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시험에 많이 나왔던 하근찬의 <수난이대>에서 주인공 부자는 서로의 장애를 확인하고 절망하지만, 서로를 의지해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극복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일제 강제 징용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한국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었다. 한국전쟁 시기 군인과 민간을 포함해 200만 명 이상이 다치거나 죽었고, 다친 사람의 상당수는 장애를 가졌다. 국군의 전체 부상자가 45만 명에 이르렀고, 이중 일부는 큰 장애를 갖게 되었다. 특히 절단 상이군인 수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연구에 따르면 8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특히 한국전쟁에서는 절단 환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의료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최대한 빠른 시기 내에 많은 사람을 살려야 했다. 그래서 팔다리 재건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그냥 절단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쟁 당시 군의관들은 증언한다. 특히 미 군사 고문단 의사들은 국군 병원의 의료 행태를 시찰하고 국군 군의관들을 절단의 천재들이라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국군 군의관들의 선택은 열악한 의료 환경과 수많은 환자 발생 때문이었다. 즉 전쟁 그리고 그 전쟁에 사람들을 몰아넣은 자들의 책임이다.

인류는 감염으로 인한 조직 괴사를 막을 수 있는 항생제를 개발했지만, 전쟁은 이런 발전의 효과를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 물론 혹자는 총알과 폭탄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에 의미를 둘지 모르지만, 절단 장애에 지원도 거의 미비했던 과거 한국에서 <수난이대>의 부자처럼 극복의 의미를 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실제로도 한국전쟁 이후 상이군인들은 일부 공부를 다시 하거나 직업을 얻은 경우도 있지만, 다수는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일부는 사회 부랑자 취급을 받게 된다. 그리고 상당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자 지구와 절단 환자

1950년 한국전쟁 시기와 비교해 현대의 의학 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장비와 의료 기술 발달로 낙상 사고나 말초 혈관이 망가진 게 아니면 절단 환자를 보기는 쉽지 않다. 응급 수술로 절단 면을 찾으면 기능적이진 않지만 외형으로는 절단하지 않고 팔다리를 보존할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학 기술과 의학 발전의 덕은 충분한 치료 환경이 있을 때 가능하다.

2023년 시작된 가자 전쟁에서는 이런 발전의 공식이 적용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는 제대로 된 병원도 없었고, 그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도 부족했으며, 치료에 쓸 약제나 치료 재료도 없었다. 그나마 있던 병원도 폭격당하고, 의료진도 사망했다. 그 결과 한국전쟁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현재 발생하고 말았다.

가자 지구에서는 팔다리 상처에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 괴사와 혈관 손상이 진행돼 절단 환자가 늘어났다. ‘팔다리를 자르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수많은 사람이 절단을 선택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과 지역 청소로 아직도 사람이 얼마나 죽었고, 다쳤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가자 지구에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폭격으로 생겨난 6000명 이상의 절단 환자가 있다. 그리고 가자 지구는 전 세계에서 팔다리가 절단된 아동 비율이 가장 높다.

2025년 8월 유엔 장애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가자 전쟁 이후 4800명의 사지 절단 사례가 기록되었고, 매일 어린이 10명이 한쪽 또는 양쪽 다리를 잃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현대 역사상 가장 많은 아동 절단 환자가 발생한 지역으로 규정되었다. (가자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6만 1천 명이 사망하고, 그중 어린이가 최소 1만 8천만이다. 부상 입은 15만 2천 명 대부분은 어린이와 여성이다.)

인도적 지원조차 막고 민간인 지역을 과도하고 계획적으로 폭격한 이스라엘이 벌인 이 대량 학살극의 참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그 이미지는 절단된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다행히 팔레스타인 절단 환자들로 구성된 자전거 선수들(gaza sunbirds)은 장애인 올림픽이나 장애인 운동 경기에 참여해 장애 극복과 동시에 가자 전쟁의 본질을 폭로하고 있다. <수난이대>의 주인공 부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전과 이스라엘 규탄을 스포츠 현장에서 하고 있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그림 생성 = 챗지피티)

침략 전쟁에 참여해선 안 된다

최근 대량 학살극의 장본인 이스라엘과 트럼프 일당이 이란을 기습 공격했다. 전쟁 포화가 미치지 않는 한국에서는 호루무츠 해협 봉쇄로 인한 경제 위기, 주가 하락, 에너지 위기가 주된 관심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미사일만 날아다니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군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개전 초 미국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잘못 발사해 초등학교를 폭파하고 초등학생 200여 명을 살해했다. 이는 명백한 전쟁 범죄다.

이스라엘은 친이란 세력 소탕을 명분으로 레바논을 기습 공격해 민간인 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피란민 50만 명이 발생했다. 레바논 사람들은 졸지에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청소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란과 레바논은 선전 포고 없는 기습 공격에 제대로 전기도 공급되지 않고, 폭격을 의식해 일상생활이 완전 파괴되어있다. 이런 위기에서 실제로 제일 큰 문제는 아픈 사람들에게 생겨난다. 제대로 된 의료 시설 운영이 안 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뻔하지 않은가.

사실 분쟁 지역의 의료 시설 핵심 문제는 장비가 아니고, 인력과 깨끗한 물 그리고 전기와 같은 에너지다. 여기에 약품과 기본적인 치료 기기가 필요하다. 아마도 지금 이란 공격은 이런 기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저하시키고 결국은 보건 위기를 부추길 것이다. 그리고 레바논과 같은 곳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피할 수 있는 장애인 즉 절단 환자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술 더 떠 미국과 이스라엘은 본인들이 벌인 전쟁 범죄에 다른 나라들을 가담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란전쟁의 국제법상 문제점, 부도덕성, 반인륜적 행태, 제국주의적 폭력성 등등 수많은 문제는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해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미국과 이스라엘 일당이 벌인 이 전쟁은 계획적이고 일방적인 공격으로 수많은 장애인이 늘어나고 있으며, 지속된다면 그 과정은 가자 지구와 유사해질 수 있다. 그 장애인들 특히 절단 환자들의 모습은 한 세기를 넘어 그 사회를 관통하는 증오와 분노의 씨앗이 될 것이다. 즉 명분 없는 전쟁에 참여해 한 지역의 장애인이 대거 발생하게 하는 일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우리 아이들과 아픈 이들을 위해서도 이것은 이율배반이다.

한국은 명분 없는 이 전쟁에 결코 참여해선 안 된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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