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종교는 살아남을까?

당연히 살아남는다. 번성한다곤 할 수 없지만 근근이 유지하거나 심지어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을까?

왜 살아남을까?

인공 지능(AI)이 처음 등장했을 때 누군가 내게 이런 농담을 던졌다. ‘AI를 제어할 수 없다면 전기콘센트를 뽑아 버리면 된다.’ AI도 전기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니 전기를 끊어 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인간은 기술에 적응하고 나면 이 기술이 자기 몸(과 생활)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 왔다. 일례로, 최근에 지은 고층 건물들은 정전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 자가발전설비를 갖추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공장도 마찬가지다. 고층 건물에서 전기가 끊어지면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를 막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 자가발전 설비다. 스마트폰이 몸에 익은 사람은 잃어버리거나 둔 곳을 잠시 잊었을 때 금단 현상을 보인다. 그/그녀는 이를 막기 위해 전화기를 목에 걸고 다니거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왔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AI가 인간 몰래 기술을 개발해 인간을 통제하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보다, 인간 스스로 기술에 중독돼 AI를 대신해 해결책을 찾는 미래가 더 현실적이다. AI가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인간을 길들이면 된다. 그러면 인간이 알아서 해결책을 찾는다. 생성형 AI가 더 발전하려면 반도체와 전기가 더 필요해진다고 하니, 국가가 나서 반도체 설비 증설을 지원하고 회사는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사람들도 이런 조치의 당위성에 쉽게 설득된다. 이러는데 굳이 AI가 인간의 저항을 불러오면서까지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보다 똑똑한 AI라면 인간을 길들여 스스로 하게 만들 것이다.

종교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냥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청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의 시대에도 과학이 첨단을 달리는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실제로 인류사에서 문명사적 전환이 여러 번 일어났음에도 종교는 번번이 살아남았다. 낡고, 미신적이고, 변화를 모르는 거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살아남았다. 심지어 어떤 시기에는 몰락할 것처럼 보이다 한참 뒤에는 다시 부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신기술이 등장했을 때는 대응다운 대응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멀쩡히 살아남았다.

여기에 대한 이유는 추정만 가능한데 나는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한다. 첫째, 세상없는 기술도 인간이 유한한 몸을 가진 존재로서 겪는 불확실성(죽음)과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해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AI가 증명해 줄 것 같진 않다. 설사 증명한다 해도 그 답을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려 할 것 같지 않다. 고통의 문제도 해결이 쉽지 않다. 장기를 계속 갈아 끼우면 영생할 수 있다고 믿는데 그리한다고 수명이 무한정 늘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인간이 소멸하는(유한한) 육체를 갖고 있는 한 존재론적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필요로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종교는 어느 시대에도 살아남는다.

둘째, 인간은 인간한테서만 충족되는 것이 있다. 종교가 아니어도 인간이 가진 기본적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공간이나 조직이 있다. 그러나 종교 안에서만 채워지는 욕구가 있다. 지속성이 있거나 없거나 종교를 매개로 이 욕구를 채우려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들이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종교는 살아남는다.

굳이 하나를 더 보탠다면 특정 인간들이 보이는 보수성이 종교를 살리는 비결이다. 일부지만 전통을 잘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지키는 게 능사’냐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과거의 형태를 고수한다. 물론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진지한 문제의식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종교는 AI시대에도 건재할 것이라 보게 된다.

(사진 출처 = Pixabay)
(사진 출처 = Pixabay)

어떻게 살아남을까?

AI에게 앞으로도 살아남을 종교 관련 활동을 물으면 재미있는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상담, 몸과 몸이 부딪히는 봉사,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기술, 공동체’ 등이다. 이 일이나 활동은 앞서 종교가 살아남는 이유와도 대부분 관련이 있다.

종교 또는 종교인이라고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살아남는다. 적응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미래에 이런 이들을 찾는다면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개신교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가장 큰 덕을 본 종교를 들라면 나는 샤머니즘을 들겠다. 나는 2002년에 이런 현상을 ‘사이버 샤머니즘’이라 명명한 바 있다. 제도 종교는 하나같이 쇠퇴 일로를 걸었는데 이들은 성장했다. 물론 모든 무속인이 호황을 누린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 환경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활용한 이들만 호황을 누렸다.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과거엔 이용하는 데 리스크가 있었는데, 인터넷은 굳이 자신을 노출하지 않아도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젠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숨길 필요도 없고 숨기지도 않는다. 인류의 가장 오랜 종교가 최첨단 정보 통신 기술을 만나 새롭게 현대인을 만나고 있으니 종교의 생명력은 길다. 이처럼 AI 시대에도 음지에 있던 어떤 종교가 부상할 수 있다.

문제는 제도 종교다. 제도 종교는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다. 구성원을 계속 잃어 왔다. 그나마 고령 세대 덕에 버티는 형편이다. 이들은 세상없는 AI 기술이 나와도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교회/절/모임 장소에 나온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전통주의자다. 당연히 이 가운데는 진지한 이도 있다. 더러 젊은이가 있는데 이들은 전통적이거나 관계에 대한 욕구가 큰 경우다. 물론 이들 가운데도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렇게 중간은 없고 나이가 어리거나 많은 신자가 종교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종교도 있을 것이다. AI의 위력이 본격적으로 체험되기 시작하는 가까운 미래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종교가 나올 수 있다. 디스토피아적 상상에 기초해 종말을 선포하는 예언자도 나올 것이다.

이렇게 종교는 같은 외양을 유지하면서 전통을 고수하거나 부분적 적응을 통해 체면을(교세를) 유지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새 종파의 탄생을 통해 인터넷 시대에 보여 준 종교의 모습을 이어 갈 것이다. 나는 그냥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가톨릭교회에 머물 것이다.

이 연재 이후에는 교황청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가 공동으로 낸 ‘AI의 올바른 사용법과 윤리적 지침’을 담은 문헌 '옛것과 새것'을 주제별로 4회에 나눠 해설해 보려 한다. 적어도 필자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이 문헌은 기술적, 인문학적, 신학적 성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톨릭 전문가들이 기술적, 신학적, 인문학적 차원을 두루 고려하여 쓴 글이라 믿어도 좋다. 첨부한 링크를 눌러 미리 읽어 보시길 권한다.

교황청 '옛것과 새것' 한글 문서 바로가기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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