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

* 주의 : 아기 똥에 면역력이 안 생긴 미혼 남녀와 식사 전후의 일반인들은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는 똥을 똥이라 하지, 응가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각종 똥 테러를 빼고서는 제대로 된 제 일상을 보여 드릴수가 없기에…….

ⓒ김혜율
스파게티 면을 삶고 있었다. 면 안에 심 있는 ‘알단테’까지 삶는 것에 내 모든 감각과 초능력을 동원하면서 제이미 올리버(영국 스타 요리사)에 빙의되어 있었다. ‘스파게티의 면은 그날의 공기 중 습도나 면을 삶는 물의 양에 의해서도 미세하게 맛의 차이가 나는 법. 하지만 오늘은 불의 세기와 삶는 시간만으로 최상의 면발을 만들어보겠어.’

보글보글한 지 6분이 지나면서는 냄비 옆에 붙어 서서 10초 단위로 익힘 정도를 점검한다. 면 하나를 건져 뚝 하고 끊어보는 1차 육안 식별에 이어, 이빨로 한 번 잘근 하고 씹어보며 느끼는 2차 식감 테스트까지 신속하고도 정밀하게 진행된다. ‘음……! 바로 3초 뒤다(불 끄기까지)! 1, 2…….’

3을 세려는 찰나, 기특하게도 무려 1분간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놀던 욜라의 “우어어어! 어! 어!” 하는 왠지 불길한 외침이 들렸다.

‘아, 뭐야’ 하면서 아직 올리버의 영이 눈매에 서린 채로 휙 돌아보았더니 히엑! 우리 집의 최고가 건축내장재 모로칸화이트색 마룻바닥에 방금 싸놓아 김이 모락모락 하는 똥 한 덩이가 덩그마니 놓여있다. 욜라는 벌써 도망가 멀찌감치 서서 이쪽의 동태를 주시하며, 제 엉덩이에 반사적으로 손을…… 손을! 갖다 대려 하고 있다.

“아악, 안 돼! 만지지마, 만지지마~ 욜라야 이리 온. 이리와, 어서. 자아~ 똥은 잠시 그대로 두고 우리 엉덩이 씻으러 갈까~ 야! 야!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아!”

그때 울리는 내 핸드폰의 벨소리! 내일 만나기로 해놓고 아직 구체적 약속을 정하지 않은 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욜라의 어차피 베린 손,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따가 목욕시키면 되고. 약속 장소와 시간 정하는데 10초면 될 테니 이것부터 해결하는 거다. 다만 지가 싼 똥으로의 접근은 막아야 돼. 그건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바닥에 쌌으니 양반이지. 저번처럼 원목교구 모자이크 퍼즐 위에 눴으면 어쩔 뻔했어, 휴.

“어, 쏠메야~ 응? 응. 괜찮아~ 그래애~ 내일 우리 어디서 만날까? 음? 응. 거기 좋지~ 뭐라고? 그래, 거기도 좋아. 난 다 괜찮은데 네가 편한 데로 해라. 응? 아, 난 둘 다 비슷해, 뭐. 그럼 이번엔 거기로 할까? 그래. 오우케이~ 시간은 10시 괜찮은데? 응, 아니야~ 나 새벽같이 일어날 수 있어. 그래, 그래.” (시종일관 험상궂은 표정으로 욜라와 똥을 번갈아보며, 손을 세차게 훠이훠이 저으며 온몸으로 방어막을 치면서.)

그러나 예상보다 10배는 길어지는 통화와 또 새로운 화젯거리의 등장으로 내 눈이 점점 초조해지고 있는 찰나, 아뿔싸! 스파게티 면이 아직도 남실남실 신나게 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우 지저스지저스 크라이스트! 내 알단테! 내 섬세한 스파게티니!

“어, 저저저, 쏠메야, 사실 지금 똥에…… 냄비에 스파게티…… 암튼 일단 끊을게.”

전화를 끊고 욜라를 붙잡고 몸부림으로 인한 2차 오염에 주의하며 욕실로 가 간이 샤워를 시킨 다음에서야 스파게티 면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날 나만의 호화로운 점심 메뉴로 선보인 새우와 버섯을 풍성히 넣은 ‘감베로 풍기 뽀모도로 스파게티’여, 그 안의 면발이여, 너는 죄가 없다. 다만 육아지변으로 인해 곤죽이 됐을 뿐.

이렇게 한꺼번에 세 가지 이상의 일이 나에게 덤비는 일이 예사로 일어나는 육아 현장 고발, 그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

1. 10분 뒤 손님 방문한다는 연락 + 집안 난장판(이걸 얼른 치워야) + 욜라 똥냄새 감지(기저귀를 얼른 갈아줘야) + 엉덩이 씻기 싫다고 도망가다 자빠져 울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악을 씀(울음부터 그치게 해야) + 내 옷은 츄리닝 쪼가리에도 못 미치는 넝마(뭐라도 입어야) = 띵동~!

