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

고등학교 시절 내게는 ‘지치지 않는 소녀’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래저래 잠이 모자란 학창시절엔 쉬는 시간에 흔히 ‘전멸’이라고 부르는 잠 대열이 마치 전쟁터에서 폭격 맞은 군부대의 풍경처럼 펼쳐졌는데, 아이들은 다음 수업시간이 될 때까지 책상에 엎드려 코 박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물론 대체로 혈기왕성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논설문이나 설명문 따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억양의 고저 없이 읽는 국어 시간 같은 경우에는 예의 그 ‘전멸’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하지만 난 지치지 않는 소녀답게 쉬는 시간이 되면 수업시간에 가물가물하던 정신은 차라리 맑아졌으며, 전 시간 복습과 다음 시간 예습을 하는 일은 없었지만 늘 깨어 있었다. (그 시간은 주로 앞머리 볼륨을 체크하거나 매점 방문, 오목 연구 등에 할애했다.)

이후 나의 이십대는 체력 폭발기였다. 고시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공부가 잘 안 되는 날이면(거의 그랬다) 밥을 먹고 소화시킬 겸 조금씩 걸었는데, 나중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걸어도 힘이 들지 않고, 세상 끝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힘이 솟아나곤 했다.

내 앞에 언덕이 있으면 언덕을 넘고, 산이 있으면 산도 넘었다! 그러면 새로운 동네가 나타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어디에나 사람 사는 곳이었다. 신림9동에서 출발해서 신림역을 거쳐 보라매공원을 몇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도 종종 힘이 남았고, ‘바쁜 현대인의 피로’는 그냥 박카스 광고 문구인 줄 알았다.

마음만 먹었다면 내가 걸었던 그 지역만큼은 현대판 대동여지도를 그리고도 남았으리라. 또 더 마음먹었다면 슈퍼울트라 마라톤 대회 완주라는 승리의 월계관을 썼거나 땅끝마을에서 판문점까지 국토대장정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 모란꽃 향기 맡는 메리 ⓒ김혜율
하지만 그 후 남편과 자동차 타고 다니는 연애를 하면서 급격히 걷는 일이 줄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애 둘을 낳고 키우면서 분명 내게 존재했던 강철 체력이 전설로만 남게 되는 데에 대략 10년이 걸렸다. 욜라 업고 동네 크게 한 바퀴 돌고 나면 무릎은 욱신욱신, 허리는 끊어질 듯 쑤시고, 숨은 턱밑까지 찼다.

그리고 오늘에 와선 동네 한의원에 와 아픈 데를 체크하시오 하는 질문지에 목, 어깨, 팔꿈치, 손목, 허리, 엉치, 무릎, 발목까지 올 체크를 하고 간호사를 보며 멋쩍어 웃고 있다. 육아와 살림,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만성 뻐근함을 호소하는 인체 주요 8대 관절은 차치하고라도 어깻죽지에 도진 급성 담만이라도 해결하고 싶었다.

이 한의원은 침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똥 싼 욜라의 극심한 발버둥을 제압하며 힘겹게 엉덩이를 씻겨주다가 허리 삐끗한 남편이 먼저 와 보았었고, 앞서 한 동네에 사시는 은사님께서 발목을 심하게 다쳤을 때 침 한번으로 말짱하게 걷게 되었다고 ‘강추!’한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침 맞고 재활치료 이것저것 받는데 총 두 시간이 걸린다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쉴 수 있겠네 싶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원장실에서 머리 벗겨진 중년 아저씨 한 분이 나왔다가 휘 둘러보고 다시 들어간다. 손님이 왜 나가려다 말지 싶었는데, 아차, 남편이 말한 것이 이거였구나. 한의사가 꼭 방앗간 주인같이 생겼다는……. 어쩌면 방앗간도 운영하면서 투잡으로 침도 놔주고 하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래떡을 뽑아내고 달려왔건 참기름을 짜고 왔건 간에 실력으로 승부하는 침술의 세계에 그깟 외모가 무슨 상관이랴 하며 침 맞는 침대에 누웠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한의사는 급성 담을 5분도 안 되어 싹 낫게(?) 만드는 명의 중에 명의였다. 아래에 그 긴박하고 극적이었던 치료 전 과정을 공개한다.

