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비대칭적 소모전’으로 전개되며 국제 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은 트럼프 집권 이후 2차 세계 대전 이래 유지돼 온 자유무역 질서가 해체되며 빠르게 약화되는 중이다. 여기에 중동 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적나라한 폭력적 민낯은 미국의 리더십을 빠르게 와해시키고 있다. 전 세계는 이제 무극(無極)의 국제 질서 속에서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과거의 전쟁과 다른 중동 전쟁의 특징

중동 전쟁은 과거의 전쟁과 비교할 때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첫째,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동맹국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이 이란을 처음 공격할 때 동맹국 영국과 스페인은 국제법 위반 등을 이유로 미군의 자국 군사 기지 사용을 불허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영국·프랑스·일본·한국·중국에 연합 군사 작전 참여를 요청했지만 각국의 반응은 싸늘하다. 아랍 내 전통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도 전쟁으로 자국의 피해가 커지자 미국을 원망한다. 미국은 걸프 국가들의 피해는 모르쇠하며 자국 군사 시설과 이스라엘 보호를 위한 방공망에만 신경쓰고 있다. 걸프 국가들 입장에서는 자국의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해 미군 기지를 허용했는데, 이게 오히려 이란의 공격 타깃이 돼 안보를 해친 결과를 맞았다. 이란의 혁명 수비대는 주변 걸프국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 가격을 폭등시킴으로써 전쟁 고통을 전 세계로 확대시켜 반전 여론을 조성하는 전쟁의 ‘수평적 확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외에 우군이 없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전임 정부들의 전쟁 문법인 ‘파월 독트린’을 깡그리 무시했다. 부시 행정부 시기 파월 합참 의장의 이름을 딴 ‘파월 독트린’은 △군사력은 비폭력적 수단이 다 소진된 뒤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분명한 목표와 명확한 출구 전략 속에 국민적 지지를 얻으며 추진되어야 하고 △군사·경제·정치·사회적 자원 등 모든 자원을 사용해 압도적이고 결정적 힘으로 적을 패퇴시킨다 등이다.

트럼프는 이란과 협상을 하는 도중 공습을 감행했다. 이란의 아라그치 외무 장관은 미국과 협상에서 무기급(90퍼센트)에 근접한 60퍼센트 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더 낮은 농도로 희석하고, 미국이 제재 해제에 나선다면 추가 농축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갑자스레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에게 군사력은 다른 비폭력적 수단이 다 소진될 때 사용하는 최후 수단이 아닌, 충격을 통해 협상력을 끌어올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트럼프가 자랑하는 모호함과 유연함의 전술이 미국의 신뢰도를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제미나이)
(그림 생성 = 챗지피티, 제미나이)

트럼프는 목표도 불분명하고 출구 전략도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개시했다. 처음에는 이란 정권의 임박한 위협을 제거해 미국인들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하루 지나서는 공습 목표가 이란의 정권 교체를 통해 중동과 전 세계의 평화를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란의 정권 교체가 전쟁 목표라면 대규모 지상군 투입 등 압도적 군사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트럼프는 해·공군과 특수군 등 제한적 군사력만 투입하고 있다. 보도를 종합할 때 트럼프는 이란도 베네수엘라처럼 알리 하메네이 등 이란 지도부를 공습으로 제거하면 신정 체제가 무너질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이란은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후임 최고 지도자로 선출해 결사 항전에 나서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기뢰, 유도탄, 무인기, 소형 잠수정, 무인 함정, 쾌속정 등을 결합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석유 가격을 폭등시켰다. 세계 여론은 물론 미국 여론도 트럼프 행정부에게 불리하다. 3월에 실시한 여론 조사는 전쟁 반대 여론이 <CNN> 59퍼센트, <PBS/NPR/마리스트> 56퍼센트, 귀니피액 대학 53퍼센트에 이른다. 지상군 파병에 대해서는 공화당 지지층조차 절반 이상이 반대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거부감이 강하다.        

셋째, 전쟁의 양상 변화로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조차 전쟁 승리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무인기 등 저가 무기로 미국·이스라엘의 값비싼 전략 자원을 갉아먹는 방식의 ‘비대칭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보도 동영상에는 이란의 무인기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미군의 군사 기지를 자폭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광섬유의 유선 통신으로 운영되는 이란의 저가 무인기가 미국의 재밍 기술을 무력화시켜 수조 원을 들여 구축한 미국의 첨단 전파 탐지기와 방공망이 속수무책으로 뚫린 것이다. 미국은 장기전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란의 자폭 무인기 한 대 가격이 3000만 원인데 비해 이걸 요격하는 미국의 패트리엇과 애로우-3 유도탄은 한 발에 60억 원에 달해 가성비에서 상대가 안 될 뿐 아니라, 첨단 요격 유도탄은 생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무제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대칭 소모전으로 버티며 미국과 세계 경제의 치명적 약점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이란의 전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전투에서는 승리하고 있지만, 전쟁에서 승리해 정치적 결실을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 패권의 종말과 무극 시대

국제정치학에서 패권(Hegemony)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을 자신의 질서 속에 끌어들이고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종합적 국력의 총합으로 정의된다. 패권은 경제력·군사력·정치 및 제도적 영향력·문화적 영향력 등이 합쳐져 행사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규모 전쟁 예방과 인류의 번영에 기여한 자유무역 질서와 유엔 체제는 미국의 패권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은 경제력 쇠퇴와 달러 패권의 약화, 브릭스(BRICS) 플러스 부상과 다극화되는 국제 질서, 문화적 영향력 약화 등 구조적 요인들로 인해 쇠락하는 중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 기치하에 관세 횡포, 동맹 무시, 유엔 체제 와해 등으로 미국의 리더십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이번 중동 전쟁은 미국 패권의 마지노선인 압도적 군사력조차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전 세계에 인식시킴으로써 향후 국제 질서 변화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우리도 무극(無極)시대, 다극(多極)시대에 대처할 새로운 안보 전략이 필요하다.

백장현

정치학 박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