다. 아무튼 그 꼬마는 늘 나와 쎄쎄쎄를 하면서 팬티도 아니고 반바지도 아닌 요상한 걸 입고 있었는데, 굳이 이름 붙이자면……. 제 할머니가 손수 지으셨다는 한 눈에 보기에도 아주 탐나는 ‘반바지형 비단빤스’라는 것이었다!

수수한 면 팬티가 아닌 그런 호사스런 걸 걸치고 있는 그 꼬맹이와 내내 쎄쎄쎄를 하면서 생각했다. 맨살에 닿는 비단빤스의 그 부드러운 천연의 느낌과 배와 가랑이가 조이지 않도록 오글오글 넉넉하게 마감한 손바느질의 고무줄 밴드 처리야말로 바로 어머니(할머니)의 사랑이다! 하물며 이런 팬티를 입고 자란 꼬맹이는 절대로 삐뚜룸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먼 훗날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울 때, 내 아이에게도 그런 걸 입혀보겠노라고.

메리 천 기저귀 입문 시절, 블랙홀 같은 기저귀 세상에 난 끓는 열정으로 내가 가진 거의 모든 시간을 기저귀 연구에 바쳤고, 다양한 천 기저귀를 사는데 많은 돈을 썼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명품 기저귀까지 위시리스트에 올려두며 비용 절감을 위해 중고나라에 몇 날이고 매복해 있기도 하였다. 그 당시 누군가 나에게 가장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면 주저 없이 말했을 것이다.

“키살럽* 기저귀 아장아장 세트 하나 하고요. 스와들* 팬티형 기저귀 럭셔리 세트요.”

아, 그땐 기저귀 석사 논문도 가능했다. 논문 주제는 ‘기저귀 통풍 및 흡습성과 건조 속도의 상관관계로 본 최적의 기저귀 모델’ 아니면 ‘국내외 천 기저귀 시장의 흐름과 가치 분석’ 혹은 ‘팬티형 기저귀 스냅의 위치와 크기가 사용자의 손목에 미치는 영향’.

그랬다. 메리 데리고 잠깐 외출할 때도 천 기저귀 보따리가 한 짐. 1박 이상 여행시엔 여행용 캐리어에 기저귀만 가득 싣고 떠나야 했고 밤잠 재울 때도 천 기저귀(이건 정말 고수가 아니면 힘든 단계임).

그래서 나는 바람에 펄럭이는 천 기저귀 감상을 하면서 심플하거나 화려하거나 혹은 고풍스러운 천 기저귀를 아이에게 입히고 있다.

애 키우는 체질이란 거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체질에 안 맞는다고 할 법도 없이 그저 각자 취향껏 키우면 되는 것이겠지. 최선을 다하되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욜라까지 기저귀 떼면 그때 그 비단빤스, 내 손으로 해 입히는 게 바람이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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