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월이 되면 농부의 마음은 바빠진다. 작년 한 해 우리 수녀님들이 정성껏 키운 고추를 말려 곱게 빻아 고추장을 담그고 나니, 입춘이 지나고 한 해 농사를 슬슬 시작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겨우내 묵나물을 해 먹고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한해살이를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해 영양 보충도 하고 살도 찌웠다. 무엇보다도 이때는 일 년 농사 계획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농부는 춥고 눈 내리는 겨울에도 논밭을 생각한다.(파멜라 메츠) 무엇을 심을까? 언제 심을까? 어떻게 가꿀까? 누구와 함께할까?
도러시 데이와 함께 미국의 사회 정의와 평신도 운동의 선구자로 존경받고 있는 캐서린 도히터(1896-1985)는 자신이 설립한 캐나다의 마돈나 하우스 공동체에서 성 베네딕도 농장을 운영하였다. 그녀는 농장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사도직의 의미가 있는 곳으로서 공동체 영성의 바탕을 이루는 농사 사도직(Apostolic Farming)의 기초를 마련한 선구자였다. ‘농사’라는 말에 ‘사도직’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우리가 손수 농사를 지음으로써 그 모습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고자하기 때문이다.(<죽어 가는 땅을 살리는 농사사도직>, 캐서린 도히터, 이동훈 역)
캐서린 도히터의 삶과 가르침은 나에게 농사가 일이 아니라 삶이며, 삶 전체에 스며드는 기도와 영성임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이를 어떻게 삶에서 구체화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 이스라엘의 3대 축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축제들은 하느님 신앙을 담은 종교 축제가 되기 훨씬 전에 이미 농경 사회의 농사 주기를 통해 기념되었다. 봄에 첫 씨를 뿌릴 때(무교절), 첫 수확을 할 때(수확절), 마지막 추수를 할 때(추수절).(탈출 23,15-16) 수녀님들과 한 해 농사 계획을 나누며 이 축일들과 연결된 농사 주기를 전례와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수도자의 삶은 전례가 중심이 되어 경축하고 기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매서운 추위가 한창이지만 2월 초에는 고추 육묘를 시작해야 하기에, 첫 씨를 뿌리는 예식을 하였다. 루르드의 성모 기념일에 땅과 농기구를 축복하고 모판에 고추씨를 넣었다. 2월 마지막 날에는 우리 조상들이 농사를 시작하며 시농제를 하듯, 시농(始農) 미사를 봉헌하였다. 작년에 잘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들을 꺼내 재활용한 아이스크림 용기에 담아 예쁘게 장식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가능성’을 품은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고 희망을 키우는 것이다. 씨앗이 담긴 바구니를 제대 앞에 가져다 놓고 씨앗을 축복하며 한 해 농사를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그가 생겨난 흙을 일구게 하셨지만, 성경에서 처음으로 직업이 농부로 소개된 사람은 ‘카인’이다.(창세 4,2 참조) 카인은 착하고 순한 농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아담의 10대손이며 포도밭을 가꾸는 농부로 소개되고 있는 노아(9,20)는 달랐다.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라멕은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5,29)라며 이름을 노아로 지었다. 노아는 쉼과 위안을 주는 농부였다. 그는 고된 농사 가운데도 멈추어서 쉴 줄 알았고 씨를 뿌리고 기다릴 줄 아는 농부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회칙 '찬미받으소서' 71항은 노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지만(창세 6,6) 의롭고 흠 없는 노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희망을 되찾는 데에는 의로운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노아가 살았던 시대는 악하고(6,5)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6,11), 지혜로운 농부 노아만이 하느님 마음에 들었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멸종에 비유하기도 한다. 46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지금 진행 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과거의 대멸종은 인간이 출현하기 전에 주로 자연적인 재해 때문에 발생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 활동이 촉발하는 멸종이며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빠를 뿐 아니라, 인간도 멸종 위기 종에 속한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우리 시대도 노아 시대만큼 악과 폭력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멸종을 부르는 인간 활동의 결과는 대체로 다음 여섯 가지로 요약된다. 1) 서식지 파괴 및 단편화 2) 환경 오염 3) 기후 변화 및 온난화 4) 과도한 남획 및 불법 밀엽 5) 외래종 도입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살덩어리’(창세 6,3)라고 부르신다. 노아 시대처럼 여전히 우리는 하느님의 눈에 ‘살덩어리’로 보이지 않을까?
멸종 위기를 눈앞에 두고 참사람의 길을 간 농부 노아의 모습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홍수 후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한 일은 하느님께 제사를 지낸 것이다. 하느님은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며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도 않고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을 품으셨다.(창세 9,20-21) 그리고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영원한 계약을 제안하신다. 하느님은 계약의 대상에 노아의 가족뿐 아니라 노아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도 포함하신다. 이 계약은 농부 노아의 의로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아는 생명을 존중하고 다른 피조물의 가치를 존중하는 농부였기에 가축과 짐승들을 데리고 방주에 오르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자기 가족만, 사람만 살기 위해 방주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다른 생명체들도 하느님 보시기에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찬미받으소서' 69항),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였다.(70항)
최근에 3차 대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 소식들은 스스로 자멸로 치닫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일을 십자가처럼 껴안고 세상의 죄를 품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더 늘어가는 이 시대에’(찬미받으소서 217항) 멸종 저항의 행동으로 오늘도 작은 씨앗을 어머니 대지의 품에 심으며 희망을 키운다. 노아처럼 저주받은 땅을 축복의 땅으로 만들고, 고통받는 피조물을 위로하는 농부가 되기를,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창조 세계를 보호하는 고결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는 농부가 되기를, 하느님께서 법칙을 일러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일하는 농부가 되기를.(이사 28,26)
이애리(마리베로니카)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 경기도 연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말씀의 육화 신비를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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