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선제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이란으로부터 미국이 받을 위협이 임박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징후는 없었다. 선전 포고도 없었다. 비겁하게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을 비난하던 나라가 한 짓이다.

미국의 침략은 불의다!

우리 교회는 ‘정당한 전쟁 교리’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를 ‘정의로운 전쟁(just war) 교리’라 불렀다. 이 교리 내용은 간단하다. 전쟁을 먼저 시작해선 안 되고 그렇다고 공격을 당하는 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 가능하면 정당방위 목적으로만 폭력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전쟁 앞에 ‘정의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선제공격이 아니라 자기(와 집단)를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전쟁의 정당성을 윤리적으로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전쟁에 나서는 나라는 선제공격을 하지 않으려 하거나, 하더라도 상대 국가에 혐의를 씌우거나 상대의 도발을 유도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은 이런 면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국익을 위해 주권 국가를 일방적으로 침탈했다. 당연히 이는 가톨릭교회의 정당한 전쟁 교리에 반하는 것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불의한 전쟁이다.

민주 평화론이라는 허구

미국은 그동안 ‘민주평화론’을 기반으로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다. 민주평화론은 국제 정치학의 한 이론으로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문제는 민주, 평화 두 단어가 갖는 긍정적 이미지와 다르게 이 이론이 수시로 전쟁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 이론을 따라 권위주의 독재 국가들을 민주 국가로 만들기 위해 이 나라들을 선제공격했다. 평화를 위해 반평화적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결과는 대부분 실패였다. 그런데도 이런 터무니없는 이론이 평화라는 이름을 달고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이번 전쟁에도 민주평화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미국은 이란의 신정 체제를 권위주의 독재 체제로 간주하여 이 체제를 붕괴시키고 민주 공화정을 세우려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진정으로 이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미국으로서는 체제 전복에 성공해도 좋고 체제 전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이란이 내전 상태로 빠져들면,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도전할 나라가 사라지니 나쁠 게 없다. 아마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다만 이는 이란이 베네수엘라처럼 무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란은 여러 면에서 베네수엘라와 달라 미국 의도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란이 작정하고 대응하면 미국은 자국의 유가, 물가 상승은 물론 전쟁 반대 여론에 시달릴 것이다. 중동의 주변 국가들은 지금 보고 있듯이 미국에 협력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게 없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어떻게 비난할 것인가?

미국이 이란의 민주주의를 바랄지도 의문이다. 본래 미국은 자국에 이익이 되면 민주주의 체제든 권위주의 독재 체제든 가리지 않고 지지했다. 오늘은 지지했다 내일은 정반대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다. 아마 이번 전쟁의 속내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여, 미국이 이 지역을 떠나도 적은 비용으로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일 것이다. 이것이 민주평화론의 실상이다. 그러니 미국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트럼프가 보여 주는 모습이 본래 미국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2024년 8월 23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데저트 다이아몬드 아레나에서 열린 '애리조나 트럼프 지지 집회'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게이지 스키드모어)
2024년 8월 23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데저트 다이아몬드 아레나에서 열린 '애리조나 트럼프 지지 집회'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게이지 스키드모어)

전쟁의 빌미인 ‘선거’

미국 정치와 외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공리처럼 여겨지는 이론이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이 인기가 없을 때 그 정당은 대선에 이기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이전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평소 손을 보려 했는데 마침 대선이 있으면 공식처럼 전쟁을 시작해 손을 보았다. 트럼프도 이번 중간 선거에 실패하면 탄핵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처지일 수 있다. 탄핵이 아니더라도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이 불가피하다. 이런 경우 사용하기 좋은 카드가 대외 변수다. 베네수엘라도 이란도 시기가 안 좋았다. 결국 트럼프는 사적(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이용한 셈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트럼프의 시도를 미국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MAGA 세력 안에서도 반대가 커지고 있다.

경고용 전쟁

제국은 적을 제압하는 목적으로만 전쟁을 하지 않는다. 동맹국을 위협하는 용도로도 한다. 유럽, 한국과 일본은 겉으로 보이는 군사력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 미국이 사소한 것조차 통제해 왔기 때문이다. 미군이 주둔한 나라들은 80년 이상 이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이란과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이 나라들이 미국에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이 나라들은 베네수엘라, 이란 사태가 남 이야기 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침묵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난했다가 본보기로 관세 덤터기를 쓸까 두려워한다.

정부는 그렇다 치자. 교회까지 이 사태에 침묵해야 하는가? 교종 혼자 외롭게 외치게 하는 것이 옳은가? 나는 이런 시기가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이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적어도 평화를 지향하는 가톨릭 단체만이라도 한목소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번 전쟁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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