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

ⓒ김혜율
오늘은 바람이 참 이상도 하지. 마치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부는 바람 같아. 알게 모르게 다치고 지친 내 마음에 바람이 불어와 ‘다 괜찮다, 괜찮아. 어른이 돼서, 엄마가 되어서 힘들지? 내가 안다, 다 안다. 넌 아직도 예전에 내가 만났던 어린 아이, 눈물 많고 구름과 별을 자주 쳐다보던 아이인 걸 알지. 난 널 만나러왔어’ 이렇게 말해주는 거 같다.

애들 재우고 난 늦은 저녁, 방 쓸다가 작은 벌레를 발견했다. 안면은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고, 해를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그냥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스러져갈 착한 꼬마벌레 같은데 그렇다고 같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쓰레받기에 담아 바깥에 던지러 나갔다. 나간 김에 현관 밖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우리 식구들 신발 정리한다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데 생각지도 않게 이 바람을 만났다.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물결을 이끌고 해안가까지 온 바람이 조용히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포말과 함께 고요히 모래사장에 녹아들고 마는 그런 순한 바람을 닮았다. 그래, 마치 이건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잖아! 어린 시절 바다 가까이 살았던 나는 단숨에 알아차렸다.

어른이 되서 바다를 떠나 살지만, 어딜 봐도 사람 물결에 자동차들 파도뿐인 도시에서도, 좋은 데 간다고 갔지만 바다랑 멀어 흙이고 나무고 돌멩이뿐인 곳에서도 나는 하나도 목마르지 않았네. 물가가 그립지 않았네. 내 마음속엔 내 것인 양 자리 잡은 ‘나의 바다’가 항상 출렁이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바닷가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 그러하겠지?)

그나저나 우리 집 앞엔 소나무산이 있고, 고구마 순들이 아옹다옹 자라고 있는 이장님 댁 비닐하우스가 있을 뿐인데, 어찌하여 멀리서 파도 밀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까. 비닐하우스의 비닐 옷이 바람에 호드르르 떨리는 소린인가, 뒤뜰에서 베어내 마당에다 부려놓은 대나무 잎이 바람에 우루루루 구르는 소리인가. 나는 잔잔한 바람 한가운데서 오늘과 어제와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마치 휘몰아치는 광풍과도 같았던.

아이들이 계주 선수들 마냥 이어서 아팠다. 먼저 욜라가 오랫동안 잔기침을 하더니 기관지염을 거쳐, 폐렴에 걸려 굵고 깊은 기침을 해댔다. 되도록 자연요법으로 낫게 하고 싶어서 기침 초기부터 도라지배 엑기스부터, 개복숭아 효소, 고함량 유산균에, 프로폴리스까지 먹여보았지만 차도가 있는 것 같다가도 도로 나빠지기만 하였다. 결국엔 병원에서 타온 항생제 3일치를 먹더니 급격히 호전되었는데,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아마도 평소에 면역력 관리를 더 철저히 하는 게 옳은가 보다. 병이 깊숙이 침범하고 나서는 약 없이 자연요법으로는 병마의 기세를 떨어뜨리기에는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그 뒤를 바통 터치해서 이번엔 메리가 편도선염으로 유치원도 결석하고 밤에는 자다 울고, 또 자다 울고, 낮에는 자기 이불 깔고 누워서 약만 받아먹고 어쩐지 계속 춥다고 털바지를 입고 지냈다. 오늘 오전부터는 좀 살아나서 눈에 총기가 총총하고 나를 재촉해서 화산폭발놀이를 무한 반복하기에 이제야 병수발 끝인가 했더니…….

잠깐 여기서, (엄마와 함께하는) 화산폭발놀이란?

배를 타고 화산섬으로 간다(방석을 깔고 앉아 미친 듯 노를 저으며 화산섬인 침대까지 발발걸음으로 이동) → 분화구 가까이 가기 위해 방화복으로 무장(불에 타지 않는 내복바지와 두꺼운 웃옷, 모자 혹은 스카프로 머리 감싸고, 털장갑 착용) → 화산섬을 오르다 화산재에 미끄러짐(놀이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침대에 오르다가 꽥 소리를 지르면서 허둥지둥 오버액션을 하면서 방바닥에 벌렁 나뒹굴며 발을 바둥바둥거림) → 다시 분화구까지 올라 용암이 바다로 흘러가도록 길을 만든다(괭이질 흉내) → 길 다 만들자마자 화산폭발(퍼엉 하는 소리를 내면서 이불―이게 용암―을 침대 아래로 떨어뜨린다) → 그리고 피날레~(‘와, 우리가 해냈어! 만세~’를 외치며 끝)

처음엔 온갖 과장된 몸짓과 애드립으로 한 회, 한 회, 실감나게 연기를 하지만, 열 번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다리가 풀리고, 함박 하품으로 눈물이 줄줄 흐르게 되어 ‘제발 이제 그만~ 다른 거 하자’를 간절히 염원하게 되는, 체력고갈 베스트 3 안에 드는 마의 놀이.

