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2]

마당 있는 집으로 (괜히) 왔다.

아침 아홉시. 메리 유치원 버스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고 이렇다 할 랜드마크 없는 시골길에 약간 현기증을 느끼면서, 이 집이 아까 그 집 같고 저 집도 요 집 같은 요상한 시골집들에 계속 헷갈려하면서 무조건 우리 집 빨간 지붕만을 찾아서 길을 거슬러 오는 길이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땅만 보고 걸으면 곤란하다. 이른 아침부터 논고랑 밭고랑 사이사이에 박혀 계신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도 드려야 하지, 경운기나 트럭 몰고 황망히 가시는 아침 노동에 경의를 표하며 잠깐 멈춰서기도 해야 하지, 집 앞뜰에 등 굽히고 계신 할머니들하고도 호호깔깔 간단한 담소나 미소를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렇게 15분 정도 거리를 투어하며 메리의 아침 출근 차량이었던 빈 세발자전거를 끌고 삐그덕거리며 올라오는데 언제나처럼 우리 아래아래 집 개가 개말뚝이 뽑혀라 날뛰며 날 보고 짖어댄다. 주인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흥! 나도 더 이상 ‘널 해치지 않아~’ 하는 어설픈 미소로만 화답할 수 없지! 너보다는 한 수 위라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개한테 나지막이 으르렁 말했다.

“뭐어~ 어쩌라고오~ 그만 좀 짖어! 그냥 지나가기만 한다고오!”

그래놓고 꽁지가 빠지게 그 자리를 벗어나며 내 속에서 메아리치던 말이 있었으니…….

‘아따 미치긋네. 이노무 시골.’

사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아이 유치원 근처 시골마을로 이사까지 했다면서 자칭 맹모삼천지교라고 뿌듯해한 지 열흘 쯤 되었나.

차로 15분 거리면 근래 급부상하는 대도시가 있건만, 내가 사는 여기는 아직 인터넷도 안 되지, 핸드폰도 잘 안 터져서 중계기는 부랴부랴 설치했지. (신호 잡아주는 기계인데 통신사에 연락하니 달아주었다.) 예로부터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는데다(있으면 내가 TV 중독) 라디오 하나 있는 것도 거실 모퉁이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지지직거리는 좀 속 터지는 오지에 속한다. 미련스러운 사람 둘(남편하고 나)은 살아보고서야 ‘아~’ 하고 깨닫는다.

며칠 전 우리 집 외부 시설 군데군데에 콘크리트를 갖다 부었고, (우리 집은 몇 십 년 된 시골집을 고쳐 사는 집이다 보니 외부창고니 외양간이니 별채가 딸려있는 집이라 제법 미장이 필요했다.) 그저께는 그 콘크리트 중 일부가 심히 마을의 외관과 어우러지지 않는데다, 비가 오면 마당이 물바다가 되고 어쩌고 하시는 동네 어른들의 한결같은 우려의 말에 힘입어 포클레인을 불러 마당 전체를 깨부수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는 돌멩이 하나 섞이지 않아 최상급 흙이라고 흙 가게 사장이 자랑했던 마사토 두 차 분을 마당에 부어놓았다. 흙이 크게 언덕을 이루어 세 두덩이 되어 마당에 가득하였다.

사진 제공 / 김혜율

이를 보고 메리와 욜라는 흥분해서 그 흙 동산을 마구잡이로 기어오르려고 하여 일단 저지하였지만, 역시 아이들은 지가 넘어져봐야, 그 흙 동산에 엎어져봐야 ‘아~’ 하고 깨닫는 존재인가 보다. 내 살다 살다 애벌빨래(찌든 때 제거 위한 선세탁, 주로 손빨래)를 이렇게 많이 해 댄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온 집안에 떨어져있는 흙가루는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날아가는 것인가.

흙 가게 사장은 동산을 이룬 흙을 마당에 고루고루 깔아주러 인부 2명을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인부들이 할아버지뻘 되는 노인 양반이라는 걸 안 남편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나보다. 마을 뒷산 개량사업차 여러 번 지나가며 남편이랑 안면이 생긴 젊은 현장 소장이 우리의 사정을 가엾게 여겨 친절하게도 포클레인을 끌고 와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문제는 오후 2시 메리를 유치원 하원 차에서 픽업한 후 온 가족이 잠깐 시내에 볼 일 보러 간 사이에 일어나고 말았다. 예상보다 30분 일찍 와서 써프라이즈~로 일을 다 해놓으려던 우렁각시 소장이 실수로 그만 흙더미와 함께 그 속에 숨어있던 수도계량기를 퍼 올린 것이다. 급히 연락을 받고 집에 도착해보니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에 커다란 물기둥이 분수가 되어 쉴 새 없이 창공에 부서지고 있었다. 시청 상수도과에 전화를 하니 여기 이 마을 상수도는 시 관할이 아니라 마을이나 개인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며 일절 구원자를 보내주지 않았다. 생각보다 굉장한 동네다!

그리고 그 이후 남편이 난생처음 맨홀 뚜껑을 열고 들어가 동네 상수도 밸브를 잠갔다 풀었다 하는 사이, 밤이 이슥하도록 포클레인이 마당을 뒤엎으며 돌멩이 하나 없던 최고급 흙에 마구잡이로 돌멩이를 믹싱하는 사이, 그리고 수도관과 정화조 배관을 다시 설치한다고 사람들이 동분서주하는 사이, 나는 먹는 물도 변기 물도 다 끊긴 그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리고 뒤늦게 메리와 욜라 저녁으로 쌀을 안치고 눈물의 고등어를 구웠다(연기가 매워서). 그러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메리와 욜라에게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부들부들 떨며 노래도 불렀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더니~ 한 모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아무튼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그 다음날인 오늘 오일장에 가서 푸성귀 이것저것과 꽃씨 열두 봉지와 야생화 화분 몇 개를 사왔다. 조만간 마당에 돌멩이 대충 걷어내고 유치원 갔다 온 메리와 함께 이것들을 심을 작정이다.

한편 우렁각시 소장은 어제 밤늦게 집에 들어가서는 가정은 안 돌보고 밤낮 일만 하냐고 성화인 부인과 대판 싸우고 그 김에 부인이 집을 나갔다는 사정을 아침나절 우리 집을 지나가며 들려주었다. 부디 그 집에 평화가 깃들기를.

아울러 우리 마당에도 평화가.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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