한의사가 침이 가득 든 봉지 하나를 개봉한다. 먼저 가볍게 다리와 손목, 손등 부위에 침을 꽂았다.

“자, 어때요?”
“네? 담 걸린 거요? (아니, 겨우 이 정도로 나을 리가.) 별 느낌이 없는데요. 여전히 아파요.”

한의사는 고개를 끄덕하며 팔과 손등에 침을 서너 개 더 꼽는다.

“이젠 어때요? 한번 아픈 데를 움직여보세요.”
“아까랑 똑같은데요? (움직여보나마나 이 침 맞고 담 풀리면 한의사님이 허준이십니다.)”

한의사는 이번엔 아까 꽂은 침들을 돌돌돌 돌려가며 더 깊게 꽂는다. 차마 볼 수 가 없다.

“자~ 함 봅시다. 지금도 아파요?”
“(좀 미안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니까) 네……. 그래도 아픈데요.”

한의사는 호기 있게 이번엔 침을 종아리부터 발가락까지 대여섯 개를 마구 놓는다.

“이젠 어때요?”
“(아아…… 뭐지? 안 아플 때까지 계속 맞는 건가?) 음, 음, 잘 모르겠어요.”

점점 고슴도치화되어 가고 있는 내 양 팔과 손등, 종아리와 발등, 발가락을 내려다보며 어깨에 내린 담의 고통은 이젠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침을 맞은 부위가 의식이 되서 힘도 줄 수 없고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한의사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침을 내 다리 빈 곳에 서너 개 더 꽂고 이젠 어떠냐는 그 질문을 또 한다.

“(안 되겠다. 그냥 빨리 끝내자.) 아하하, 좀 덜 아픈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의 방앗간집 한의사는 매우 확실한 사람이다. 기어이 침 봉지에 든 마지막 침을 내 두 번째 발가락 옆 부분에 찔러 넣고 있다. 윽, 이건 너무 아프다.

“자아~ 이제는? 어때요?”
“(아아, 저 완치를 기대하는 얼굴. 또 아프다고 하면 새 봉지 뜯을 거야. 엉엉 엄마~ 안 아파야만 해. 제발 안 아파라. 으…… 그냥 나았다고 해버리자.) 어? 이제 안 아파요! 다 나은 것 같은데요? 와! 전보다 근육이 더 부드러워졌어요.”

그러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깨와 목을 마구 돌려 보이는 퍼포먼스를 했다.

“네~ 좋아요. 됐습니다!”

한의사는 거봐란 듯 만족스레 웃으며 손을 탁탁 털고 나가버렸다. 나는 침 수십 방을 온 만신에 꽂고 오도카니 앉아서 원적외선을 쐬며 마음을 추슬렀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재활치료는 생략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안 아프다! 다 나았다!”를 외친 이후로 묵직하게 결리던 어깨근육이 급속도로 호전된 것이다. 한의원을 걸어 나올 땐 정말 보통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원체 만성이던 관절들은 잘 모르겠지만 담은 확실히 뿌리가 뽑힌 느낌이 들었다. 오호, 이쯤 되면 정말 침술 명의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 곁에 수많은 명의가 있다고 해도 그냥 안 아픈 게 제일임을 깨닫는다. 특히 엄마 되는 사람은. 제대로 ‘아플 수도 없는’ 날들이다. 그나저나 체력 저하의 원흉인 운동 부족을 절감하며, 무슨 대책을 세워야하는데…….

저 건너 집 할머니 말마따나 욜라 업고 메리 앞장세워 뻔질나게 동네 마실이라도 댕겨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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