메리와 화산폭발놀이를 한 열두 번쯤 하고 있는데, 낮잠 자던 욜라가 깼다. 그런데 볼이 발그레해서는 내 무릎에 쓰러져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다. 열을 쟀더니 39도 가까이 펄펄 끓는다. (아침부터 몸이 따끈따끈해서 불안했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요~) 그래도 착하게도 아프다고 징징대지도 않고 남 탓도 안 하는 모양으로 참 얌전하다. “물 마실래?” 하면 “응.” “많이 아파?”물어도 “응.” 대답은 맹꽁이 같이 잘도 하면서.

아무튼 그래서 오늘도 병원에 갔다. 시골로 이사 오고 난 뒤 원래 가던 소아과까지는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익~ 그 정도면 160까지 밟아서 우리 엄마, 아빠한테 갈 수 있는 거리네. 바다도 보고 올 수 있고.)

흥,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나도 몸이 성치 않다. 욜라 업어주다 오른쪽 팔꿈치에 엘보우가 와서 물걸레질은 가당찮고 병뚜껑 돌려 따는 것도 버거우며, 비타민 B가 부족했을까, 피로가 심해서일까, 뜨겁고 매운 것 먹을 때마다 입 안을 불로 에이는 듯한 아픔을 겪고 있는 구순구각염에 시달리며, 욜라가 하도 잡아끌어 욱신욱신한 손가락 마디마디는 근 2주가 넘도록 자연치유되지 않아 차라리 아픔을 안고 가자고 다짐하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 아픈데 엄마가 무슨 이런 소소한 통증으로 명함을 내미랴.

그런데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고 메리는 오늘 저녁도 괜히 안 먹는다고 입을 닫고 버텼다. 지가 잘못해서 넘어져놓고 고집을 부리고 울고, 만지지 말라면 기어이 만지고, 하지 말라면 반드시 하고, 앉으라고 하면 죽어라 뛰어다녔다. 이래 가지고 과연 사람 될까 싶어 걱정이 되고, 엄마 말 알기를 지나가는 야옹이만큼도 안 여기는 것 같아 분해서 화를 내려던 찰나 남편이 먼저 화를 내줘서 나는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곤 계속 울면서 끝까지 반항 모드인 다섯 살 메리(내가 사춘기 때도 이 정도로 반항이 심하진 않았다ㅜㅜ)를 데리고 신비의 약수가 나온다는 성당에 물 뜨러 갔다.

물 다 뜨고 내려오는 중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약이 올라 드디어 고함을 버럭 질렀다. “너 이러면 맞는다~ 맞아봐야 말 들을 거야? 엉? 집에 가서 함 맞아 보까아?”

그랬더니 메리, 맞는다는 말에 서러운 울음을 보태며 갑자기 “용서해줘” 얼버무리듯 말하고 억울함이 더 복받쳐 운다. 자존심이라면 둘째가라 서러운 아이, 타협이나 굴복이란 말이 자기 사전에 없는 아이, 하기 싫은 건 목에 땅콩 쿠키가 들어와도 하지 않는 메리. 그래서 일제시대였다면 꼭 훌륭한 독립투사로 컸을 것만 같은 메리가 두 시간 만에 용서를 청하는데 어쩌지?

일단 황송해서라도 용서했다. 저어기 예수님 서 계시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일곱 번을, 일흔 번을 용서하셨는데 엄마가 너 용서 못할 거 뭐 있냐 덧붙이면서.

생각해보니 그때도 부드럽고 포근한 봄바람이 우리를 감싸 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이래서 성난 마음, 저래서 울고픈 마음, 이래저래 서러운 마음 모두 다 다독여주는 바람이 불었나보다. 모든 것을 살피시는 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계절이 이렇게도 따뜻하게 지나간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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