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에도 계속 사용하게 되는 신체 기능
도구 만들기와 손의 진화적 영속성
도구를 만드는 능력은 인류 진화사를 통틀어 가장 지속적이고 중요한 신체 기능 중 하나였다. 인류가 석기를 사용한 흔적은 최소 260만 년 전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도구가 인간 기술 혁신의 초기 뿌리를 형성하였다. 특히 수십만 년 동안 초기 석기 제작 방식이 거의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도구 제작이 환경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직면했을 때 혁신을 이끌어 낸 기본 생존 장치였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높은 충실도의 사회적 학습을 통해 정보를 전파하는 특징이 있다. 이것이 기술과 지식이 축적되는 누적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손으로 도구를 만드는 경험은 이러한 문화 전파의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인 기록이자 수단이었다. 기술의 복잡성과 다양성 증가는 인지적 진화와 문화적 변이 사이의 상호 작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다.
인공지능(AI)이 도구를 설계하거나 로봇이 도구를 조작할 수는 있지만, 인류의 진화적 성공은 손으로 물질을 가공하고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복잡한 ‘도구적 신체’를 개발하는 능력의 결과다. 기술의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인간 신체의 정교한 활용을 필요로 하는 순환 고리가 형성돼 왔다는 것이다.
인간의 손: 감각과 행위의 복합 기관
인간의 손은 시각이나 청각 체계와 달리, 환경을 동시에 감지하고 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촉각 체계다. 손은 누르기, 잡기, 탐색하기, 조작하기 등 다목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손의 능력은 ‘햅틱 루프(촉각 반응 순환)’와 ‘비정형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동화 체계는 표준화 작업에서는 효율적이지만 비정형적이고 역동적인 환경에서 물체의 질감, 모양, 부드러움 등을 탐색하고 동시에 조작할 수 있는 고유한 감각-행위 루프를 제공하진 못한다. 이는 인간의 손만이 할 수 있다. 예술 영역에서 예측할 수 없는 저항을 가하는 물질과의 상호 작용에서 즉각적이고 적응적인 촉각적 지각이 필수적인데, 이 역시도 인간의 손만이 할 수 있다. 이는 기술이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기능으로 남는 영역이 존재한는 것을 의미한다.
정교한 미세 운동 능력의 전환
첨단 로봇 공학 분야는 인간 능력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로봇 연구의 목표 중 하나는 제조, 돌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협력하여 활용될 수 있는 지능적이고 다재다능한 파악 및 미세 운동 능력, 손-눈 협응 능력을 갖춘 로봇 손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는 인간의 미세 조작 능력이 여전히 기술 발전의 궁극 지향점이자 참조 기준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인간의 정교한 미세 운동 능력은 기술 또는 기계로 대체하기 어렵다. 이는 ‘숙련의 참조 기준(Reference Model)’으로 인간의 이러한 능력이 가치를 유지하리라는 것이다. 로봇 체계의 성능 향상은 전문가의 숙련된 기술 수행 자료를 포착하고 조정해 운동 학습 원리를 복잡한 실제 환경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봇이 정교해지더라도 비정형적 작업을 가르치거나 미세한 조작이 필요한 복잡한 상황에서 최종 판단과 개입은 여전히 인간의 고도로 숙련된 ‘손-눈의 협응’ 능력에 의존한다. 기술은 이 능력을 증강하는 도구로 작용할 뿐, 인간 몸을 활용한 미세 조작의 최종적 주체성까지 대체하진 못한다.
기술 변화에도 반드시 인간이 자기 몸을 활용해야 하는 일
기술 발전에도 인간이 자기 몸을 활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영역은 ‘돌봄’과 ‘사회적 유대’와 관련된 행위다. 이러한 행위는 본질적으로 신체화(Embodiment)와 ‘정동(Affect)’을 매개로 하기에 기계가 하는 대리 행위로 대체할 수 없다.
신체 접촉의 윤리와 생물학적 영속성
인간은 사회적 연결 본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영장류를 포함 포유류에게 사회적 유대는 건강, 장수, 그리고 생식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인간에게 ‘애착 관계’의 안정성은 타인의 접근성과 반응성을 통해 평생 형성된다. 이러한 유대감은 신체 접촉으로 유지된다.
핀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 등 광범위한 문화권에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타인에 접촉을 허용하는 신체 영역의 총면적은 만지는 사람과의 감정적 유대 강도에 정비례하였다. 이는 신체 접촉이 인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생물학적 작용 원리라는 점을 입증한다. 따라서 AI가 정보를 제공하거나 작업을 수행할 순 있지만 ‘정서적 접착제’로서의 신체 행위까지 대체할 순 없다. 인간관계의 기본 구조는 영장류의 ‘상호 돌봄 행위’와 타인의 심리 상태와 상호 작용하는 ‘공유된 의도성’에 기반한 신체적 상호 작용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따라서 AI는 이 '대체 불가능한 타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돌봄 노동의 체화와 윤리적 주체성
돌봄 노동은 단순한 기능적 수행을 넘어 윤리적, 관계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모유 수유 같은 행위는 타인(아이)을 돌보는 행위인 동시에 개인의 신체적 주체성을 자각하게 만드는 ‘신체화된 사회적 관행’이다.
