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연과 올 포럼,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서 이동 학교 열어
원주민 전통과 가톨릭 신앙의 화해와 조화 강조
“조상의 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의 선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소외된 원주민의 존엄을 수호하는 것이 현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시급한 신앙 실천이다.” 프란시스코 자베리오 데이대(Fransiskus Zaverius M. Deidhae) 신부는 지난 16-21일에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의 말씀의 선교수도회(SVD) 피정의 집에서 열린 이동 학교에서 이같이 강조하며, 원주민의 권리 옹호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역설했다.
이번 행사에는 플로레스 가톨릭 대학생연합회(PMKRI)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원주민 연합(AMAN) 등 여러 조직과 인근 성당 청년 회원 4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에는 토착 원주민 공동체에서 파견한 장년들도 포함됐으며, 청년 대부분이 토착 부족민 후손들이다.
데이대 신부는 “원주민에게 땅은 경제적 재화가 아니라 하느님과 조상의 숨결이 깃든 성스러운 공간”이라며, 교회가 과거의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원주민을 하느님 구원 계획의 대등한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이동 학교는 '플로레스 원주민 및 여성의 존엄성 수호에 앞장서는 인도네시아 가톨릭 청년'을 주제로 열렸다. 토착 원주민(Indigenous Peoples)의 전통 문화와 가톨릭 신앙의 조화 문제를 역사와 신학 차원에서 살피는 한편, 여성 원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주요하게 다뤘다. 본격적인 연수에 앞서 참가자들은 누눙옹오(Nunungongo) 전통 마을을 탐방하고, 토착 부족민의 종교 문화적 전통과 가톨릭 신앙이 어떻게 삶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느꼈다.
현장 체험 조의 보고서에 따르면, 누눙옹오의 렌두(Rendu) 부족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이 가톨릭 신자면서도 조상의 관습을 엄격히 지킨다. 특히 이들이 행하는 ‘동물 희생 제사’(animal sacrifice)는 가톨릭의 ‘죄의 속죄’(atonement) 개념과 상징적 유사성을 띠며, 신앙과 전통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 준다. 또한, 조상의 유산인 공동 토지를 외부인에게 팔지 않는 규범은 단순한 폐쇄성이 아니라 이 부족의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삶을 보장하려는 능동적인 노력이라고 보고했다.
이어진 연수에서 프란시스카 이마쿨라타(Fransiska Imakulata) 수녀는 플로레스의 ‘결혼 지참금 문화’(Budaya Belis) 관습을 통해 젠더 정의 문제를 짚었다. 그는 플로레스의 젠더 불평등은 가부장제, 고정적 성 역할, 저임금 노동, 변질된 지참금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면서, 이것이 여성에게 성차별, 폭력 소외, 경제적 부담 등의 불의를 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거룩한 말씀의 선교수녀회 소속 프란시스카 수녀는 플로레스에서 사회 및 종교 생활에서 가톨릭교회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순종, 희생, 용서, 이혼 금지 같은 가톨릭의 가르침이 때로 가정 폭력 피해자가 가족을 위해 침묵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토착 원주민 연대 조직인 ‘인도네시아 원주민 연합’(AMAN)의 막시밀리아누스 헤르손 로이(Maximilianus Herson Loi) 지역 대표는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부족민의 현실을 분석했다. 그는 정치적 부패 및 권력 부침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원주민에게서 약탈한 땅은 반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에게 토지를 지키는 투쟁은 곧 공동체의 영적 정체성을 수호하는 행위라고 봤다.
미국 거룩한 이름 수녀회(Sisters of the Holy Names of Jesus and Mary) 소속 박정은 수녀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여성신학을 여성의 체험과 성평등의 관점에서 전달했다.
올 포럼의 황경훈 소장은 아마존 시노드와 아시아의 다종교 문화 전통을 바탕으로 종교문화 간 영성에 대해 강의했다.
누눙옹오 마을의 청년 세대로 이 공동체의 토지 및 광산 문제를 위해 일하는 크리스토 마리아 술탄 뚜자구구(Christo Maria Sultan Tuzagugu, 27) 씨도 로이 대표의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변호사인 그는 20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여러 차례 정부가 바뀌어도 토착 원주민의 땅을 되돌려 주지 않고 있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교회가 적극 나서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토지 문제도 심각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많은 곳에서 광산 개발을 하고 있어서 공동체 존립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착 부족민 여성을 주제로 소설을 여러 권 써 온 메르띤 루시(Mertin Lucy, 37) 씨는 토지나 광산 문제와 더불어 휴대 전화로 상징되는 현대 기술과 물질 문명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공동체를 보호하는 길은 평화를 이루는 일과 같아서 아이들을 위해 작은 도서관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시 씨는 뚜자구구 씨와 함께 이번 이동 학교에 일원으로 참가해 현장 체험을 이끌었다.
이동 학교가 열린 플로레스 섬은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무슬림인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가톨릭 중심지로 남아 종교문화적으로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종교사를 연구한 역사가이자 신학자인 카럴 스텐브링크(Karel Steenbrink, 1942-2021)에 따르면, 플로레스는 인도네시아 안에서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아 가톨릭 전통이 깊숙이 뿌리내린 대표적인 지역이다. 특히 1859년 리스본 조약(Treaty of Lisbon)으로 네덜란드에 영토가 이양될 당시에도 가톨릭 포교의 자유를 굳건히 보장받았으며, 이후 말씀의 선교수도회 선교사들이 교육과 의료 기반을 닦으며 교세를 크게 확장했다.
참가자들은 이동 학교 프로그램을 마치고 제출한 평가서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밝혔다.
토착 원주민 공동체 소속인 파트리시아 유닝시 에카스와티(Patricia Yuningsih Ekaswati) 씨는 “원주민의 전통을 현대의 삶, 특히 젠더 문제와 연결하는 이번 주제는 흔히 접하기 어려웠다”며, “이러한 배움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전통을 발전시키고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데 귀중한 준비 과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리아 아프릴란티 두아 카산(Maria Afrilanti Dua Kasan) 씨는 “이 프로그램은 내가 속한 조직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관련 정부 부처 및 올 포럼과 협의해 가톨릭 대학생연합회(PMKRI) 마우메레(Maumere) 지부가 주도하는 전국 세미나와 마을 지원 프로그램을 조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동 학교는 우리신학연구소 주도로 설립된 아시아평신도지도자 포럼(ALL Forum)이 연례 평신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인 ‘아시아청년아카데미(AYA)/아시아신학포럼(ATF)’에 참가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출발했다. 현재는 AYA/ATF의 후속 프로그램으로도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동 학교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해 일주일간 진행하는 연수로, 올해는 5월, 6월, 10월에 각각 라오스, 필리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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