2. 오전 내내 난동 부리다가 탈진해서 오후 2시쯤 욜라 낮잠 시작 + 짜파게티 면 건져서 소스 비벼놓은 상태 + 이웃 할머니들의 급작스런 마당 점거, 텃밭 채소들의 생육에 대한 강경한 조언 + 메리 유치원 하원 차량 도착(뛰어가서 애 받아줌) + 욜라 깨서 엄마 찾는 소리 들림(집 안으로 뛰어 들어감) = 불어버린 짜파게티, 애들과 나눠먹으며 친목을 다짐(할머니들은 욜라 부분에서 자율 귀가).

3. 장기 전화통화 중(친정 엄마와의 전화통화가 시작되면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시도록 끝까지 들어드리는 큰딸의 덕목 발휘하면서) + 살림을 하나라도 더 하자고 한 손으로 방 청소 + 욜라와 메리가 밖에 나가 놀자고 압력(옷 입히고 신발 신겨 마당에 세워줌) = 전화통화와 메리, 욜라와 대화를 동시에 하면서 ‘엄마와 함께하는 사계절 자연오감놀이 100선’ 중 제15편 네잎클로버 찾기 대회를 진행함.

4. 내 입에 저녁밥 한 술 + 메리, 갑자기 변의 느껴 변기 착석 + 욜라, 국에 만 밥그릇 거꾸로 쥐고 흔듦 + 화내봤자 시간 지연, 즉시 쏟은 국밥 잔해와 똥 눈 변기통을 처리 + 그 사이 메리, 팔꿈치로 컵 쳐서 물 200밀리 바닥에 흘림 + 그 물 밟고 욜라 미끄러져 일으켜달라고~ 옷 젖었다~고 울면서 어필 = 나도 좀 울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밥상을 엎어야 하나 고민.

그렇다. 사실 누구나 겪음직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 일상이 주는 정신적, 육체적 노동 강도는 만만하지 않다. 욜라만 하더라도 집에서는 개망나니 저리가라 온갖 말썽을 부리고 울어대서 우리 집 뒤뜰에 물 줄 때 가끔 인사하는 고라니도 시끄럽다고 이사를 갈 판인데, 정작 남들 앞에서는 점잖기가 청학동 할애비 같고, 그 은은한 미소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이라 일컫는 욜라의 이중생활로 인한 오해는 나를 억울한 에미로 만든다. 이런 애는 업고서 8월 삼복더위 밭이라도 갈겠다느니, 이런 순둥이는 10명이라도 거저 키우겠다며 나보고 집에서 논다, 쉰다 하는 사람들 말도 하루이틀 들어야지…….

오늘은 오전 내내 내 손가락을 끌며 계속 뭔가를 이래라저래라 시켜먹더니, 빨래가 다 돼 뒤뜰에 널러 가려는데 이 녀석 그저 앞마당으로 나가겠단다. 방금 전까지 자전거 탔는데 뭘 또 가냐, 엄마 빨래 너는 거 구경하게 뒤뜰로 같이 가자, 그래도 절대 안 가겠단다. 그래, 그럼 넌 마당서 놀고 엄만 빨래 널게, 하니 그게 어디 될 말이냐는 듯 역정을 버럭 낸다. 어찌됐건 신발을 신어야 나가지, 신발이나 신자, 해도 이미 노여움이 심해져(아니 왜! 그게 왜!) 이제 그 어떤 제안도, 빨래 포기하고 같이 마당서 니나노 놀자~ 그래도 운다. 허, 참…… 빨래 군내 나면 네 책임이여, 엄만 가겠으니, 신발 신고 따라오든지, 여기 있든지 맘대로 해라, 하고 가니 발악을 하며 나 보란 듯이 맨발로! 흙길을 달려온다. 그러다 개미굴에 엎어져 얼굴을 박고 울고 난리가 났다. 온갖 회유, 달램, 무시를 하면서 50분 이상을 끌어서야 겨우 하루치 빨래를 다 널 수 있었다.

밭에 갔다가 들어오시던 옆집 할머니가 욜라의 막바지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와 애 달래주라며 사과 한 알을 주셨다. 그러면서 애가 더워서 칭얼대는 건데 나보고 그것도 모르냐는 가벼운 타박을 하시면서 저 개망나니 욜라 편을 드신다. 아우우, 진 빠져. 몸에서 사리 나오겠네. 그래, 오늘은 내 가까운 선배 엄마한테 전화 걸어서 요사이 억울한 거나 죄다 일러바쳐야겠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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