돌봄 연구(Care studies)는 ‘돌봄 사슬’ 안에서 보호자 지배와 보호받는 사람의 취약성 문제를 다룬다. 이는 돌봄 행위가 단순히 기능적 결과를 내는 것을 넘어 윤리적 책임과 권력 관계를 포함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정서적 행위의 비위임성’ 관점에서 볼 때, 기계가 돌봄의 일부 기능(예: 상태 감시)을 대체할 순 있어도, 인간의 자기 관리나 타인을 돌보는 행위는 돌봄 제공자의 윤리적 주체성과 연결돼 있어 기계나 AI에 완전히 위임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직접적인 물질 조작 및 처리
음식 준비와 섭취의 진화적 강제성
생존을 위한 음식 준비, 섭취 행위는 인류 진화에 깊이 뿌리내린 신체 활용 행위다. 생물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불을 통제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능력은 인간 진화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보았다. 조리한 음식은 씹고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 인간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얻게 한다. 이 때문에 작은 치아, 약한 턱, 짧은 결장(結腸) 등 현대 인간의 해부학적 적응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진화적 변화로 인해 인간은 조리된 음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음식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 그리고 음식물을 조리 장소로 운반하고 준비하는 능력을 선사 시대부터 공유하였다. AI가 모든 조리법을 계산하고 로봇이 재료를 섞을 수 있지만 식재료를 직접 선택하고, 자르고, 섞고, 조리하는 과정은 생존을 넘어 인간의 진화적 적응을 충족하고 문화를 형성하는 행위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일상화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음식을 신체에 넣고(섭취), 신체를 관리하는(개인 위생) 행위는 여전히 외부에 위임할 수 없는 주체적 행위의 정점으로 남아 있다. 이는 생존 활동의 의례화로서 기술이 도달할 수 없는 인간 주체의 고유 영역이다.
예술 표현과 비정형적 창조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는 예술 또는 공예 지식(craft-knowledge)을 의미했다. 이렇듯 창조 행위는 본질적으로 신체적 숙련과 물질적 상호 작용이 필수다. 예술적 창조, 진정한 표현은 예술가가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켜야 하는 ‘저항하는 매체’를 필요로 한다.
AI가 알고리즘적 생성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시대에도 인간이 점토를 빚거나 붓을 사용하거나 나무를 깎는 행위는 물질의 물리적 제약과 저항을 극복하며 생각을 구체화하는 신체적 촉각적 과정이다. 이러한 ‘저항하는 물질과의 씨름’을 통해 형성되는 비정형적이고 비표준화된 수작업 기술(craftsmanship)은 인간의 신체적 통제, 즉각적 반응과 적응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AI가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제시할 수는 있으나, 창조 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경험과 숙련은 여전히 인간 신체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게 된다.
미래 일자리의 방향
세상없는 기술이 나와도 이렇게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 사회 도래 이후 지금까지의 사회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알파고 이후 바둑계가 겪은 변화의 축소판임을 알 수 있다. 지구상 인구의 1/3은 부분적으로 정보통신 기술의 이점을 누리면서도 그들이 속한 사회는 여전히 농업 혁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중간의 1/3은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이 혼재된 사회에 살고 있다. 나머지 1/3만 첨단 정보 기술 사회에 살고 있다. 한 사회 안에서도 크게 보면 세 부류의 삶이 공존한다. AI도 정보 기술의 연장이니 AI 시대도 이러한 세 가지 방식의 삶이 공존할 것이다.
AI 시대에는 사라질 직업도 새롭게 생길 직업도 있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라 해도 일하는 방식은 AI, 휴머노이드와 협업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일을 위해서든 놀이로서든 건강을 위해서든 몸을 쓰는 일, 몸과 몸이 만나야 하는 일, 스포츠처럼 인간끼리 신체 능력의 한계를 겨루는 일,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신체 활동(먹기, 배변, 잠, 병치레 등)은 역사상 한 번도 기계에 맡긴 적이 없으니 이와 관련된 직업은 이어질 것이다. 인간이 몸을 써 하는 예술 행위의 경우는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여행도 계속할 것이다. 노동하는 시간이 줄면 이런 활동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일과 관련된 직업 역시 대부분 살아남거나 새로 생길 것이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신기술에 적응하고 사회가 이 기술의 영향을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만 발달한 정보 사회에 사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몸을 덜 움직여 의료 수요가 증가한 점(운동을 안 해 생기는 병이 늘어났다는 의미), 신기술 사용으로 절약된 시간을 대부분 수동적 오락으로 보내는 점(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OTT, 쇼츠 소비 등), 인지적 외주화로 생긴 여유를 생산적인 정신 활동에 쓰지 않고 인간 주체성을 상실해 가는 점을 고려하면, 몸과 정신을 더 자주 쓰는 사람은 아주 부유한 이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이 걱정이다.
인간의 몸은 기술 발전 속도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그래서 기술이 첨단을 걷는 시대에도 몸은 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인간성도 그렇다. 이러한 사정이어서 우리의 원시적인 몸은 AI 시대에도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간의 필요가 이와 관련된 직업이 사라지지 않게 만들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형화된 방식이 있고 명료한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일이면서 연봉이 높은 직업은 대부분 AI에 넘어갈 것이라 한다. 그런데 방식이 일정치 않고 경험에 의존해야 하며 소득이 중간 또는 그 이하인 직업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누구 말대로 ‘근근이 먹고 사는 방식(근근이즘)’의 일은 무조건 살아남는다. 아직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상대로 하는 다른 서비스업들이 새로 생길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끼리 서비스를 주고받는 일은 오히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남을 방법이 있다. 부지런히 머리와 몸을 쓰면서 기다리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부디 그러길 소망한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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